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마당
어버이날 선물 하면 손편지가 먼저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 삐뚤빼뚤 서툴지만 정성스럽게 쓰던 감사의 손편지. 그런데 좀 더 자라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잘 쓰지 않게 됐다. 손편지만큼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좋은 도구도 없지만 이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는 게 사실이다. 요즘은 초등학생들조차도 부모님께 감사 손편지 쓰는 일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충청지방우정청이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께 감사 손편지 쓰기 행사를 한다는 소식에 눈이 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반길 일만은 아니다. 이 행사는 초·중·고교 학생들이 손편지로 부모님에게 감사를 전하는 ‘아름다운 편지 쓰기 공모대회’다. 5월8일까지 손편지를 접수하고, 심사를 해서 우정청장상, 교육감상 등을 준다. 대전교육청은 우정청과 함께 행사를 주최하고, 세종·충북·충남 3개 시·도교육청은 후원하기로 했으며, 이들 교육청은 교육감상을 주기로 했다.
‘공모대회’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상을 준다면 부모님께 감사편지 쓰기 ‘경진대회’다. 상을 준다는 것은 점수를 주고 순위를 매기는 것이니 경진대회가 맞는다. 부모님께 쓴 감사편지에 점수를 매길 수 있는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아이들이 부모님께 전하는 고마운 마음을 순위로 정한다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개구쟁이 초등학생이 서툴지만 꾹꾹 눌러쓴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한 줄이 아이 부모님에게는 어떤 화려한 글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다. 아이와 부모에겐 글의 길이, 화려함 등이 감동의 잣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개구쟁이의 한 줄 글은 공모대회에서 결코 순위에 들 수 없을 것이다. 또 화려한 미사여구로 가득찬 편지글이 과연 감사의 마음을 얼마나 담았는지 측정할 수 있을까?
물론 어버이날을 맞아 학생들이 감사 손편지를 쓰는 것은 아름답고 교육적이다. 하지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방식도 아름답고 교육적이어야 한다. 교육감상 등 각종 표창을 하는 경진대회로는 부모님께 고마운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마음 자체를 변질시킨다. 부모님께 고마워하는 마음까지 점수를 매기는 것이 교육청에서 말하는 인성과 효는 아닐 것이다. 부모님께 쓴 감사편지가 상장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대전·세종·충북·충남 시·도교육청은 이런 반교육적인 행사 후원을 중단하고 교육감상을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 올해 어버이날에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부모님께 고마운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쑥스럽지만 이제 나도 써보려 한다. 편지를 받은 부모님의 환한 웃음을 상상해본다.
엄경출 충북교육발전소 사무국장
엄경출 충북교육발전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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