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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없어질 수 없는 학교’ 삼가분교 이야기

등록 2014-11-14 20:19수정 2014-11-17 18:14

[토요판] 커버스토리
‘10명 이하’ 폐교 위기 매해 탈출
속리산 삼가분교 아이들 이야기
가을비가 그치고 햇빛이 속리산에 내려앉았다. 일곱 아이들이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삼가2리에 자리한 삼가분교 운동장 나무 그루터기에서 사진을 찍는다. 광석, 찬우, 민찬, 민주, 준혁, 석진, 은혜, 현경(왼쪽부터). 전교생 11명인 분교에서 6학년 4명이 수학여행을 떠나니 7명과 유치원생 민주가 남았다. 학교는 매년 폐교의 위험을 가까스로 넘겼다. 2년 전 보은교육지원청은 학생 수가 10명 이하로 떨어지면 학부모 의견을 묻지 않고 폐교하려 했다. 새 생명이 태어나지 않은 산촌에서 사진은 훗날 아이들이 학교를 떠올릴 한 장의 추억이 될지 모른다. 주민들은 폐교를 막기 위해 고민했다. 학교란 뭘까. 산촌의 유일한 공공기관이며 늙어가는 마을의 죽음을 막고 적막한 산골에 웃음을 들려주는 소리다. 귀촌한 타지 출신 주민부터 이장까지 힘을 합쳤다. 도시의 아이를 초청해 산촌 아이들과 어우러지는 ‘속리산 산촌유학촌’을 열었다. 450만원으로 기적의 도서관을 만들었다. 우연히 분교 소식을 들은 충북 괴산, 경기도 수원, 서울 등의 타지인들이 속리산에 내려와 지역 주민들과 도서관을 세웠다. 202명의 개인과 22개 단체가 도서관을 후원했다. 1982년부터 지난 6월30일까지 폐교된 학교는 전국 3595곳이다. 이 가운데 2195곳이 매각됐고 401곳이 방치됐다.

구병산이 보이는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삼가2리의 수정초등학교 삼가분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비가 내리는데 우산을 쓰거나, 쓰지 않아도 아이들은 뛰논다. 보은/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구병산이 보이는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삼가2리의 수정초등학교 삼가분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비가 내리는데 우산을 쓰거나, 쓰지 않아도 아이들은 뛰논다. 보은/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속리산 밑 작은 학교엔 11개의 우주가 있다

▶ 속리산 터미널로 향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새벽부터 비가 내리는데 고속버스에 앉자마자 잠이 들어 깰 때 터미널에 내렸습니다.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삼가분교 사람들은 외지인에게 쉽게 마음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기사에 쓸 말을 단기간에 뽑아내려는 의지를 취재수첩과 함께 내려놓았습니다. 햇빛이 날 때는 분교 도서관 앞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삼가분교 사람들은 천천히 말을 걸어 왔습니다. 경쟁은 없지만 함께 어우러지는 걸 배우는 삼가분교의 교실에 들어가 보세요.

은혜는 오늘도 학교에 간다. 구불구불 산길을 내려가면 쭉 뻗은 밭이 이어지고 평평한 밭길을 걸으며 숨을 좀 돌린다. 그 길 끝에는 다시 학교로 향하는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계절에 따라 고양이나 개구리쯤은 만날 수 있지만 이 길 위에 사람은 좀체 보기 어렵다. 초등학교 4학년 은혜는 길에서 곤충이나 동물을 발견하면 한참 바라보다 다시 학교로 향한다. 백두대간을 따라 굽이굽이 남쪽으로 내려오면 속리산 천황봉과 아홉 개의 병풍이 이어지는 듯한 구병산이 있다. 은혜가 학교 가는 길은 천황봉과 구병산 사이 그 어디쯤에 있다.

산길을 내려와 학교와 인접한 도로에 들어서면 시와 문장이 벽에 적혀 있다. 60여년 전 이 학교를 졸업한 영진슈퍼 할아버지, 교장 선생님, 동네 사람들이 벽화를 그리고 썼다. 학교 이곳저곳을 고치는 ‘만능 기사’ 서성수씨가 쓴 글도 있다. “벽화를 그린다/ 마을을 그리고 마음을 그린다/ 마음이 모이는 마을을 그린다/ 마을에 모이는 마음을 그린다/ 사랑이 모이는 사람을 그린다/ 사람이 모이는 사랑을 그린다/ 그리움을 그리고 그리움을 그린다.”

비밀이 없는 학교

은혜가 다니는 수정초등학교 삼가분교는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삼가2리에 있다. 아침 8시30분쯤이면 가방 하나씩 짊어진 아이들이 등교해 책상에 앉는다. 모두 11명이다. 10명 이하로 떨어지면 교육청이 폐교시킬 수 있다. 다행히 올해 캐나다에서 4학년 찬우가 속리산으로 전학을 와서 11명을 겨우 채웠다. 1학년 1명, 2학년 1명, 3학년 1명, 4학년 2명, 5학년 2명, 6학년 4명. 지역에 유치원이 없기 때문에 학교는 미취학 아이들도 돌봐준다. 매일 학교에 오는 6살 민주는 11명의 언니, 오빠들과 논다. 6살부터 13살까지 세대 차이는 나지만 야구나 땅따먹기 놀이를 할 때도 적당히 봐주거나 하면서 논다. 도시에서는 왕따가 있다지만 여긴 없다. 친구 한명이 귀하다. 어제 치고 받고 싸우더라도 내일 화해하고 모레 같이 논다.

은혜는 올해 찬우가 전학 오기 전까지 교실에 혼자 앉아 수업을 들었다. 미술, 체육, 음악은 한 학년 아래 동생들과 함께 해서 덜 심심하긴 했지만. 한국어를 배우고 치아 교정도 할 겸 한국에 온 4학년 찬우는 언제 또 엄마 아빠가 있는 캐나다로 갈지 모른다. 찬우가 가면 은혜는 혼자 수업을 받아야 된다. 전교생 11명 가운데 여자는 고작 3명이다. 키가 작고 통통한 4학년 은혜, 갸름한 턱에 긴 눈의 5학년 현경, 단발머리에 유독 키가 큰 6학년 정희. 은혜보다는 5학년과 6학년 언니들끼리 조금 더 친하다. 둘은 읍내에 있는 미용실 ‘샤넬 헤어’에서 파마나 염색을 했다. 4학년 은혜는 아직 미용실에서 어른 머리를 해보지 못했다.

유치원 없는 동네에 학원이 있을 리 없다. 아이들은 수업이 다 끝나고도 오후 5시까지 놀다 선생님들이 퇴근할 때 학교를 떠난다. 그러고 보니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도시에 아이들이 넘쳐나도 동네 놀이터에는 같이 놀 친구가 없다고 하는데 이곳 아이들은 적은 수로도 늘 같이 논다. 은혜는 삼가분교와 속리산이 좋은 이유를 말했다.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는 얼음집인 이글루를 만들 수 있고요. 가을에는 단풍잎이 든 산에 갈 수 있어요. 여름에는 저수지에서 낚시할 수 있고요. 봄에는 꽃이 많아요.” 나무로 불 피워 고구마를 구워 먹고, 미니 뗏목을 만들어 저수지에 띄우고, 운동장에서 38선을 그어놓고 ‘이랑타기’ 놀이를 하고, 신발을 벗어 나무에 집어던지고, 이유 없이 친구를 놀려 먹다 도망치기도 한다. 아이들은 재밌는 걸 찾는 데 천재적이다. 돈이나 프로그램, 장난감이나 놀이기구가 없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노는 걸 안다.

속리산 분교에도 소년이 소녀를 좋아하고, 그 소녀가 다른 소년을 좋아하는 엇갈림은 있다. 어른들처럼 말 못하고 재고 따지고 밀고 당기지 않는다. 속리산에서는 아주 어린 소년이 일찍 누나를 좋아한다. 여학생이 4, 5, 6학년 3명밖에 없다. 1년 전부터 좋아했다고 편지로 고백한 누나가 다른 소년을 좋아해도 나쁘지 않다. 누나가 좋아하는 다른 소년과도 친구가 된다. 누나를 좋아하는 것일 뿐 누나의 마음을 가지려던 건 아니다. 애석하게도 이 학교에는 비밀이 없다. “너 연상 좋아하지?” 소년이 선생님으로부터 짓궂은 질문을 받은들 뭐 어쩌겠는가. 씩 웃고 말아야지. 어른들은 때로 입이 참 가볍다.

10명 이하면 폐교가 되는데
다행히 캐나다서 4학년 찬우가
전학을 와 11명을 채웠다
유치원이 없어 6살 민주도 있다
6~13살 애들이 서로 봐주며 논다

분교마저 없으면 늙은 마을은
죽어가는 마을로 될 게 뻔했다
귀촌한 이만동, 유중덕씨가
산촌유학촌을 만들어 운영하자
폐교시키려던 교육청이 주춤했다

오지의 유일한 공공기관

운동장에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달 22일 학교 우산통에 우산 7개만 꽂혔다. 전교생 11명 가운데 6학년 4명이 서울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전교생이 뛰어놀아도 헐렁한 학교가 더 비어 보인다. 책걸상 4개 놓인 6학년 교실에 불이 꺼져 있다. 창틀에는 먹지 않은 우유 4개가 쌓였다.

“우리 학교 학생 수가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1명(본교 77명, 분교 24명)이나 줄어들어 앞으로 더 줄어들 것으로 생각한다.”

“6학년이 졸업하면 학생 수가 줄어들 것이고 지금은 고령화·저출산 사회이므로 전학생은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우리 학교의 폐교 위기는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 학교 전교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유는 전입보다 전출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지역의 장점을 살린다면 전입이 늘어나 우리 학교에 전교생이 늘어날 것이다.”

“학교와 마을 사업을 접목해서 아이들이 자연과 학교와 어우러지는 교육 방식을 도입한다면 폐교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6학년 교실 벽에 붙은 내용이다. 통계 수업 때 6학년 학생들이 분석한 내용이다. 1946년 9월30일, 삼가분교로 시작한 학교는 3년 뒤 아이들이 늘어나 삼가국민학교로 독립했다. “운동회를 하면 운동장에 앉을 자리가 없어서 똬리를 틀듯이 몇겹씩 원으로 그려 앉았지요. 그때 참 좋았는데….” 학교 앞 영진슈퍼 김진환(74) 할아버지가 추억했다. 아이들이 급격히 줄어들어 1993년 본교에서 수정국민학교 삼가분교로 격하됐다. 2005년 34명이던 전교생은 2012년 8명까지 감소했다. 금방 폐교될 것처럼 학교는 위험했다.

“적정 학급 수와 학급당 학생 수를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전교조와 농민단체가 반발하는 가운데 군내 초등학교 6곳, 중학교 1곳이 2015년까지 통폐합된다. 보은교육지원청은 2013년까지 삼가분교 등 3곳을 통폐합 대상으로 잡았다. 학부모가 반대해도 학생 수 10명 이하는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통폐합한다는 계획이다. 보은교육청 관계자는 ‘상실감 때문에 지역사회가 반대하고 있지만 또래 문화 형성도 어렵고 사회성 발달에도 지장이 있기 때문에 통폐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지역신문 <보은사람들> 2012년 6월7일)

학교를 지키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나섰다. 이장과 총무 등이 삼가분교 발전위원회를 만들었다. 산이 좋아 도시에서 내려온 주민들도 빠지지 않았다. 수소문을 했더니 경북 예천군 호명면의 지보초등학교가 농촌 유학 프로그램인 ‘시골살이 아이들’로 학교 살리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도시 아이들이 농촌에서 생활하며 시골생활을 체험한다는 취지였다. 산이 좋아 서울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10여년 전 속리산에 혼자 귀촌한 이만동(59)씨, 심마니인 은혜 아빠 유중덕(56)씨 등이 지보초등학교에 갔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학생 13명이 늘어나고 늙어가던 예천군 호명면이 살아나고 있는 것을 봤다.

학교란 게 뭘까. 가벼운 생각으로 지보초등학교를 다녀온 이만동씨는 생각에 잠겼다. 속리산 천황봉을 중심으로 북쪽은 발전했지만 삼가분교가 있는 남쪽은 과거부터 오지, 즉 깊은 마을로 불렸다. 경찰지구대 같은 관공서 하나 없다. 학교는 유일한 지역의 공공기관이다. 삼가분교에 학생들을 보내는 구역인 속리산면 삼가1·2리, 구병리, 도화리, 만수리 마을 주민은 316명. 학교가 사라지면 귀촌하고 싶어도 외부 사람들이 교육 문제로 들어올 수 없다. 분교마저 없으면 늙어가는 마을이 죽어가는 마을로 될 게 뻔했다.

속리산에 내려온 뒤부터 매년 자신의 집으로 서울 지인들을 초청해 ‘속리산 너와숲 축제’를 벌이던 이만동씨,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2003년 백두대간을 따라 설악산에서 내려오다 이곳 삼가저수지에 반해 그날로 보은읍내 부동산에 찾아간 은혜 아빠 유중덕씨. 귀촌한 두 사람 등이 힘을 합쳐 2012년 7월27~29일 삼가분교에 ‘산촌유학촌’을 만들었다. 도시 아이들이 삼가분교 아이들과 함께 이만동씨네 한옥에서 잠도 자고 연극을 하고 숲길을 걸으며 자연을 느끼는 프로그램이다. 첫회 산촌유학촌에 도시의 아이들 10명이 다녀갔다. 학부모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보은읍에서 조각을 하는 박청용씨, 귀촌한 레크리에이션 진행자 정용수씨가 산촌유학촌 강사로 나섰다. 산촌유학촌이 자리를 잡아가자 폐교시키려던 교육청도 주춤해졌다.

“귀촌한 사람들은 도시의 번거로움이 싫어서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대다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마음을 닫으려 해요. 같이 사는 사회에서 그게 또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귀농·귀촌이 실패하는 대다수 원인은 이웃과의 불화라고 하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학교 일을 하면서 지역 사람들과 더욱 적극적으로 교류하게 되고 마을을 더 이해하게 됐어요. 마을 주민들도 폐교 문제를 해결하려 ‘오픈 마인드’가 됐고요. 폐교되면 학교는 회사나 공무원 연수원 같은 게 되고, 아이들이 없어지고, 마을이 깨져요. 무언가 시골 마을에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이만동 촌장)

교육부가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전국 17개 시·도의 폐교 현황’을 보면, 1982년부터 지난 6월30일까지 폐교한 학교는 3595곳이다. 이 가운데 2195곳이 매각됐다. 방치된 학교는 401곳(11.2%)이다. 충북 보은읍만 봐도 폐교된 학교가 여럿이다. 이원분교는 폭격 맞은 것처럼 유리창이 깨진 채 방치됐고 이식분교는 아무 쓸모 없이 버려진 상태다. 동정초등학교는 사설 박물관이 됐다가 수몰될 예정이고 회룡초등학교는 보이스카우트 야영장으로 임대됐다. 아이들이 오지 않아 버려진 학교가 되지 않는 게 삼가분교의 꿈이다.

학교는 뭘까

“김쌤이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아이가 11명밖에 없는데. 최쌤이 ‘시스템’이라고 말하는 정규교육 외에도 애들 마음에 뭐가 있는지, 무슨 상처를 받았는지 봐야 할 거 아냐?”

“내가 최선을 다 안 했다고 생각해?”

“당연히 알아. 나도 아는데….”

분교 교실은 소박하다. 삼가분교 학급 중 아이들이 제일 많은 6학년 교실에서 임미랑 선생님과 학생 4명이 수업을 하고 있다. 보은/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분교 교실은 소박하다. 삼가분교 학급 중 아이들이 제일 많은 6학년 교실에서 임미랑 선생님과 학생 4명이 수업을 하고 있다. 보은/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6학년이 수학여행을 떠난 다음날인 지난달 23일 늦은 밤 학교 기사인 서성수씨네 집에서 삼가분교 분교부장인 최윤수 선생과 김효영 전일제 강사가 아이들 문제로 의견 차이를 빚었다. 속리산면 만수리에 있는 서씨의 집이자 민박집인 ‘피앗재’는 가끔 삼가분교 사람들이 밤늦도록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이만동 산촌유학촌 촌장도 사과 봉지를 들고 피앗재를 찾아왔다. 최 선생과 김 선생은 투닥거리더니 이내 풀었다.

산골 아이들이라도 상처가 없겠는가. 그건 도시 사람의 편견이다. 얼마 전 지상파 방송사의 외주제작사가 취재를 나왔다. 애들한테 개를 끌고 카메라 앞에 서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시냇가에서 세수하는 장면을 요구했다. 그런 게 도시 사람들이 상상하는 산촌의 아이들이다. 어른들에게서 상처 받은 아이, 그 상처를 한번도 치유하지 못했던 아이가 있다. 다만 캄캄한 독서실 칸막이 안에 웅크려 앉아 옆 칸막이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게 유령처럼 살 수 없다는 게 도시와의 차이점이다. 가만히 보면 11명 아이들이 무얼 하는지 눈에 보인다. 친하진 않아도 왕따 시키진 말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도덕을 아이들은 안다. 조금 상처 받고 더 상처 받은 아이들이 적당히 어우러진다. 김 선생은 아이들 내면을 더 봐달라는 말을 최 선생에게 하고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인 김씨는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기르기 위해 지난해 경기도 부천에서 속리산으로 내려왔다. 지금은 삼가분교 전일제 강사다. 분교부장과 강사, 학교 기사. 각자의 역할이 다를 뿐 학교를 좋아하는 이들 간에 권위나 서열은 없다. 동네 주민이고 이웃사촌이다. 최 선생과 김 선생은 그날 밤 화해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다독이는 걸로 논쟁을 끝냈다. 최 선생은 자정이 넘어 속리산 깊은 곳에 있는 서 기사네 집에서 읍내까지 나가 치킨 두마리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최 선생은 그날 서 기사네 집에서 잠을 잤다.

보은읍에서 산골 오지로 출퇴근하는 최 선생은 이제 완전히 마을 주민이다. 퇴근하고 학교 앞 영진슈퍼에서 꽁치 통조림에 막걸리를 마시며 주민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다들 ‘형님’ ‘아우’다. 학교 뒷마당에 심어놓은 감자를 갈아 학교에서 감자전을 부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먹고, 한 학기에 한번 여는 학교 설명회에 학부모와 마을 어르신을 초청해 음식을 대접한다. 학교에서 뛰어다니는 애들을 안전 문제랍시고 제재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도 복도에서 최 선생에게 장난을 치고 도망간다. 최근에는 읍내 중국집에서 생일파티를 벌였다. 11명 전교생이 생일을 맞을 때마다 잔치를 벌인다.

“제가 교대를 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딱 하나 말씀하셨어요. 너 놀고 돈 쓰는 거 좋아하는데 교사 되면 (뒷)돈 받지 말라고. 아버지와의 그 약속은 지키고 살고 있네요.”

5학년 황현경과 양광석이 책상에 앉아 최윤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교실에서 시험은 있지만 경쟁은 없다. 보은/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5학년 황현경과 양광석이 책상에 앉아 최윤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교실에서 시험은 있지만 경쟁은 없다. 보은/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최 선생이 이곳에 와서 느낀 변화 가운데 하나는 아들이었다. 아들 석진이도 최 선생을 따라 읍내에서 삼가분교로 전학 왔다. “너 전학 갈래?” 요즘 최 선생이 아들에게 하는 ‘협박 카드’다. 엄마와 떨어지는 걸 힘들어하던 석진이는 이곳에 전학온 뒤부터 달라졌다. 삼가분교에서는 때로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친구네 집에서 잠을 자고 친구 엄마를 따라 읍내에 나가 논다. 나와 타인들 간의 담벼락이 낮다. 최 선생이 ‘전학’이라는 카드만 꺼내도 2학년 석진이는 순한 양이 되어 웃는다.

올해 9월에는 학교 창고를 개조해 ‘오리 날다 달빛 도서관’을 만들었다. 창고 지붕에 달린 오리 모양의 높다란 솟대엔 엘이디(LED) 조명이 들어 있다. 예산이 부족한 분교가 처음부터 도서관을 계획한 건 아니었다. 책장 몇 개 갖다 놓으려 했는데 판이 커졌다. 마당발 은혜 아버지의 친구 강산씨가 인테리어하는 ‘디자인 디엔(DN)’의 박동남 사장을 소개했다. 충북 괴산에서 라라앤토토 공방을 운영하는 강산씨는 매일 같이 삼가분교에 와서 책장을 만들고 도서관 건립 작업을 기획했다. 아프리카티브이(TV)를 통해 하루 10여명의 청취자에게 라디오를 진행하는 디제이 ‘힐디오’도 우연히 삼가분교를 알게 돼 인터넷에서 모금운동을 벌였다. 이 도서관은 계산이 안 되는 건물이다. 창고를 개조한 박동남 사장이 흔쾌히 재료비의 일부만 받았고, 심마니인 은혜 아빠는 박동남 사장 등에게 산삼주를 대접했고, 박동남 사장이 데려온 직원들의 숙식 제공은 마을 주민들이 맡았다. 은혜 아빠와 형, 동생 사이인 마을 주민 경환씨, 허돈씨, 시호씨, 응길씨, 차현씨가 무료 봉사를 했다. 인터넷 모금액 약 200만원, 지역 주민 153만원, 교직원 100만원 등 450여만원으로는 견적도 낼 수 없는 도서관 공사였다. 지금 도서관에는 책 2200권이 채워져 있다. 도서관은 한달에 한번 마을 주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도 쓰일 예정이다. 삼가분교는 다도와 한방 진료를 계획 중이다. 지난 6월 당선된 김병우 충북교육감이 “폐교를 막고 작은 학교 살리기에 나서겠다”고 밝혀 학교가 교육감 임기 4년은 버틸 수 있게 됐다.

“학교라는 게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거잖아요. 수가 적다고, 자본 논리에 의해 폐교가 되는 게 맞지 않잖아요. 이 마을 어르신들이 졸업한 학교가 여기고 노인들이 대부분인 마을에서 아이들이 자라나는 공간이 학교예요.” 은혜 아버지는 운동장에서 장난을 치며 뛰는 아이들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지혜로운 아이들이 돼야 될 텐데. 인생에 굴곡이 많잖아요. 지식이 많다고 그 굴곡을 다 어떻게 넘어가요. 지혜가 있으면 헤쳐나갈 수 있으니까요.”

분교부장과 강사, 학교 기사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를 뿐
학교를 좋아하는 이들간에
권위나 서열은 없다
동네 주민이고 이웃사촌이다.

“아이들에게 어른이 필요할까요?
어른에게 아이들이 필요하겠죠.
적막한 시골에서 애들 소리는
이른 겨울에 아스팔트 위로
공이 통통 튀는 것 같아요”

너가 주인공이야

“아침 출근길 교무실로 들어오는 초임 조쌤이 수박 한 덩이를 안고 있다. 떡 상자 한 박스와 함께. 며칠 전 받은 첫 월급 턱이라고. 아이들과 선생님들께 나누어 줄 거라고. 떡은 금방 쪄내 온 듯 따끈따끈하고 수박은 싱싱해 보인다. 작은 것이라도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 그 하나만으로도 선생님의 마음이 엿보인다. 고마운 일이다. 무릇 ‘처음’은 가슴 설레는 일이고 열정이 샘솟는 일이다. 첫 부임지, 첫 제자들과의 첫 수업…. 초임 조쌤의 열정은 따뜻할 것이고 설렘은 수박처럼 싱싱할 것이다.”(2014년 3월)

“선생님들도 똑같은 사람인데 직장인들인데 회식 때 삼겹살도 맛있게 먹고 2차 노래방에서 막춤으로 망가지기도 하고 100점 나오면 배춧잎 지폐에 침 묻혀 모니터에 철썩 붙이기도 하고. 오늘은 노래방 비밀 대작전. 적에게 쌤들이란 사실을 알리지 마라. 그래서 쌤들은 김 이사, 이 부장, 박 과장이 되어 작전이 시작되었다. 어떤 쌤은 애교가 넘치는 노래로, 어떤 쌤은 섹시한 웨이브로 작전은 성공적이었는데 무심결에 부장이라 부르지 않고 나오는 ‘쌤’ 소리. 그날 밤 노래방에는 벌금 만원 딱지가 난무하고. 비가 내리는 모니터에 배춧잎이 자꾸 자라났다.”(2014년 6월) 기능직 기사 서성수씨가 인터넷에 쓴 분교일기다.

삼가분교 교무실은 교사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수업을 듣지 않는 여섯살 민주가 책을 보거나 잠을 자고 방과후 돌봄 선생님이 학교 텃밭에서 캔 감자를 다듬으며 간식을 준비하는 곳이다. 때로 교실이 된다. 같은 교실을 쓰는 1학년 민찬이와 2학년 석진이가 국어, 수학 같은 주요 과목을 배울 때는 교과서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 수업을 받아야 한다. 한명은 교실에 남고 다른 학생은 교무실에 와서 선생님과 일대일 수업을 한다. 교사들이 사는 이야기를 하는 곳도 교무실이다.

“아이고, 왜 자꾸 요즘 달력만 쳐다 봐요?”

“얼마 안 남았네. 몇 달쯤 남았나.”

“그런다고 남은 기간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이 학교를 떠나도 계속 도울 거고. 마음에 남을 것 같아. 이렇게 짠한 학교는 처음이네.”

“어떻게 선생님 여기 더 계시게 몇 년 더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없죠. 여기 분교로 온 이유 가운데 인사 추가 점수도 있긴 했어요. 부인할 수 없죠. 그런데 그게 정말 다는 아니었어요.”

최윤수 선생, 방과후에 아이들을 돌보는 정옥연 강사가 교무실에서 대화를 나눈다. 분교 임기는 2년이기 때문에 지난해 부임한 최윤수 선생은 내년 다른 학교로 떠난다. 최 선생은 아이들과 실컷 놀아본 이곳을 떠나는 게 섭섭하다. 아이들과 해보고 싶은 게 많았다. 학교 설비가 고장나면 웬만하면 외부에서 수리공을 부르지 않고 기사 서성수씨와 낑낑대며 고쳤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 아이들과 체험학습을 나갔다. 학부모에게 김밥도 싸오지 못하게 하고 학교에서 준비했다. 학부모들이 재료 사러 읍내 나간다고 기름값 쓰는 게 더 손해라는 이유였다. 겨울이 가기 전에 산촌 아이들 데리고 스키장 데려가는 게 꿈인데 될는지 모르겠다.

삼가분교 텃밭에서 자라는 감자는 맛있다. 1학년 김민찬이 이장희 담임 선생님에게 감자전을 먹여주고 있다. 지난달 22일 오후 조리사 김영화씨와 교사들은 텃밭에서 캔 감자를 갈아 감자전을 부쳤다. 보은/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삼가분교 텃밭에서 자라는 감자는 맛있다. 1학년 김민찬이 이장희 담임 선생님에게 감자전을 먹여주고 있다. 지난달 22일 오후 조리사 김영화씨와 교사들은 텃밭에서 캔 감자를 갈아 감자전을 부쳤다. 보은/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모두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은 세상에서 속리산 삼가분교 사람들은 네가 주인공이라고 했다. 너에게 고맙다고 했다. 이 사람은 저 사람이 학교를 제일 잘 안다고 하고, 저 사람은 그 사람이 학교를 위해 가장 많이 일했다고 했다.

“도서관을 만든 주축은 학교가 아니에요. 마을 분들이 주인공이에요.”

“제가 아니라 정옥연 돌봄 선생님이 학교의 중심이에요. 이곳에서 10여년을 일하셨답니다. 아이들이 뭘 고민하는지 훨씬 잘 아세요.”

“때로는 부딪히기도 하고 뒤에 가서 어깨동무도 하고. 이게 움직이는 원동력이거든요. 여러 사람이 도서관 만들면서 갈등이 한번도 없었겠어요? 아니다 싶으면 생각해보고 다시 또 보자고 하고. 조율하면서 간 과정이에요.”

“누가 저한테 ‘지금 욕심내는 거야’ 말하면 집에 가서 생각해봐요. 카톡으로 ‘미안하다. 내가 욕심냈구나’ 그렇게 인정했어요.”

“촌장님께 고마운 게 많아요. 나이 어린 제가 까불면 까부는 대로 봐주셨어요. 촌장님은 어른이세요.”

“촌장요? 제 직함만 그런 거고요. 제가 뭘….”

“(술에 취해서) 학교 앞 영진슈퍼 할아버지가 혹시나 뭘 잘못 말해서 학교에 누가 될까봐 걱정돼서 기자님이 찾아와도 말을 못했대요. 선생님들이 말해야 한다고. 아, 몰라. 왜 이렇게 다들 고맙지. 다 어떻게 갚지.”

‘다둥이네 가족’도 온다네

2년 전 8명이던 학교 학생이 올해 11명으로 증가했다. 작은 학교가 살아남아 도서관을 만들고 도시 아이들을 교육하는 작은 기적을 만들었다. 학교와 지역 주민,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하지 않았다면 이뤄내지 못할 성과다. 정작 아이들은 폐교에 대한 걱정이 많지 않았다. 어른들을 믿었다. 친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아이들은 작은 학교가 편안하다. 매일 오후 5시까지 운동장에서 같이 뛰노는 오빠, 형, 누나, 동생들이 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어른이 필요한 게 아니라 어른에게 아이들이 필요한 건지 몰라요. 적막한 시골 마을에 들리는 아이들 소리는 이른 겨울에 아스팔트 위로 공이 통통 튀는 것 같아요.”

지난달 23일 오후 5시, 문을 닫을 즈음 학교 창가에 선 정옥연 보육 강사는 운동장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행히 좋은 소식이 들렸다. 2년간 귀촌을 고려해온 ‘다둥이네 가족’이 겨울이 오기 전에 도시생활을 접고 속리산에 오기로 했다. 다둥이네 아이 4명 가운데 2명이 초등학생이다. 내년 6학년이 졸업하면 전교생 7명으로 떨어질 뻔한 삼가분교가 학생 9명을 유지하게 됐다. 다둥이 가족에 은혜와 같은 4학년이 있다. 찬우가 캐나다로 돌아가도 은혜는 전학 온 친구와 같이 수업을 받게 된다. 내년 삼가분교 5학년 교실에는 아이 2명이 앉아 꿈을 그릴 것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넓은 우주다.

삼가분교 아이들
삼가분교 아이들

보은/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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