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 “책값 부담” 구매 꺼려
일부 교수·강사는 부담 덜어주려
프린트물·영상자료로 수업 진행
“최소한의 투자도 않는 것” 지적에
“값어치 있는 전공서 부족” 반박도
일부 교수·강사는 부담 덜어주려
프린트물·영상자료로 수업 진행
“최소한의 투자도 않는 것” 지적에
“값어치 있는 전공서 부족” 반박도
대학 철학과 강사 정아무개(39)씨는 강의 계획서를 짤 때면 교재를 몇 권으로 할지 고민한다. 지난해 1학기 강의평가 뒤부터다. 학생들의 강의평가에 ‘시험과 관련 없는 읽을거리가 과도하게 많다. 경제적으로도, 공부하기도 부담스럽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철학자의 세계관 이해에 필요한 도서를 소개한 것뿐이다. 사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그런 평가에 당황스러웠다. 강사 신분이라 평가가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교재를 펴내는 한 출판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 출판사 관계자는 “교수들에게 전화하면 ‘책 가격이 높으면 사지 않는다’, ‘강의평가 때 강매를 한다는 평이 나온다’며 구입이 어렵다는 말들을 한다”고 했다.
대학 강의실의 상징인 두꺼운 교재가 사라지고 있다. 일부 교수와 강사들은 교재를 줄이거나 아예 프린트물이나 프레젠테이션 자료로 대체한다. 교양수업은 물론 전공수업도 마찬가지다. 책값마저 부담스러운 ‘등록금 1000만원 시대’의 풍경이다.
공대생 박지훈(25)씨는 9일 “원서 한 권당 3만원이 넘는다. 한 학기 교재 값이 적게 잡아도 20만원을 훌쩍 넘어 부담스럽다”고 했다. 수도권 대학의 한 강사는 “책값에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을 배려해 논문 중심으로 수업하거나 영상자료로 교재를 재구성하기도 한다. 교재가 필요하면 출판사 직구입 등 싸게 사는 방법을 찾아본다”고 했다.
경제적 부담을 떠나 학생들이 강의 교재를 사지 않는 풍토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대 강사 박아무개(30)씨는 “학생들이 책을 너무 안 산다. 학기말에 조사했더니 70여명 중에 강의 교재를 산 학생이 단 1명이었다”며 씁쓸해했다. 김진수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강의 교재들이 외국보다 비싼 것은 아니다. 미국에선 전공 서적 가격이 10만원을 넘기도 한다. 학생들이 전공 공부에 최소한의 투자도 안 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일부 교수들은 “한 잔에 5000원짜리 커피는 매일 마시면서 책값 부담을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학생 이채연(22)씨는 “학생들이 교재를 살 때 학점과 관련이 있는지를 따져보고 산다. 나도 학생이지만 너무하다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대학 출판부가 만드는 교재 매출도 감소 추세다. 한 유명 사립대 출판부는 “교재성 도서 매출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해마다 3% 정도씩 줄고 있다”고 했다. 다른 유명 사립대 출판부 역시 “교재 판매가 3년 전보다 20% 정도 줄었다”고 했다.
일부 학생들은 ‘단순히 몇 푼 아끼려고 사지 않는다’는 시각은 억울하다고 한다. 이아무개(23)씨는 “수업에 필요하면 당연히 산다. 그런데 전체 강의를 포괄하지 않고 몇 번 인용되지 않는데도 교수님이 자신이 쓴 책을 사라고 하면 망설여진다”고 했다. 유아무개(23)씨도 “고전은 나중에라도 읽으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망설여지지 않는다. 그런데 수업 때문에 잠깐 볼 책을 사야 할 때는 고민이 된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에도 꿋꿋하게 많은 책을 읽히는 교수도 있다. 오인영 고려대 교수의 ‘유럽지성사’ 교양강의는 한 학기에 10~12권을 읽게 만든다. 오 교수는 “공부는 해야 한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리고, 없으면 친구를 통해 다른 대학에서 빌리라고 권유한다”고 했다. 김계동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교수(정치학)는 “교수들은 연구 실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교재를 쓰거나 좋은 외국책을 번역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본이 되는 좋은 전공서를 찾기 어렵다. 살 만한 교재가 없는 현실에서 학생들 탓만 할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재욱 정환봉 기자 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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