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반계 고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에서 노동 관련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8시간 일하고, 8시간 쉬고, 8시간 잔다’는 현대사회의 기본 규칙이나 ‘일·가정 양립’을 지향한다는 정부 정책과도 거리가 먼 초라한 수치다. 심지어 졸업 뒤 취업을 목표로 하는 특성화고에서도 노동권 교육에 소극적이다. 노동계·시민단체·교사 등의 줄기찬 요구에 노동권을 다룬 교과서 분량이 조금씩 늘고는 있지만, 양과 질 모두에서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많다.
<한겨레>가 일반고 사회과 교과서(2009교육과정의 <사회>, <경제>, <법과 정치>, <사회·문화>) 17종을 분석해보니, 전체 4612쪽 중 노동 관련 내용은 83쪽(2%)뿐이었다. 노동3권(8종), 근로기준법(7종),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5종), 산업재해(7종), 비정규직(6종) 등 노동자의 핵심 권리와 관련한 내용을 다룬 교과서가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최저임금(13종)과 노동조합(11종) 정도만 과반이 다루고 있을 뿐이다.
17종 분석 결과 4612쪽 중 83쪽
최저임금만 13종에서 다룰 뿐
1/3은 근기법·노동3권 등 안다뤄
‘노동’ 단어 자체를 기피하기도
특성화고에서도 소극적 교육
사회과 가운데 노동기본권을 상대적으로 많이 다룬 교과서는 <사회>와 <법과 정치>다. 고교 1·2학년이 배우는 <사회> 교과서 4종은 3~4쪽 분량의 소단원 ‘근로자의 권리’에서 최저임금·노동3권 등의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직전의 2007교육과정 <사회> 교과서 9종에서 노동권을 전혀 다루지 않거나 ‘사회갈등의 한 유형’으로만 스치듯 언급한 것에 비하면 나름 진전된 내용이다. <법과 정치> 교과서 3종은 7~8쪽 분량을 할애해 노동법을 소개한다. 비상교육이 낸 교과서에선 ‘청소년이 일을 할 때 알아야 할 점들은 무엇일까’를 주제로 1쪽 분량으로 노동가능연령·야간노동·휴일근로·부당노동행위 등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와 <법과 정치>에서 노동 관련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와 3%뿐이다. 분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다. 더구나 2009교육과정에서 사회과는 <한국사>를 빼고는 모두 선택과목이라, 해당 과목을 선택하지 않는 학생은 이마저도 배울 기회가 없다. 심지어 <사회>는 수능 선택과목도 아니어서 배우는 학생이 더 적을 수밖에 없다.
<사회문화>는 ‘산업화와 노동문제’ 단원에서 노동 관련 내용을 다루지만 서구 산업화 역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제>도 ‘노동자의 역할과 직업선택’ 단원이 있긴 한데, 교학사 외에는 최저임금조차 다루지 않는다.
용어 선택의 편향성도 심각하다. 노동3권을 ‘근로3권’으로, 노동자를 ‘근로자’로 바꿔 쓴 교과서가 적지 않다. 독재정권 시절, 세계 노동자의 피와 땀의 역사가 밴 노동절(5월1일)을 금지하고 ‘근로자의 날’(3월10일)을 ‘관제 기념일’로 내세우며 노동을 불온시한 반노동적 인식의 흔적이 짙다.
졸업 뒤 곧바로 취업할 가능성이 높은 특성화고의 상업·정보계열 필수과목인 <상업경제>는 노동 관련 서술이 아예 없다. 특성화고 공업계열 필수과목 <공업입문>에는 2007교육과정 개정 논의 과정에서 노사정위원회의 노동교육 강화 권고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의 요구로 ‘근로자의 권리와 의무’라는 단원이 새로 생겼는데, 아직은 내용이 알차지 못하다.
교과서의 이런 ‘노동권’ 홀대는 교육과정을 짤 때 노동인권 교육이 고려되지 않은 탓이 크다. 1~2차 교육과정에 포함된 ‘노동’이란 단어는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를 선포한 뒤 만들어진 3차 교육과정부터 사라졌다. 6월항쟁 이후인 1988년 고시된 5차 교육과정부터 노동·근로·노사관계 등의 용어가 재등장하고 있으나 산업화·경제성장 등 경제 분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노사정위에 이어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교육부 장관한테 중·고교 교과과정에 노동기본권 등 노동인권 교육을 필수 교과과정으로 다루라고 권고한 배경이다.
신성호 전교조 참교육실장은 “사회과 교육과정에서 경제의 위상은 여전히 높지만 노동은 (한 학년에) 고작 한 시간 수업할 분량의 내용에 그친다”고 짚었다.
김민경 엄지원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