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중학교 영어 교과서. 자료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제공
북한의 청소년들도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까?
한반도의 영어 교육 열풍은 북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Thank you, the Great Leader Marshal Kim Jon Il!(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감사합니다!)” 북한의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 실린 지문 중 일부다. ‘제인’과 ‘영수’의 일상적인 대화로 구성된 한국의 영어 교과서와는 지문의 성격이 사뭇 다르다.
30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최한 ‘통일 대비 남북한 통합 교육 과정 방안’ 세미나에서 발표자로 나선 김진숙 연구원 등이 “통일을 강조하는 정치적 흐름으로 볼 때 통일 교육에 대한 좀더 전문적이고 발전적인 논의가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짚은 이유다.
북한은 특히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며 초·중등 의무교육 기간을 11년에서 12년으로 늘리고 영어와 컴퓨터 교육을 강화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낸 ‘통일 대비 남북한 통합 교육과정 개발의 방향과 과제’ 보고서를 보면, 개정 전 교육과정에서도 북쪽은 우리의 중학교에 해당하는 초급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중급 중학교에서 도시 학생의 경우 영어를 6년 동안 모두 628시간 배우도록 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175시간을 배정해 집중적으로 영어를 가르친다. 다만 영어 공부의 목표가 남쪽과 다르다.
“학생들은 다른 나라 말도 조선 혁명을 위하여 배운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영어의 기초를 닦기 위하여 열심히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북한식 영어 교육의 목표다. 실제로 교과서의 내용은 ‘기-승-전-김일성 부자’로 귀결된다. 한국의 고3에 해당하는 중학교 6학년의 영어 교과서 단원별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과서 내용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자료에서 옮겼다.)
1단원
학교 시설에 관한 내용: 김일성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좋은 학교 시설에서 공부하고 있고 김일성한테 감사해야 한다는 내용.
2단원 친구와 일상에 대해 나누는 얘기로 시작해서 집에서 키운 꽃을 만경대(김일성 생가)에 바치겠다는 내용.
3단원 올림픽의 기원과 역사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끝에 북한 운동선수들이 김정일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교과서 내용 측면에서,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의 경우는 전반부에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에 대한 찬양을 제외하고는 북한의 정치색이 많이 포함되지 않다. 하지만 고학년으로 갈수록 표면적으로 나타난 단원의 제목과 내용이 심각한 불일치를 보였다”는 게 김 연구원의 분석이다.
영어 외에 ‘소학교’ 때부터 시작하는 정치사상 교육도 고학년으로 갈수록 단위 수업시간이 늘고 내용도 심화된다. 남쪽보다 ‘과학 교육’을 강조한 점도 눈에 띄다. “북한에서는 과학의 수업 비중이 가장 높은데, 남한에서도 과학의 필수이수 단위가 2009 개정 교육과정 10단위에서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12단위로 증가해 남한도 과학의 수업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정치사상 교육 내용을 제외하면, 남쪽과 북쪽의 교과 구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연구진은 설명한다. 다만 여건이 크게 다르다. 세미나에 참석한 송두록 세현고 교사는 “전체 수업시수가 북한은 남한의 49~58%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서로 다른 여건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혼란을 막을 첫 걸음이다. 남북한 통합교육의 뼈대를 세우기엔 북한 교육 관련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인표 춘천교대 교수는 “북한의 교육제도 전반에 대한 모든 자료의 수집이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비치된 북한 관련 교육자료는 너무도 미진할 뿐만 아니라 일관성 있게 마련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승배 전주교대 교수도 “연구자가 제시한 자료를 살펴보면, 우리의 입장에 북한을 맞추려는 인상이 짙다. 북한의 교육과정 문서를 입수해 북한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사용한 남북한 통합 교육과정 문서 작성 작업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