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은니은’ 학생들이 ‘‘집 밖 청소년’의 자립을 돕자’는 뜻의 피켓을 쓰며 모금 사전준비를 하고 있다. 아름다운재단 제공
[함께하는 교육] 색다른 모금활동 나선 청소년들
“연탄이요? 2천 장이나 날라봤어요. 아마 연탄 못 들어보신 분들 많을 텐데요. 해보면 팔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아프니까 전날 잠을 많이 자둬야 해요. 친구들과 만나서 모금 관련 서류를 작성하는 일도 쉽지 않았어요. 어제는 모금 활동 발표자료 만드느라 새벽 3시에 잤고요.”
정한결(서울 재현중 2년)군의 이야기에 행사장에 모인 이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2월26일. 서울 종로구 푸르메재단 4층 푸르메홀에서는 ‘나눔교육 반디 나눔응원전-물음표와 느낌표’ 행사가 한창이었다. ‘아름다운재단’(이하 재단)에서 지난 1월5일부터 약 한 달 동안 진행한 나눔교육 ‘반디’(bfkid.tistory.com)의 결과발표회 자리였다.
아름다운재단 나눔교육 ‘반디’ 참여
내가 사는 마을의 문제점 찾아내
나눔 기획-모금-배분활동 직접 구성
아동학대·독거노인 등 다양한 주제로
나눔대상 정해 온·오프 모금활동
형식적 기부·봉사활동서 몰랐던
사회참여의식에 경제관념까지 생겨 지역 독거노인 난방텐트 해주려 온라인 모금
정군과 친구 네 명으로 구성된 ‘안드로메다’는 요즘(지난 11일 기준) 네티즌 모금 서비스 ‘다음희망해’의 모금 심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겨울방학, 다음희망해 쪽에 ‘백사마을을 위해 104만원 모아요’라는 온라인 모금 활동 신청서를 제출했다.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에 사는 독거노인들에게 난방텐트를 지원하기 위한 모금 활동이다. 신청서 등록 뒤 한 달 동안 500명 이상의 네티즌들에게 서명을 받으면 모금 심사 및 통과 과정을 거쳐 본격적으로 모금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이 올린 신청서에는 하루 만에 600여명이 서명했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이 친구들이 백사마을을 알게 된 것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부터다. 답을 찾다 백사마을이라는 곳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곳을 직접 찾아가보기로 했다.
“서울에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 사는 사람들이 이 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어요.” 서준원(서울 재현중 2년)군의 이야기다. 학생들은 사전 답사에서 미리 준비한 호떡과 어묵 등의 간식을 주민들과 함께 나눠 먹고 연탄도 나르며 그곳의 사정을 알아갔다.
백사마을에 사는 사람수는 약 200명. 그 가운데 독거노인은 약 70명이었다. 난방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살아가던 독거노인들을 보며 난방텐트를 구입해주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모금액은 백사마을을 상징하는 104만원으로 잡았다. 초반에는 거리 모금활동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유은재(과천중 2년)양은 “본래는 음악회를 열어서 돈을 모을까 했는데 비교적 많은 돈을 모금하기 때문에 온라인 창구를 활용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나눔활동은 재단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나눔교육 시범사업 반디 일환으로 진행한 것이다. 재단 연구교육팀 안효미 간사는 “기존 나눔교육이 이론 위주로 진행하거나 불우이웃의 사연을 알려 기부를 받는 식이었다면 반디는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나눔 기획-모금실천-배분활동까지 해볼 수 있게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참여한 학생들은 총 29명. 이들은 3회에 걸쳐 전체 모임을 열고 나눔의 정의 및 가치 알기, 국내외 사례 공유하기, 나눔 실천 아이템 찾기(지구·지역적 문제 연결고리 찾기), 모금 실행계획 세우기 등 워크숍 활동을 한 뒤 모둠별로 자신들이 정한 주제에 맞춰 직접 모금활동을 진행했다. 총 8개 모둠이 각각 환경오염·아동학대·재개발·안전·독거노인 등 우리 주변에서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와 관련해 나눔활동의 주제를 잡았다.
기관을 찾아 단순 봉사활동을 하는 식으로 나눔활동을 해왔던 학생들은 이번 기회로 특별한 배움을 경험했다고 입을 모았다. 정한결군은 “학교 봉사활동에는 일정 시간을 채워야 하는 등 기준이 있어서 사실상 의무적으로 참여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봉사, 나눔의 대상과 주제를 우리 스스로 정하고 그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주어져서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됐다”고 했다. 홍예진(서울 덕산중 2년)양은 “모금이라고 하면 모금함에 돈을 넣거나 단체에 기부하는 방법만 알고 있었는데 ‘우리가 천 걸음을 걸으면 천원 기부해주세요’라는 식의 ‘미션모금’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고 했다. 유은재양은 “반디 교육을 통해 ‘좋은 돈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한 국밥집에 가난한 아이가 찾아왔는데 주인이 단순히 ‘너 불쌍하니까 밥 한 그릇 먹고 가렴’이라고 하는 게 자선이나 베품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그 아이 마음을 헤아려서 ‘이 밥은 학생이 우리 가게를 찾은 백 번째 손님이라 서비스로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게 진짜 나눔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집 밖 청소년’ 도우려 피켓 들고 거리로
“집을 나온 청소년이라고 하면 막연히 ‘일진’일 거라는 편견이 있었어요. 근데 저희랑 다를 게 하나도 없었어요. 단지 집이 아닌 쉼터에 산다는 점만 다를 뿐이더라고요.”
반디를 통해 ‘집 밖 청소년’을 위한 모금활동을 펼친 최윤정(수원 천천중 2년)양의 이야기다. 최양과 그의 학교 친구 박서정양은 지난 1월, ‘니은니은’이라는 이름으로 수원 정자동 학원가, 북수원도서관, 서울 청계천 등지에서 자신들의 재능을 살려 직접 만든 주먹밥·과자·팔찌 등을 판매하며 모금활동을 펼쳤다.
두 친구가 집 밖 청소년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는 ‘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부터다. 내가 사는 지역의 문제가 뭘까 생각하다가 안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이는 ‘청소년 안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평소 아동·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던 박양은 평소 알고 있던 정보들을 풀어놨다. “지역에 청소년 쉼터들이 꽤 있는데 시설이 많이 낡았더라고요. 이런 시설을 개선하면 어떨까 하고 정보를 찾아봤어요. 어떤 곳에 도움을 주면 좋을까 찾아보다가 ‘참빛청소년상담마을’을 알게 됐고요. 청소년들이 쉼터에 오래 머물고 싶어도 여건상 쉽지 않고, 생활 필수품 등도 부족하더라고요.”
모금을 기획하고 피켓 등을 준비하면서 집 밖 청소년 관련 신문 기사 등도 꼼꼼히 살펴봤다. 최윤정양은 “청소년 가출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는 기사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집 밖 청소년의 문제를 알리는 전단지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활동의 뜻을 오해한 주변 어른들이 “누가 앵벌이를 시킨 거냐?”라는 반응을 보여 오해를 푸는 과정도 필요했다. 서울 청계천에 나갈 때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영어 전단지도 정성스레 준비했지만 비가 오고 날도 추워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렇게 거리에서 며칠을 보낸 뒤 모은 돈은 약 10만원 남짓. 두 친구의 모금활동을 곁에서 지켜보며 응원한 담당 선생님(반딧불이) 김명주씨는 “모금액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학생들이 속상해했지만 이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누군가의 어려움을 알리기 위해 거리에서 두 세 시간 넘게 힘들게 서 있어본 경험은 아이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삶의 소중한 가치를 알려줬을 것”이라고 했다.
박양은 “이 활동을 통해 돈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고 했다. “저희가 판매한 주먹밥이 하나에 2천원이었어요. 싯가랑 비교해서 가격을 얼마로 정하는 게 좋을지 등을 헤아리는 것 자체가 공부더라고요. 평소 2천원은 정말 쉽게 써버리는 돈인데 그만큼을 버는 건 정말 어렵더라고요.”
최양은 “길거리에서 모금활동 하는 분들을 보면 ‘모금한 돈이 어떻게 쓰일까?’ 하고 의심만 했는데 이제는 모금 단체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보고,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무엇인지도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이 팀의 이름인 니은니은은 ‘나눔’의 초성에서 따온 것. 두 친구는 “수동적인 봉사활동이 아닌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실천해보는 나눔활동이 보편화되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공교육-나눔기관, 사회참여형 교과수업 사례 공유해 해외의 나눔교육
“우리나라의 나눔교육에서 말하는 ‘나눔’의 의미를 ‘박애’, ‘자선’을 뜻하는 ‘필란트로피’(Philanthropy)와 같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나눔교육에서 나눔이 ‘기부’, ‘봉사’에 국한된다면 미국식 나눔교육을 뜻하는 ‘필란트로피 에듀케이션’(Philanthropy Education)에서 나눔은 ‘사회공헌’ 등 더 넓은 의미를 포함하는 일종의 ‘시민교육’입니다.”
지난해 아름다운재단의 ‘기부문화 석박사논문지원사업’에 선정되어 한 달 동안 미국 미시간주로 연수를 다녀온 박신영씨(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사)의 설명이다. 박씨는 연수 기간 동안 미국의 비영리 나눔교육 전문기관 ‘러닝 투 기브’(www.learningtogive.org)의 사례 등을 접했다.
미국에서 필란트로피 에듀케이션은 미국 각 지역에 있는 사립학교들이 중심이 되어 미래 리더가 될 만한 소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일종의 엘리트 리더십 교육이었다. 그러다 2000년 초, 캘로그재단이 설립한 러닝투기브는 미국 전역 학생들이 필란트로피 에듀케이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모든 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연수를 실시하고, 관련 교안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박애’, ‘자선’, ‘사회공헌’ 등은 사회 구성원 누구나 알아야 할 ‘시민의식’이라는 뜻에서다.
미국에서는 필란트로피 에듀케이션 실천 방법으로 ‘서비스 러닝’(Services Learning)을 실시한다. 이는 우리 말로 표현하면 ‘봉사학습’인데 다양한 교과목들을 사회참여형 프로젝트와 접목하는 것을 말한다. 박씨는 “생물시간이라면 텃밭에서 직접 농작물을 재배해서 이를 팔아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면 어떨지 등을 논의하고 실제 행동에 옮겨보도록 돕는 프로젝트형 수업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나눔교육 비영리기관들은 관련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교사들과 나누고, 정부는 비영리기관과 공교육 현장이 잘 협력하도록 돕는다.
캐나다에는 토스칸-카셀리재단이 만든 중등학생 대상 프로그램 ‘유스 인 필란트로피 캐나다’(이하 YPI, www.goypi.org)가 있다. 중등학교가 YPI에 등록하면 모든 재학생들은 해당 학년에서 정규 학습과정으로 YPI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학생들은 학급 또는 학년 단위로 팀을 구성해 지역사회가 직면하는 사회 문제를 찾고, 그것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지역 단체들을 조사·분석한 뒤 그 가운데 한 단체를 선택해 그곳을 직접 방문한다. 그리고 그 단체가 다루는 문제에 대해 더 상세히 조사해 YPI 주최 발표 대회에 나간다. 가장 잘한 팀한테는 5000달러의 상금을 주고, 학생들이 이를 자신들이 선택한 단체에 전달할 수 있게 한다. 이 프로그램에는 미국, 영국,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학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영국의 ‘기빙네이션’(www.g-nation.org.uk)은 청소년이 영국 내 비영리단체와 사회 이슈 그리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람직한 시민 행동 등을 배우도록 커리큘럼을 짜고, 선정한 나눔 이슈와 관련해 사회적 기업가·기금 모금가·자원봉사자로서 활동할 기회를 마련한다. 또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일정 기금과 자원 등을 학교에 제공하기도 한다.
김청연 기자
내가 사는 마을의 문제점 찾아내
나눔 기획-모금-배분활동 직접 구성
아동학대·독거노인 등 다양한 주제로
나눔대상 정해 온·오프 모금활동
형식적 기부·봉사활동서 몰랐던
사회참여의식에 경제관념까지 생겨 지역 독거노인 난방텐트 해주려 온라인 모금
‘안드로메다’ 학생들이 지난 1월24일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 주민들을 위해 연탄을 나르고 있다. 아름다운재단 제공
지난 2월26일 ‘나눔교육 반디 나눔응원전-물음표와 느낌표’에 참여한 학생들이 모금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고 있다. 아름다운재단 제공
‘니은니은’ 학생들이 모금활동에 대한 계획을 다른 모둠 학생들 앞에서 발표하고 있다. 아름다운재단 제공
<학년별 나눔교육 정보>
-나눔저금통 (유아-초등학교 저학년 대상)
유대인들은 자녀들이 어릴 때 본인을 위해 쓸 돈과 나눔을 위해 쓸 돈을 각각 저금할 수 있도록 2개의 저금통을 선물한다. 이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연스럽게 나눔을 실천한다고 한다. 세계적인 나눔 리더로 불리는 빌 게이츠가 대표적이다.
<나눔저금통 진행방법>
①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주제(환경, 독거노인 등)와 나눌 수 있는 것(동생 돌봐주기, 집안일 돕기, 친구 도와주기 등)을 정한다.
② 미션을 완수했을 때 용돈을 주고 이를 본인을 위한 것과 다른 사람을 위한 것으로 나눠 저금하게 한다.
③ 저금통이 다 찼을 때, 그 돈을 처음 정했던 나눔의 주제와 관련된 단체에 기부한다.
-나눔학급운영 (초등학교 저학년 대상) 나눔교육을 시행하는 비영리단체에 올라온 교사를 위한 나눔교육 교안을 참고해 학급운영에 활용하고, 교과과정과 연계해 나눔교육을 진행할 수도 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나눔은 왜 필요한지 그리고 무엇을 나눌 수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알아본 뒤 나눔장터나 학급에서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생일나눔: 생일선물 대신 친구이름으로 기부 등)를 통해 모금을 하고 관련 단체에 기부를 할 수 있다.
-나눔 프로젝트, 동아리 활동 (초등학교 고학년~중학생 대상)
초등학교 고학년~중학생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보다 주체적으로 나눔 프로젝트를 실천할 수 있다. 동아리 성격과 관련한 지역 내 단체를 조사하고 자원봉사활동이나 모금, 캠페인 등을 진행할 수도 있다. 꼭 나눔, 봉사활동 관련 동아리가 아니더라도 동아리 축제 등에서 모금 활동을 하여 모금한 돈을 기부할 수도 있다.
자료 제공: 아름다운재단
공교육-나눔기관, 사회참여형 교과수업 사례 공유해 해외의 나눔교육
미국의 비영리 나눔교육 전문기관 ‘러닝투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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