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교수는 수리…막말 교수는 반려뒤 파면
법원 “징계 피할 목적 사표제출은 불합리” 판단
법원 “징계 피할 목적 사표제출은 불합리” 판단
# 박아무개(46) 전 경희대 치대 교수는 지난해 5월 여성 전공의의 엉덩이를 만지는 등 네차례 성추행을 했다. 학교 성폭력조사위원회에서 진상조사에 착수하자 사표를 냈고, 학교 쪽은 한달 뒤 조사를 중단하고 사표를 수리했다. 박 전 교수는 의원면직 처리됐기 때문에 연금 수령과 재취업에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됐다.
# 같은 학교 최아무개(53) 전 교수는 대학원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욕설과 막말을 하고, 이메일을 통해 동료 교수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학교가 징계 절차에 들어가자 최씨는 2013년 5월 사직서를 냈다. 학교는 한달 뒤 “징계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며 사직서를 반려했고, 그해 11월 최씨를 파면했다.
이처럼 제자를 성추행한 교수들의 사직서 수리를 놓고 대학들이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희대는 박 전 교수에 대해서는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아 처벌 근거가 없다”며 서둘러 사표를 수리했다. 고용관계이기 때문에 사직서를 내면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게 학교의 설명이다. 반면 최 전 교수는 다섯달이나 징계 절차를 진행한 뒤 파면시켰다. 경희대 관계자는 12일 “최씨는 확실한 물증이 있어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파면했지만, 박씨의 경우엔 본인과 피해자의 진술이 엇갈려 징계위원회에서 판단하지 못했다. 사직서의 수리를 거부할 근거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런 식이라면 양쪽 주장이 엇갈리게 마련인 성추행 사건은 교수가 원하기만 하면 의원면직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앞서 고려대와 강원대에서도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교수의 사표를 징계 결과가 나오기 전에 서둘러 처리해버려 ‘사건을 덮으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대도 제자들을 상습 추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던 강석진 교수가 사직서를 내자 ‘법인화 이후로 사립대 교원 신분이 됐기 때문에 사직서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고 주장하다 호된 비판을 받고 나서야 철회한 바 있다. 강 교수는 구속 기소된 뒤 서울대에서 직위해제된 상태다.
법원은 ‘징계 면탈 목적의 사직서 제출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단을 제시했다. 앞서 최씨가 낸 파면 무효 소송에서 법원은 “국공립학교 교원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 사립학교 교원이 퇴직급여 산정 불이익 등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사직서를 내고 징계를 모면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이재욱 기자 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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