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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새학년, 친구가 없어 불안한 아이 마음

등록 2015-03-09 20:13

윤다옥 교사의 사춘기 성장통 보듬기
꽤 오래전 일이지만 중학교 입학하던 날이 생각난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차분하게 보였겠지만 낯가림이 심했던 내 속은 거의 얼음 상태였다. 그렇게 한참 말없이 운동장에 줄을 서 있었는데 다른 학교 출신인 같은 반 애 하나가 관심을 보이며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그때부터 내 중학교 생활은 풀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이 시기에 실시하게 되는 심리검사의 결과를 봐도 아이들의 긴장과 불안이 확연히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학습 부담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많지만, 사춘기 아이들의 경우 또래의 영향력이 커지다 보니 그로 인한 어려움을 많이 호소한다.

기본적으로 3월부터 학교상담실을 찾는 아이들의 경우 전년도에 이은 친구관계에서의 불안을 많이 얘기한다. 한번은 입학한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상담실을 찾아온 학생이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잘 지냈던 친구와 한 반이 되어서 좋아했는데 그 친구는 자신이 아닌 다른 애들과 어울리려는 것 같고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할 것 같아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했다. 이러다가 같이 다닐 만한 친구를 사귀지 못하게 될까봐, 그룹에 끼지 못하고 혼자가 될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다른 아이들은 저절로 친해지고 금방 많은 친구들을 사귀는 것 같은데, 자신은 왜 그게 안 되는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호소를 하는 아이들의 경우 어느 시점에서는 “성격을 바꾸고 싶다”,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고 싶다”, “아무도 자기를 모르는 곳에서 새 출발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이제 겨우 열 몇 살인 아이가 관계에서 오는 불안과 버거움에 지쳐서 하는 말이다.

이 아이들에게 “다른 애들을 사귀면 되지”,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 “지금은 친구가 없어도 돼. 나중에 사귀면 돼”라는 말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이런 말들은 아이의 입을 점점 다물게 만들 뿐이다. 아이의 말은 “다른 애들은 이미 친한 그룹이 있고, 거기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아이는 그런 것도 몰라주는 부모님과 선생님이 답답하게 여겨질 뿐이다. 등하굣길에 혼자 걸어가는 게 다른 아이들 눈에 얼마나 찌질하게 보일지 걱정하고, 이동수업이나 점심시간에는 혼자 어떤 자세로 어느 쪽에 시선을 두고 있어야 할까 고민하는 등 전전긍긍하며 친구 없이 이 긴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정말 괴로운 일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아이들에게 이 괴로움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학교에서, 교실에서 그 긴 시간을 아이 혼자 견뎌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아줘야 한다. 많은 경우 이렇게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잘 적응해나간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까지는 학기 초의 불안함을 부모에게 잘 얘기하던 아이라도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되면 자신의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또는 창피해서, 또는 혼나거나 핀잔을 들을까봐 등의 이유로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얘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집에 와서 얘기 잘하는데…” 하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그 시절의 자신만 떠올려 봐도 마음속의 얘기를 다 하진 않았다는 걸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내 아이도 마찬가지다.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기. 그렇다고 사춘기 내 아이의 모든 것을 다 알아내려고 하는 것도 문제다. 더 교묘히 감출 것이고 관계는 더 꼬이기 쉽다. 그리고 다 알 수도 없다. 아이가 그동안 키워온 힘으로 부딪쳐보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그러다가 스스로 견뎌내기 벅차다 싶을 때 와서 얘기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과정은 없을 듯하다. 이렇게 생긴 부모와의 안정감을 기반으로 해서 아이는 독립을 위한 과정을 원활히 거쳐갈 것이다. 중간중간 관계에서 생기는 상처가 있더라도 다시 용기를 내서 관계맺기를 시도해볼 수 있게 된다. 자신과 관계에 대한 신뢰를 경험하면 할수록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관계의 불안에 지쳐 있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건 중요한 일이다. 나만이 겪는 일이 아니라는 것, 소중한 인연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한발 더 내딛는 노력을 할 때도 있다는 것, 한두번에 실망하지 말자는 것 등을 함께 나누는 게 중요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외로울 수도 있고, 슬프고 아플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그리 멀지 않은 옆에서 지켜봐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 아이가 손을 내밀 때 언제든 잡아줄 수 있는 어른, 더 강하고 뛰어나서가 아니라 먼저 살아온 사람이라는 책임이 있어 함께 버텨줄 수 있는 어른이다. 버텨주는 만큼 아이는 더 자유롭게 자신의 힘을 발휘하고 조절하게 될 것이다.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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