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교육] 국제이해교육 현장
2013년 기준 한국의 다문화 학생은 5만5780명이다. 전체 학생의 0.9%를 차지한다. 2012년과 비교해 19% 늘어났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교육현장에도 ‘세계화’ 바람이 불고 있다. 외국 학교와 교류하며 국제이해도를 높이는 사례를 만나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말레이시아 전통의상인 ‘바주 쿠룽’을 입은 릴라 교사가 말했다. 학생들은 그의 서투른 한국말에 어색해하면서도 박수로 환영했다. 지난 2일 안양 호원초등학교 2학년 다정반 교실. 말레이시아 교사 두 명이 학생들 앞에서 자국 문화를 소개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말레이시아는 어디에 있는 나라일까요?”(Where is Malaysia located?)
릴라 교사가 책상 위에 놓인 지구본을 가리키며 이렇게 묻자 한 남학생이 나와 지구본 속에서 말레이시아 지역을 손으로 짚었다. 릴라 교사는 곧 옆에 있던 아지 교사와 함께 말레이시아 국기를 펼쳐들고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나라를 소개했다. “우리나라는 아시아 지역에 있으며 수도는 쿠알라룸푸르란 도시다. 한국과 달리 일년 내내 덥다.”
그 뒤 학생들은 말레이시아 교사들이 가져온 전통의상을 직접 입어보고 ‘슬라맛 파기’라는 아침 인사말을 배워 서로에게 건넸다.
말레이시아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릴라와 아지 교사는 교육부와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이 진행하는 ‘다문화가정 대상국가 교육글로벌화 지원사업’으로 9월 초 이 학교에 초청받았다. 이 사업은 한국 교사와 외국 교사들이 각각 상대국에 파견돼 전공과목 수업과 자국 문화를 알리는 수업을 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올해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교사 47명이 한국에 왔다. 이들은 두 달여간 머무를 예정이며 현재 전국 24개 초·중·고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지 교사는 개인적으로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는 “가르쳐보니 우리나라 학생과 한국 학생은 비슷한 점이 많다. 배우려는 호기심이 많고 수업에도 재미를 느끼며 잘 따라준다”고 했다. 릴라 교사도 “이번 기회를 통해 다른 나라 교사들과 교류하면 할수록 아이들을 가르칠 때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걸 알았다. 앞으로 학교 차원에서 또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선 국제이해교육부장교사는 말레이시아 교사들이 방문하기 전부터 교사들과 전자우편을 주고받으며 수업안을 짰다.
“말레이시아 교사들은 의욕이 넘쳐서 수업을 많이 하고 싶어했다. 또 본인들 나라에서 중학생을 가르치기 때문에 처음에는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에게 어려울 수 있는 지도안 등을 제출했다. 이때 한국 교사들은 한국 학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 소화 가능한 분량으로 지도안 등을 조절해주는 구실을 해줬다. 양쪽 모두 불평 한 번 없이 잘 소통하고 조율해줘서 고마웠다.”
김 교사는 아이들의 변화를 보며 국제이해교육의 필요성을 더욱 느꼈다. “아이들이 복도에서 말레이시아 교사를 마주치면 수업 때 배운 말레이시아어로 인사한다. 오늘 수업에서도 통역을 따로 안 했는데 애들이 알아서 영어로 대답을 했다. 잘 참여해 놀랐다”고 했다.
“작년에는 한 학부모가 전화해 ‘아이가 세계지도를 사달라고 조른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당시 방문했던 선생님의 나라인 인도네시아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는 것이다. 학부모는 그 교사 덕분에 아이가 다른 나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며 교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
학생들은 외국 교사들과 지내며 새로운 세계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을 갖는다. 무슬림인 말레이시아 선생님이 히잡을 두른 채로 교내를 돌아다니고 고기가 들어간 급식 대신 본인들이 가져온 음식을 먹는 걸 보는 것 자체가 살아 있는 ‘다문화교육’이 되고 있다. 아지와 릴리 교사는 한국에 오면서 개인물품보다 교육에 쓸 전통의상·음식·생활용품 등을 더 많이 챙겨왔다. 그들은 학교에 있는 동안 학급별로 2시간씩 영어와 자국문화를 소개하는 수업을 할 계획이다.
유네스코 교육글로벌화 지원사업
다문화 대상국 교사들 한국에 초청
다양한 세계 문화 배우는 기회로
인종차별 등 국제 이슈 함께 고민도
경기도선 온라인 수업교류 시행중 환경·전쟁 등 국제이슈 놓고 함께 고민해
교육학에서 국제이해교육은 말 그대로 국제간 이해를 촉진하기 위한 교육을 말한다. 전 인류가 공존·공영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기 때문에 평화교육으로도 볼 수 있다. 호원초처럼 전교생을 대상으로 국제이해교육을 진행하는 초등학교와 달리 중·고등학교는 동아리 형태나 자유학기제 선택과정으로 국제이해교육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자유학기제 선택과목으로 국제이해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현재 서울시내 10개 중학교에서 운영중이다.
그중 한곳인 신수중을 지난 2일 찾아갔다. ‘세계 ○○의 날을 알고 있나요?’라는 주제로 진행한 이날 수업은 각종 국제 이슈를 놓고 아이들이 직접 기념일을 만들어보는 시간으로 꾸려졌다. 아이들은 각종 기념일 포스터를 보며 세계의 주요 기념일과 의미에 대해 알아봤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함께 고민해 볼 만한 국제 이슈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동노동·인종차별·환경·전쟁 등 여러 가지 이슈가 나왔었다. 오늘은 이 이슈를 바탕으로 모둠별로 세계인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날’을 직접 만들어보자.” 안상원 교사가 설명하자 학생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곧 각각 ‘세계 친환경 교통수단의 날’, ‘세계 혼혈아의 날’, ‘세계 모금의 날’, ‘착한 초콜릿데이’ 등의 아이디어를 내 기념일을 만들고 각 날의 의미와 실천할 일 등을 돌아가며 발표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게 꿈인 1학년 구민지양은 ‘세계 혼혈아의 날’을 만들었다. 구양은 “수업시간에 혼혈아 관련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살면서 많은 차별을 받아왔다. 고민도 많았을 것”이라며 “혼혈아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들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자는 뜻에서 이런 날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구양은 “이 수업을 통해 ‘넬슨 만델라의 날’이나 ‘인종차별 철폐의 날’도 알게 됐다”며 “교실에서 진행하는 수업 말고도 직접 관련기관을 방문하거나 길거리에 나가 캠페인을 벌이는 등 체험활동도 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안 교사는 국제이해교육 교사연구회 활동을 하며 국제이해교육 프로그램 교재 집필에도 참여했다. 그가 국제이해교육 수업에서 방점을 찍는 대목은 학생들이 수업에 쉽고 재미있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수업에서는 학생들 주변의 사례를 질문하는 시간도 자주 마련한다. 예를 들어, ‘기부의 날’을 이야기할 때는 기부를 해본 적 있는지, 어떤 기관에 어떤 내용으로 기부를 했는지 등을 물어본다.
3학년 창의적체험활동 시간에는 다른 교과 교사들과 주제를 나눠 협력수업도 진행한다. 과학교사가 지속가능한 발전 중에서 환경 분야를, 국어교사가 인권 분야(소년병과 세계난민)를 다루면 영어교사인 안 교사는 세계시민의식에 대해 가르친다.
안 교사는 “국제이해교육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생활 속, 내 주변에서부터 시작하면 아이들이 흥미를 느낀다. 학교나 지역의 상황에 따라 접근방법도 달라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외국 교사와 에스엔에스로 소통하며 정보 나눠
경기도교육청은 2008년부터 ‘해외 학교와의 온라인 수업 교류를 통한 국제이해교육 확산’ 사업을 시행해오고 있다. 현재 81개 초·중·고가 영국·타이·대만·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스페인 등 9개 국가의 학교와 교류하고 있다. 이 중 51개교는 영국문화원과 양해각서(MOU)를 맺어 진행하는 ‘커넥팅 클래스룸’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커넥팅 클래스룸은 웹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원격 파트너 매칭 및 프로젝트 수업이다. 교사들이 주한영국문화원 사이트에 등록을 하면 원하는 주제·국가·나이에 따라 184개국의 3만3000여개 학교와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며 교류할 수 있다.
경기도 용인 초당고는 2010년부터 국제이해교육을 해왔다. 올해는 ‘커넥팅 클래스룸’으로 인연을 맺은 대만의 이중중고등학교(뉴타이페이 시티 소재), 파키스탄의 비행조종사 양성 학교(물탄 소재)와 교류중이다. 얼마 전부터는 이 학교들과 ‘각국에서 금기(taboo)시하는 것들과 국가별 영웅’에 대해 조사한 뒤 결과를 공유하는 시간도 마련하고 있다.
초당고 학생들은 ‘다리를 떨면 복이 나간다’, ‘빨간색 펜으로 사람의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은 죽거나 불운을 겪는다’ 등 한국에서 금기시하는 문화를 적어 냈다. 각각 ‘다리를 떨면 보기 안 좋고 무례해 보이므로’, ‘예전에는 오직 왕만이 이름을 붉은색으로 쓸 수 있었기 때문’ 등 나름의 이유도 유추해서 함께 정리했다. 우리나라의 대표 영웅으로는 이순신 장군, 유관순 열사 등을 꼽았다. 아이들이 적어낸 결과는 대만, 파키스탄 각 학교에 보낸 상태이고, 곧 상대 학교 학생들이 쓴 내용도 받을 예정이다.
이 교육을 담당하는 박희정 교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외국 교사들과 소통하며 수업 지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박 교사는 “이전에는 아이들이 우리나라의 고유한 것을 알리겠다는 생각도 없었을뿐더러 다른 나라, 세계 기후변화 문제 등에 대해 신경 자체를 안 썼다. 하지만 이 활동을 하면서부터 학생들이 많이 달라졌다. 국제뉴스 등을 접하면 ‘전 지구적 문제’라며 관심을 쏟는다”며 기특해했다.
그는 또 “고등학생이라 입시 위주의 수업에만 집중할 것 같지만 의외로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조만간 스카이프를 이용해 대만 학생들과 화상회의를 하기로 했는데 아이들이 언제 하냐고 자꾸 묻는다”고 했다.
국제이해교육이 조금씩 퍼져나가고 있지만 개선해야 할 점도 있다. 국제이해교육 매뉴얼 교재를 만들고 직접 수업을 진행하는 안상원 교사는 제대로 된 국제이해교육이 이뤄지기 위해 필요한 점도 덧붙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들의 의지다. 평소 교사들 스스로 글로벌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고민해야 한다. 또 현재 국제이해교육은 다문화가정에 대한 이해나 문화적 교류 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관련 교과도 영어, 사회 정도로 국한돼 있다. 모든 교과에서 국제이해교육을 접목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고 교사 연수도 해야 한다. 문화다양성을 이해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국제이해교육의 근본적인 목표는 ‘다 함께, 평화롭게 살기 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최화진 기자 lotu57@hanedui.com
지난 2일 안양 호원초등학교에서 ‘다문화가정 대상국가 교육글로벌화 지원사업’으로 초청돼 온 말레이시아 릴라와 아지 교사가 2학년 학생들과 자국 문화를 소개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유네스코 아태교육원 제공
다문화 대상국 교사들 한국에 초청
다양한 세계 문화 배우는 기회로
인종차별 등 국제 이슈 함께 고민도
경기도선 온라인 수업교류 시행중 환경·전쟁 등 국제이슈 놓고 함께 고민해
지난 2일 서울 신수중학교 자유학기제 선택프로그램 ‘국제이해교육’ 시간에 학생들이 모둠별로 직접 만든 세계기념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최화진 기자
경기도 용인 초당고에서 진행된 국제이해교육 중 외국 학생들에게 우리나라의 간식을 소개하는 프로젝트 진행 장면. 박희정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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