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대규모 입시비리로 물의를 빚었던 영훈국제중학교(영훈중)의 특성화중학교 지정취소를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교육부가 그동안 ‘특권학교 유지’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온 점에 비춰 앞으로 두 기관 사이에 충돌이 예상된다.
이근표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은 2일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3월까지 특성화중 3곳과 특목고 10곳의 운영성과를 평가한 결과 지정취소 기준 점수(60점)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영훈중과 서울외고를 상대로 4월 중순께 청문 절차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국장은 “영훈중은 알려진 대로 입시비리가 낮은 점수를 받게 된 주 원인이었고, 서울외고의 경우 정량평가 지표가 전반적으로 다른 학교에 견줘 낮았다”고 설명했다. 두 학교의 지정취소 여부는 오는 14~17일 청문 절차를 거친 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결정한다.
이번 평가는 특목고가 사교육 주범으로 꼽혀 폐지론이 일자 정부가 2010년 도입한 것으로 외국어고·국제고·국제중이 문을 연 이후 처음 이뤄졌다. 5년 단위로 학교 운영성과를 따지되, 기준에 못 미치는 학교는 지정을 취소해 특수 목적 학교의 책임을 강화하자는 게 제도의 취지다. 서울에서는 외국어고 6곳, 과학고 2곳, 국제중 2곳, 체육중 1곳이 평가대상에 올랐다.
평가는 지난해 연말부터 서면평가와 현장평가로 진행됐다. △학교운영 △교육과정 및 입학전형 △재정 및 시설 △교육청 자율평가 등 4개 영역에서 28개 지표를 기준으로 학교쪽이 낸 증빙자료를 살핀 뒤 2주간의 현장실사를 진행했다. 외국어고 평가위원장을 맡은 남신동 카톨릭대 겸임교수는 “대부분의 학교가 교육의 비전을 설정하기보다 진도표 위주로 가르치고 있었고 ‘입시명문고’라는 점만 홍보하고 있었다. 평가 대상 학교들이 대부분 기준점수를 조금 넘긴 60점대의 점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학교가 지정취소 기준점수 이상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애초 교육부가 만든 평가지표가 부실해서라는 지적이 나온다. 커트라인이 기존 자사고 평가 기준점수(70점)보다 낮은 60점인 데다, 각 지표마다 우수·보통·미흡의 3등급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데 ‘미흡’ 등급이어도 1점이 매겨진다.
조남규 전교조 서울지부 정책실장은 “100점 만점에 25점을 기본점수로 준 상태에서 35점만 더 받으면 통과가 보장되는 ‘봐주기’ 평가였다. 교육부 스스로 밝힌 고교교육 정상화 약속을 사실상 뒤집은 것”이라고 짚었다.
솜방망이 평가조차 뚫지 못한 두 개 학교의 지정취소 절차에 교육부가 동의해줄지도 관심이 모인다. 교육부는 장관의 동의 없이는 국제중·특목고·자율형사립고 등의 지정취소를 할 수 없도록 이미 시행령을 개정했다. 서울교육단체협의회는 성명을 내어 “교육부는 서울시교육청의 서울외고·영훈중 지정취소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엄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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