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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안 쓰는 크레파스·이면지가 짠~하고 ‘변신’

등록 2015-04-20 20:23수정 2015-04-21 10:32

지난 10일 서울 은평구 청년허브 안 ‘옮김’ 사무실 앞에서 크레파스 원정대와 옮김 활동가가 수거한 중고 크레파스를 색깔별로 분류하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은평구 청년허브 안 ‘옮김’ 사무실 앞에서 크레파스 원정대와 옮김 활동가가 수거한 중고 크레파스를 색깔별로 분류하고 있다.
자원 재활용 나선 아이들
방과후 함께 어울리다 ‘옮김’ 단체 만나
지난해 ‘크레파스 원정대’ 꾸리고
버리고 안 쓰는 학용품 모아 재가공
쓰임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달해
홍보포스터·명함 만들어 구청 등 방문
자원의 소중함 알고 교과학습 효과도
와르르. 라면박스 크기 상자를 뒤집어 테이블 위에 쏟자 크레파스가 한가득이다. 본격적인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데 섞인 크레파스를 빨강·주황·노랑·초록·파랑·갈색·하늘색·검은색으로 나눠 일일이 분류해야 한다. 색깔별로 다시 녹여 재활용 크레파스를 만들기 위해서다. ‘크레파스 원정대’(이하 원정대)가 매번 하는 일이다.

지난 10일. 서울시 은평구 청년허브 1층에 위치한 ‘옮김’ 사무실 앞. 샛노란 후드집업을 입은 다섯 명의 아이들은 익숙하게 두 팔을 걷어붙이고 크레파스를 향해 ‘돌진’했다. 시종일관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원정대는 지난해 서울 서대문구 홍연초등학교 3~6학년 여섯 명이 모여 만든 마을 자치 동아리다. 여기저기서 중고 크레파스와 이면지를 모아 재가공 작업을 한 뒤 미술교육이 취약한 곳이나 교구가 필요한 아이들 등에게 보내고 있다.

원래 이들은 마을 주민센터 유휴공간을 활용해 만든 ‘꿈틀학교’ 학생들이었다. 이 학교는 방과후에 아이들을 돌보는 마을교육공동체였다. 꿈틀학교를 운영한 최명선씨는 “아이들과 함께 옥상에 설치된 태양열전지판을 활용한 환경교육도 하고, 텃밭도 가꾸고 간식을 만들어 주민센터 직원들과 나눠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후 공간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서울 전역을 돌며 체험학습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광화문 ‘위아자 나눔장터’ 행사에서 ‘옮김’을 만났다”고 말했다.

‘옮김’(www.facebook.com/omkim2012)은 버려지는 자원을 새로운 가치의 물품으로 만들어 필요한 곳에 ‘옮기는’ 청년단체다. 원정대는 옮김과 함께 안 쓰는 크레파스·이면지를 모아 직접 재가공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단원 모집부터 중고 크레파스와 이면지를 모아달라는 홍보 포스터를 직접 만들었고 최씨는 에스엔에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렸다. 덕분에 전국 각지 학교나 회사 또는 개인들이 이면지와 크레파스를 택배로 보내오고 있다. 가까운 곳은 원정대가 직접 수거를 하러 가기도 한다.

천진양은 한 가정집을 방문해 크레파스와 이면지를 수거해 오던 날을 잊지 못했다. “그분이 모아준 종이랑 크레파스 양이 몇십㎏이나 돼서 우리를 차로 데려다줬어요. 옮기는 도중에 하필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서 종이가 막 날아가고 고생했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크레파스와 이면지를 수거해 만든 재활용 스프링 노트와 크레파스
크레파스와 이면지를 수거해 만든 재활용 스프링 노트와 크레파스
옮김 활동가들은 학교나 회사에 찾아가 활동 내용을 알리고 수거함을 설치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매달 15일 기부해주는 이들의 이름과 물품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공유했다. 옮김과 원정대는 각각 수거한 이면지와 크레파스를 모아뒀다 틈틈이 재활용품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예정 옮김 사무국장은 “크레파스 모양을 찍어낼 틀도 실리콘으로 직접 만들고 재활용 노트도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우리만의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면지는 절반으로 접어 안 쓴 면을 앞뒷장으로 만들어 스프링을 끼우고 표지를 꾸며 재활용 노트로 ‘변신’시켰다. 크레파스는 색깔별로 녹여서 틀에 붓고 식힌 뒤 겉을 이면지로 싸서 스티커를 붙였다.

크레파스 원정대가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문화회관 사무실을 방문해 안 쓰는 이면지를 수거하고 있다.
크레파스 원정대가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문화회관 사무실을 방문해 안 쓰는 이면지를 수거하고 있다.
크레파스를 쉬지 않고 분류하던 이민규군은 “처음 재활용 크레파스를 만들 때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정해진 틀에 붓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녹인 크레파스 사이로 공기가 들어가는 바람에 굳으면서 네모난 크레파스 가운데가 푹 파였어요. 실패한 건 우리가 쓰기로 하고 두 번째에는 좀 더 신경 써서 제대로 만들었어요.”

지난 14일. 원정대가 다시 모였다. 서대문구청과 문화회관에 이면지를 수거하러 가기 위해서다. 문화회관은 매달 셋째 주 화요일, 구청은 매주 화요일 방문하고 있다. 원정대는 전날 직접 만든 크레파스 모양의 입체명함과 감사의 의미로 선물할 인삼사탕도 준비했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직원들과 명함을 주고받고 한쪽에 모아둔 이면지를 챙겨 담는 등 쉼없이 움직였다.

서경환 서대문구청 홍보기획팀장은 “다른 과에 가서 안 쓰는 이면지를 직접 받아다 외부에 나가면 안 되는 서류를 분류한 뒤 원정대가 오면 준다”며 “원정대 활동이 아이들에게 ‘산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 팀장은 아예 본인의 책상 옆에 이면지를 모아둘 상자를 마련해 겉면에 원정대 홍보 포스터까지 인쇄해 붙여 놨다. 최씨는 “처음에 사무실 들어갈 때는 직원들이 어리둥절해했는데 지금은 재밌어한다. 삭막한 사무실에 아이들이 찾아가면 잠깐이나마 활력소가 된다”고 말했다. 이날 원정대는 약 15kg의 이면지를 모았다.

단원 모집과 활동 홍보를 위해 크레파스 원정대가 직접 만든 포스터.
단원 모집과 활동 홍보를 위해 크레파스 원정대가 직접 만든 포스터.
보통 학교에서 운영하는 자치동아리는 지도 교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원정대는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활동에 나선다. 아이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회의를 하고 수거를 하러 다닌다. 매달 넷째 주 토요일에는 옮김 사무실에 가서 수거한 이면지와 크레파스의 무게를 잰 뒤 막대그래프와 꺾은선그래프로 그려 표시한다. 매달 수거한 양을 확인하고 이후 활동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다. 단체나 기관을 방문할 때 담당자에게 자신들을 소개할 명함이나 홍보 포스터도 직접 만든다.

원정대 활동은 아이들에게 자원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동시에 교육과정을 접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실제 막대그래프와 꺾은선그래프는 4학년 수학시간에, ‘나의 미래 명함 만들기’는 실과나 미술, 사회시간에 학생들이 배우고 익히는 내용이다. 최씨는 “아이들이 하는 일이 단순히 버려지는 자원의 낭비를 막고 재활용품으로 어려운 친구들을 돕자는 의미를 뛰어넘어 교과학습과도 자연스레 연결됐다”고 말했다.

민규군은 “학교와 달리 크레파스 원정대는 우리가 모든 걸 직접 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지금은 선생님 도움을 받는 부분도 있지만 점점 더 우리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전지나양은 “그렇게 많은 크레파스가 버려지는 줄도 몰랐고 재활용 크레파스를 직접 만드는 것도 신기했다”며 “이 활동을 하면서 원정대 아이들과 더 많이 뭉치게 되고 친해졌다”고 말했다.

원정대의 1차 목표는 ‘이면지와 크레파스 각각 100㎏ 모으기’다. 따로 기간을 정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부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4월 현재 벌써 이면지는 50㎏, 크레파스는 20㎏가량 모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원정대 막내인 정보라양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앞으로 크레파스를 자꾸자꾸 모아서 우리의 최종 목표인 ‘크레파스 100㎏ 모으기’를 꼭 달성할 거예요. 여러분, 크레파스랑 이면지 많이많이 기부해주세요~!”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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