지난달 25일 서울 홍익대 근처 걷고 싶은 거리 야외광장에서 열린 위기 청소녀(女)를 위한 거리축제 ‘Sum-day: 썸데이’에 참가한 학생이 위기 청소녀 무료진료소인 ‘나는 봄’ 부스에서 건강설문지를 작성하고 있다.
위기 청소년을 위한 축제 ‘썸데이’
서울 9개 단체 참여 네번째로 열려
즉석에서 상담하고 건강검진까지
추가진료 필요하면 협력병원 의뢰
길거리상담소들 잇따라 생겨나
서울 9개 단체 참여 네번째로 열려
즉석에서 상담하고 건강검진까지
추가진료 필요하면 협력병원 의뢰
길거리상담소들 잇따라 생겨나
“저기, 학생이에요?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키며) 저쪽에서 축제하는데 혹시 관심 있으면 한번 가보세요. 고민 상담도 하고, 성교육도 받고, 예쁜 팔찌도 만들 수 있어요.”
10대 일시지원센터 ‘나무’의 박신연숙씨와 동북여성환경연대 소속 최정희씨가 홍익대 앞 거리에 나섰다. 두 사람의 눈동자는 길거리 사람들을 빠르게 ‘스캔’했다. 앳된 얼굴의 소녀부터 어른스럽게 화장을 한 소녀까지 두 사람은 청소녀가 보이면 달려가 포천쿠키(행운의 과자)를 내밀고 말을 건넸다.
지난달 25일 오후 5시. 서울 홍익대 근처 걷고 싶은 거리 야외광장. 위기 청소녀를 위한 거리축제 행사가 열렸다. 서울시가 개최한 이 행사는 2011년 시작해 올해로 네 번째 열렸다. 심효진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주무관은 “지난해까지는 신림에서 축제를 진행했다. 가출한 친구를 찾아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출 청소년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기관들이 하는 활동을 홍보하려고 올해 유동인구가 더 많은 홍대로 옮겨왔다”고 설명했다.
이날 축제에는 일시지원센터 ‘나무’, 청소녀건강센터 ‘나는 봄’, 청소년성매매특별전담실 ‘원넷’(ONE-NET), 동북여성환경연대 ‘초록상상’, ‘신림청소년쉼터’, ‘청소년유니온’, 숭실공생복지재단 ‘공간씨’, ‘행복한인권네트워크’ 등 9개 단체가 참여했다.
이 가운데 작년에 문을 연 ‘나는 봄’은 국내 유일의 위기 청소녀 무료진료소다. 이곳에선 치과·산부인과·가정의학과 관련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날 부스에 찾아온 여학생들은 간단한 건강검진 설문을 작성했다. 생리, 질염 등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설문이었다. 센터 담당자는 청소녀들에게 질 세정제를 나눠주며 사용법을 알려줬다. 청소녀들이 원할 경우 센터 상담 예약도 해줬다.
백재희 센터장은 “위기 청소녀들 중엔 어렸을 때부터 방임된 친구들이 많다. 건강관리가 제대로 안 되다 보니 충치를 앓는 경우도 많다. 이가 2~3개밖에 안 남은 아이도 있다. 또 임신 상태이거나 성병에 반복적으로 걸리는 아이도 찾아온다”고 했다. “임신한 청소녀가 찾아올 경우, 부모님께 알려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논의해준다. 또 성병에 걸린 청소녀가 찾아오면 이성친구까지 함께 불러 진료를 받을 수 있게 상담도 해준다.”
‘나는 봄’에서는 정신보건상담도 한다. 불안한 가정환경이나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백 센터장은 “우울증과 불면증 등을 앓는 아이들이 많고 가끔 자해나 환청, 환시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며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서로 심각성을 못 느낀다. 우리가 일단 검진하고 추가 진료가 필요한 경우 협력병원으로 보낸다”고 설명했다.
올해 6월부터는 서울시가 서울시약사회에 제안해 ‘소녀 돌봄약국’도 운영 중이다. 현재 8개 지역의 약국 100여곳이 참여하고 있다.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녀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지정 약국에선 곧바로 증상을 파악하고 1만원 안팎의 일반 약품을 무료로 처방해준다.
이날 행사는 위기 청소녀를 위해 마련한 행사였지만, 남학생, 일반 시민들도 많이 참여했다. 참여 기관들은 나중에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의미로 누구에게나 손을 내밀었다.
숭실공생복지재단에서는 ‘내 마음 나도 몰라’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청소년들은 ‘사랑’, ‘미움’, ‘고마움’ 등 감정을 표현한 단어카드 가운데 자신의 현재 감정을 말해주는 카드를 골라 나무 모양의 하드보드지판에 붙인 뒤 상담사와 고민을 나누고 비폭력 대화법도 배웠다. 중학교 2학년 이정원양은 ‘사랑’, ‘아름다움’이 적힌 단어카드를 골랐다. 그 단어를 왜 골랐느냐고 묻자 이양은 “지금 (아름다움이) 충족되지 못한 상태여서요? 아니면 그냥 사랑받고 싶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양을 비롯한 학생들은 여러 부스를 돌아다니며 상담이나 성교육을 받고 월경주기 팔찌도 만들었다.
경찰청 발표를 보면 최근 4년 동안 가출한 청소녀 수는 두 배 가까이 뛰어 전체 가출 청소년의 60.4%를 차지한다. 또 지난해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가출 청소녀 가운데 46%가 심각한 우울감을 느끼고 있고, 성병 등 산부인과 질환뿐 아니라 불규칙한 주거 및 식생활로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1 때 아빠와의 갈등으로 처음 가출을 했던 ㄱ(18)군. ㄱ군은 집에 돌아온 뒤에도 한 달에 한 번꼴로 가출을 반복했다. 가출을 하면 다세대 주택 옥상에 올라가 동네 의류수거함에서 주워온 이불을 덮고 잠을 자곤 했다. 끼니는 전단지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받은 돈으로 거의 ‘봉지라면’을 먹으며 해결했다. 지금은 신림청소년쉼터에서 지내고 있다. ㄱ군은 거리상담 때 센터 선생님들을 도와 아이들에게 과자도 나눠주고 상담 권유를 하고 있었다. ㄱ군은 “오늘 여기 와서 보니 위기 청소년을 위한 시설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며 “가출한 아이를 만나면 집이 싫어서 나왔으니 무조건 집에 들어가라고 말하진 않을 것 같다. 밖에서 지낼 바에야 쉼터가 낫다고 얘기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규율이 엄격한 쉼터를 꺼리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시민단체, 공공기관 등에서는 병원, 카페 등을 만들어 위기 청소년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위기 청소년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들 기관은 위기 청소년들이 많은 신림이나 대학가 근처에서 길거리상담도 진행한다.(표 참고)
이날 행사장 한켠에 신림청소년쉼터가 마련한 보드판. 축제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포스트잇에 적은 가출 2행시 문구가 눈에 띄었다. ‘가-출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에요. 출-발을 남들보다 먼저 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어요’, ‘가-출하면 개고생. 돈 벌어서 출-가하자’, ‘가-출은 출-구가 아니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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