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영상복합문화관에서 열린 ‘이그나이트 유스’ 행사에 참가한 청소년이 자신이 생각하고 꿈꾸는 도시, ‘광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꿈꾸는 도전 현장
청소년 시각으로 바라본
우리 고장에 숨은 이야기
슬라이드 20장 놓고 5분 발표
‘광주’ 상징 버스노선 알리고
문화정책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청소년 시각으로 바라본
우리 고장에 숨은 이야기
슬라이드 20장 놓고 5분 발표
‘광주’ 상징 버스노선 알리고
문화정책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419번, 518번, 1187번.’
얼핏 보면 평범한 버스번호다. 하지만 이 번호판을 달고 광주광역시를 달리는 이 시내버스에는 각각 사연이 있다. 주강현(보성 다향고 3)군은 ‘나만의 도시’를 이야기할 소재를 찾다 광주를 상징하는 이 버스들을 알게 됐다.
“저는 오늘 광주에만 있는 특별한 버스를 소개하러 나왔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이 버스번호를 들어봤거나 이 버스를 직접 타보신 분도 계실 텐데요. 버스 타고 역사공부 한번 해볼까요?”
주군은 청중들 앞에서 이 버스번호에 담긴 의미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419번은 광주4·19민주혁명의 발상지인 광주고를 지나 ‘419로’로 지정된 학교 앞 도로를 쭉 지나간다. 518번은 5·18국립묘지와 기념공원, 5·18민주화운동이 벌어졌던 옛 전남도청과 전남대를 거치는 노선이다. 두 버스 번호와 비교하면 1187번 버스에 대한 정보를 아는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주군은 청중들에게 “‘1187’은 광주의 대표 명산인 무등산의 높이를 나타내는 숫자”라고 설명했다. 여기저기서 이제 알았다는 듯 “아~”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주군은 “나는 보성에서 나고 자랐다. 광주 온 지는 1년밖에 안 됐다”며 “이번 기회에 광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고 몰랐던 역사도 많이 배웠다. 여러분도 지금 살고 있는 광주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기울여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29일 오후 3시. 광주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광주영상복합문화관에서 ‘나의 생각대로 내가 꿈꾸는 광주를 이야기하는 이그나이트 유스(Youth)’ 행사가 열렸다. 이그나이트(ignite)는 ‘점화하다’라는 뜻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와 지식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연사로 나선 사람은 20장의 슬라이드를 15초씩 자동으로 넘기며 5분 동안 자신의 생각을 청중들 앞에서 발표했다.
연사들이 나와 자신만의 생각, 재주 등을 나누면서 서로에게 ‘도전의 의지’를 심어주자는 뜻을 담은 이그나이트 행사는 최근 들어 청소년 행사에서 주목받고 있는 진행 방식이다. 주제는 행사에 따라 다양하다. 지난 9월13일에는 영광 여성의전화와 해룡고 인권동아리 ‘나다’ 주관으로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과 미래, 생각을 말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또 지난 5월16일에는 부산 청년들이 주체로 나서 부산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미래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부산청년 정책 테이블’ 행사에서 ‘부산청년이그나이트쇼’가 열리기도 했다.
내가 나고 자란 도시,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모습은 어떨까.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이그나이트 행사의 주제도 ‘청소년’ 그리고 ‘도시’였다. 참여한 16명의 학생은 도시에 대한 느낌을 소개하거나 도시의 정책에 대한 건의사항을 내놓았다.
서주용(광주고 2)군은 청중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표어로 제시한 광주의 청소년문화정책에 대해 따끔한 지적을 했다.
“올해 광주시교육청에서 조사한 ‘광주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래희망’이 뭔지 아십니까?”
“공무원!” “연예인!” “교사!”
“모두 아닙니다. 정답은 바로 ‘문화예술스포츠 전문가’입니다. 문화예술스포츠 분야에서 활동하는 직종을 아우르는 말인데요. 여러분은 주말에 여가활동으로 뭘 하세요?”
“잠자요.” “텔레비전 봐요.”
청중들의 답변을 들은 서군은 “여가활동에 대한 청소년들의 답변은 늘 똑같다”며 “그런데 스포츠선수, 문화예술가 등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잠만 자고 텔레비전만 보는 것도 잘못이지만 청소년들이 문화를 제대로 누릴 만한 시설이나 시간이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서군은 청소년문화정책에 대한 대안도 제시했다. 청소년축제 상설화, 1교 1시설 결연을 맺어 학생들이 학교 주변 미술관이나 영화관 이용 시 할인을 해주거나 직접 공연할 장소 대여해주기 등 내용도 구체적이었다.
“광주가 2023년 완성을 목표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 사업을 이끌어갈 주인은 바로 지금의 청소년이다. 제대로 된 문화중심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청소년문화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청소년들의 꿈틀거림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한 김유진(상무고 2)양은 세월호 참사 뒤 참여했던 ‘광주청소년촛불문화제’와 ‘광주항일학생운동’을 연결지어 소개했다. 김양은 “1929년 청소년이 주체가 되어 일어났던 일제 대항 움직임들은 중국, 일본에 있는 한국 학생들까지 들썩이게 했다”며 “그때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요즘 청소년들은 어떨까 생각했다. 청소년촛불문화제에 참여해 직접 자유발언과 행진을 하면서 ‘마냥 슬퍼하기만 하면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고 했다. 그 뒤 김양은 안전한 광주를 만들기 위한 설문조사도 하고 시장 앞에서 건의사항을 발표하는 등 행동에 나섰다.
“발표에 넣고 싶은 내용이 많았는데 슬라이드 장수, 발표시간 등에 제한이 있어 다 넣기 힘들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작은 태동이 나라 전체를 뒤흔들 힘을 가졌다는 걸 잊지 말고 ‘직접 행동하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이그나이트 유스는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기획·참여하는 청소년상상페스티벌(광주광역시청소년단체협의회 주관)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열렸다.
김상룡 광주광역시청소년단체협의회장은 “이 프로그램은 광주에서 살고 있는 나의 삶, 친구와 공유하고 싶은 광주의 이야기 등을 나누는 자리”라며 “단순히 공연하고 체험하는 축제가 아니라 학생들의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마련한 행사”라고 밝혔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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