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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공부 스트레스 심한 아이 마음속엔 초조해하는 부모가 있다

등록 2015-04-20 20:25

윤다옥 교사의 사춘기 성장통 보듬기
요즘 학교에서는 한참 정서행동특성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학생들의 정서·행동 발달 경향을 파악해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조기 발견하고 예방하기 위해 실시하는 검사다. 문항 중에는 ‘자살 생각과 계획’에 관한 것이 있다. 이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한 아이들에게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공부에 대한 것이다. 실제로 자살 항목에 체크를 해서 상담실에 오는 학생들 가운데 대다수가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스트레스의 정도가 크고 지속기간이 길었던 아이들일수록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달리 생기가 없어 보였던 한 아이도 그런 경우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공부에 대한 기대를 많이 했고, 그로 인한 부담과 스트레스가 컸다. 초등 고학년 때 이러한 문제로 상담을 받았던 경험을 얘기하는데, “그때는 해소가 되었는데, 그러다 더 엉켜버렸고, 지금은 그 상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거예요”라고 했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자기 마음을 말할 수 있고 누군가 자기 말을 그냥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아이를 둘러싼 여건이 달라지지 않으면서 어차피 변하지 않는다며 체념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찾아낸 것이 매사에 무감각해지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지금이 나아요. 아무 생각 없이 살아요. 행복하진 않지만 그냥 지금 이대로가 나아요.”

“다 귀찮아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어요. 계속 혼자 있고 싶어요. 공부 말고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잘할 자신도 없고, 부모님은 공부가 제 적성에 맞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노는 것도 싫고, 하루 놀게 되면 힘들 것 같아요. 공부할 게 한번 밀리면 못 따라잡으니까, 애들이랑 같이 신나게 놀아본 적이 없기도 하고….”

“공부에 대한 잔소리 들을 때, 시험 전날, 그냥 힘들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이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어요. 부모님에게 이런 얘기는 귀찮아서 안 해요, 어릴 때도 그냥 친구관계만 얘기했어요.”

이렇게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그 부모들에게 전달했을 때,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게 너무나 어려워서 힘이 빠질 때가 있다. 그런 부모들은 “사춘기 애들은 원래 좀 예민해서 더 힘들어하고 죽고 싶은 생각도 일시적으로 하는 것 아니냐”, “아이의 상태가 그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라고 본다”, “다 지나고 보면 문젯거리도 안 된다”는 말을 주로 한다. 때로는 지쳐 있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응급처방으로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일시적으로 허락해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이가 기운을 좀 차렸다 싶으면 다시 원래의 경기장에 집어넣는 것이다. 어떤 경우엔 아이가 겪는 어려움의 초점을 ‘공부’가 아닌 ‘친구관계’에 맞춰 전학을 시키기도 한다. 아이가 이미 우리 부모에게는 공부 얘긴 해도 소용이 없다고 포기하고 그나마 부모에게 먹힐 만한 얘기인 친구관계를 말한 것이란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우리 아이 수준에 맞는 친구들 속에서 공부에 전념하게끔 하면 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

아이의 그 이후 얘기를 듣진 못했지만, 아이에게 다른 더 좋은 인연이 닿아 마음의 힘이 커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내가 모든 아이들을 도울 수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음을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놓치는 아이들에 대한 아쉬움은 한참을 지나도 잘 없어지지 않는다. 내가 뭔가를 다르게 했다면 아이의 부모를 설득할 수 있었을까?

곧 중간고사 기간이다. 아이들의 학업 스트레스는 벌써 많이 고조되어 있다. 평상시에도 이미 아이들은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려 있는 상태라 정말 별거 아닌 일에도 짜증 내고 울컥한다. 우리는 이런 아이들을 얘기하며 안쓰러워하고 미안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내 아이의 경우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설사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험난한 시절을 살아가게 된 내 아이가 가엾고 걱정되기 때문에 더 강하게 준비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처럼 살래? 너라도 잘 살아야지” 또는 “우리 정도 살려면 이 정도는 네가 따라와야지” 하고 말하면서.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쉬자. 뭔가에 쫓기듯 불안하고 초조해진 마음을 가만히 내려놓자. 그리고 아이가 나를 어떤 부모로, 어떤 사람으로 보길 바라는지, 아이가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길 바라는지를 마음속으로 묻는다. 부모 자신의 못남을 탓하지도, 내 아이의 모자람을 탓하지도 말기. 그동안 부모로서의 구실만 하며 내 삶을 없앤 것은 아닌지, 아이를 나 자신의 연장으로 여긴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겠다. 내 삶이 의미 있고 풍요로워진 만큼 아이는 자신의 힘으로 성장하고 꿈을 꾼다.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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