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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생인권조례, 학생만을 위한 제도 아니다”

등록 2015-03-09 20:16수정 2015-03-10 10:24

지난 2일 서울특별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만난 윤명화 학생인권옹호관은 본인의 역할에 대해 “일방적으로 학생 편에 서서 교사와 대립하는 게 아니라 학교를 민주적 구조로 바꾸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서울특별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만난 윤명화 학생인권옹호관은 본인의 역할에 대해 “일방적으로 학생 편에 서서 교사와 대립하는 게 아니라 학교를 민주적 구조로 바꾸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윤명화 서울 학생인권옹호관
질문. 다음 중 학생인권조례 침해 사항에 해당하는 것은?

1. 야간자율학습을 밤 11시 반까지 시행한다. 학교 쪽은 동의서를 받았지만 이는 형식적으로 받은 것일 뿐 ‘무언의 압박’을 느낀 학생들은 다 동의했다.

2. 학교에서 교복 공동구매를 한다고 했다. 한 학생이 학교 밖 교복가게에서 사려고 공동구매에 참여하지 않았다. 학생부장 교사가 그 학생을 포함해 공동구매를 하지 않은 학생에게 일일이 전화해 ‘왜 참여하지 않느냐’고 꼬치꼬치 물었다.

3. 전교 40등까지만 들어가는 심화반을 따로 운영한다. 단, 야간자율학습과 유료로 진행하는 보충수업에 의무로 참여해야만 한다. 교내 논문대회도 심화반 아이들만 참가할 수 있다.

정답은 뭘까. 세 개의 보기 모두 학생인권 침해에 해당한다. 각각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9조 ‘정규교육과정 이외의 교육활동의 자유’, 3조 ‘학생인권의 보장 원칙’, 5조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 사례다.

이는 실제 서울·경기 소재 학교들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다. 하지만 이 일들을 겪었던 학생들은 학생인권조례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분명 억울하지만 학생인권조례에 침해되는 사항인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 학생들의 대체적 반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로 학생인권조례 3주년을 맞은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2일 첫 학생인권옹호관으로 윤명화(55) 전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의원을 임명했다. 윤 옹호관은 서울시의회 인권특별위원회 부위원장과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바 있다. 지난 2일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윤 옹호관을 만났다.

학생인권조례 3주년 맞아
서울시교육청, 옹호관 첫 임명
교내 인권침해 사례 직권조사해
시정권고하고 인권 교육 연구·개발도
교권조례와 대립해 학생만 감싸기보다
민주적 학교 만드는 역할 할 것

윤 옹호관에 따르면, 학생인권옹호관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학생인권 침해 사항에 대해 상담이나 구제 요청이 들어오면 직권조사를 할 수 있다. 이후 학생인권 침해에 대해 적절한 시정 및 조처를 권고하게 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

인권교육 교재와 학습 프로그램이나 관련 정책·지침을 연구·개발하는 일도 한다. 윤 옹호관은 “현재 정식 교과과정에 학생인권교육이 전혀 없다. 그나마 따로 진행하는 인권교육도 초등학교 저학년이 이해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라며 “학생들이 조례 내용을 숙지하고 인권교육 내용을 제대로 알고 배울 수 있는 교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학교 현장의 인권 감수성은 높지 않은 편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중이지만 학생들이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윤 옹호관을 포함한 교사, 학생들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생인권조례 내용에 대해 교복이나 두발 자유화, 체벌 금지 정도만 안다”고 답했다. 물론 학교에서 조례 내용을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윤 옹호관은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자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반대한 사람은 교사”였다며 “그들은 학생들에게 두발, 복장, 집회 등의 자유를 주면 통제가 힘들고 혼란이 올 거라며 부정적이었다”고 전했다.

“서울시의회 교육의원으로 있을 당시, 교권조례를 만들면서 교사를 대상으로 권리를 가장 침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한 적이 있다. 조사 결과, 교사들은 학생이 아닌 상부기관과 상사를 권리 침해 요소로 많이 손꼽았다. 구체적으로 보면, 상부에서 내려오는 끊임없는 공문, 교사평점이나 승진을 담보로 한 여러 제약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복장이나 두발의 자유를 주는 것이 교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는 “학생인권옹호관은 일방적으로 학생 편에 서서 교사와 대립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학교를 민주적 구조로 바꾸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현장에서 자의적으로 해석되거나 아예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여기에는 학생이나 부모, 교사 간 학생인권 인식에 대한 괴리감도 한몫을 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조례를 자꾸 대립적인 시각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지난해 논란이 된 ‘성적 지향 조항’을 두고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여기는 보수 학부모단체도 있었다. 학생인권조례를 잘못 이해해 제멋대로 행동하거나 아예 관심이 없는 학생들도 있다.

이에 대해 윤 옹호관은 “사실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나서 제대로 된 홍보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교육 당사자들의 저항이나 그들 간 대립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학교 현장에서 학생과 교사, 학부모에게 학생인권조례를 꾸준히 홍보해 학교 내에 조례가 실효성 있게 뿌리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제 첫발을 뗀 서울과 달리 학생인권옹호관이 이미 활동 중인 지역도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2011년 5월 권역별로 3명의 학생인권옹호관을 임명했다. 전북교육청도 지난해 8월부터 학생인권옹호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광주시는 학생인권옹호관 대신 민주인권교육센터 내 학생인권 조사·구제 전담팀을 운영하고 있다.

윤 옹호관에게 학생인권이 왜 중요한지 물었다. 학생인권옹호관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포함한 질문이기도 했다.

“수십년간 답습되어온 일제식 교육의 영향으로 학교는 여전히 통제와 억압으로 학생들을 다스린다. 교육혁신을 하고,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 길러내는 일은 이론이 아닌 실질적인 가르침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가 학생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학내 제도나 분위기가 민주적으로 변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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