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부산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부산관광고의 명장공방 기술전수실에서 서정희 요리명장(오른쪽)이 학생들에게 수타면 뽑아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밀가루 반죽을) 쭉쭉 늘려. 좀더 힘 있게 쭉쭉~”
“너는 반죽이 왜 이리 약해!”
“어지간히 치대고 팍팍 때려.”
“단디(‘제대로 정확히 하라’는 경상도 방언) 해라. 단디!”
수타면 뽑기가 한창이다. 셰프의 날카로운 지적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정신없는 주방이지만 중국집 주방은 아니다. 지난달 24일 부산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부산관광고의 명장공방 기술전수실의 풍경이다. 2012년 대한민국요리명장에 선정된 서정희 명장은 명장공방 기술전수실을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지도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무조건 대학에 가고 보자’는 인식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대학이 취업사관학교처럼 변질된 탓에 대학에 가더라도 학문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보다는 취업 준비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준비를 한다 해도 현실적 대안이 딱히 생기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대학을 가나 안 가나 학생들의 최종 목표는 ‘취업’이다.
이런 흐름에 따라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의 인기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2015학년도 서울지역 특성화고 입학경쟁률은 1.07 대 1이었고 다른 지역도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같은 해 마이스터고 경쟁률을 보면 대덕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는 4.6 대 1, 수도전기공업고, 광주자동화설비공고, 평택기계공고는 3 대 1을 넘었다. 종로학원 하늘교육에 따르면 올해 마이스터고의 내신 평균 합격선은 30% 이내였다. 그만큼 성적이 뒤처지거나 집안 형편 때문에 취업이 급박해져 특성화고를 선택하기보다 본인의 적성을 살려서 일찍 사회 진출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늘었다는 뜻이다.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에는 일반고에 다니는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로를 빨리 결정한 뒤 실무를 배우며 학습과 일을 병행하는 학생들이 많다. 학교 차원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다. ‘일단 대학’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진로를 찾아 노력하고 있는 학생들과 이를 돕는 교육 현장을 가봤다.
진로 우선하는 흐름 속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학생 몰려
기술·기능 명장들 학교 내 공방 설치해
본인만의 보유 기술 맞춤형 전수
학교·기업 공동 교육과정 만들어
학생들 산업 현장 이해도 높이기도
지난달 24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에 위치한 동구기업 작업장에서 가공팀 김규대 부장(왼쪽)이 창원기계공고 김인범군에게 고속가공기로 프레스를 찍어내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요리명장이 수타면·만두빚기 등 가르쳐
부산관광고에서 운영하는 명장공방은 교육부에서 시행하는 ‘맞춤형 기술전수 프로그램’이다. 학교 내부에 명장공방을 설치하고 명장이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식이다. 현재 전국 7개 시범학교가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의 목적은 명장과 학생 모두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명장은 숙련기술과 장인정신 및 다양한 산업현장의 노하우를 학생에게 전수하며 후계자를 양성한다. 학생은 명장을 롤모델 삼아 전문기술을 배우고 창업이나 취업 등 자신의 진로를 구체적으로 설계할 기회를 갖는다.
부산관광고의 경우 34명의 학생이 일주일에 세 번 명장공방에서 방과후 집중 수업을 받고 있다. 명장은 학교와 교육과정을 공동으로 개발한다. 서 명장은 본인의 음식 레시피를 정리해 담당교사와 함께 교재도 만들고 있다. 현재 학생들은 수타면 만들기와 규아상, 편수 등 한식·중식 만두 빚는 법을 배우고 있다. 서 명장은 “이 과정 이후 죽을 만들고 부산 향토음식인 동래 해물파전과 해물탕, 아귀찜 만드는 법도 전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통 조별로 이뤄지는 요리 실습은 재료 손질이나 요리, 설거지 등 파트를 나눠서 진행한다. 이에 반해 명장 수업은 일대일 교육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해내야 한다. 그만큼 실전에서처럼 모든 단계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 서 명장은 “수타면을 제대로 만들려면 6개월 이상 매일 훈련해야 한다. 2개월째 접어든 학생들이 수타면 반죽 꽈배기까지 만든다는 건 대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힘들어했다. 산업현장 교육이라 대충 하고 마는 실습 수준이 아니라 현장과 똑같이 이뤄져 노동 강도가 세다. 하지만 진로를 일찍 찾고 본인의 적성에 맞는지 구체적으로 경험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3학년 김기원군은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대신 누나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면서 요리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경남 밀양에 살다 이 학교에 가기 위해 유학을 온 김군은 “학교 공식 과정에는 한식·양식·회만 있는데 이번 기회에 중식 분야를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수타면 뽑는 걸, 그것도 명장에게 배운다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처음에는 반죽이 손에 달라붙고 힘조절이 안 돼서 어깨가 아팠는데 지금은 그나마 익숙해져서 나아지고 있다.”
명장은 단순히 요리뿐만 아니라 직업윤리 교육도 하고, 창업·취업에 대한 고민도 상담해준다. 학생들보다 앞서 요리사의 길을 걷고 있는 인생 멘토의 조언인 셈이다. 김군도 “최종 목표는 창업이다. 명장도 사업을 하셨던 분이라 수업 틈틈이 창업 관련해서 상담도 한다. 창업을 하려면 구체적으로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등을 물어봤다”고 말했다.
조리과 김배의 교사는 “우리 학교는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해 제주도, 전라도는 물론 각지에서 학생이 온다. 지난해 취업률을 보면 60% 이상을 보였다”며 “예전과 달리 일반고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이면서도 진로가 뚜렷해 오는 학생들도 많다. 이런 친구들은 요리와 공부 둘 다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한식조리과 2학년 김혜리양은 “중3 때 엄마가 인문계 고교를 가라고 했다. 내가 살던 경남 진주에서 지금 학교가 있는 부산까지 거리도 먼 데다가 내신이 상위 20%라 인문계를 갈 수 있는 성적이었기 때문”이라며 “내가 고교에 입학할 당시 진주 인문계고 커트라인이 중학교 내신 70%였는데 내가 지원한 관광고는 55%로 오히려 더 높았다”고 말했다. 입학 당시 김양은 “특성화고가 취업이 잘되고 나는 요리에 관심이 있다”며 부모님을 설득했고, 지금 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와 기업 오가며 현장 적응능력 키워
경남 창원시 성산구에 위치한 동구기업은 금형프레스를 설계·조립·가공하는 업체다. 3월부터 이 업체는 창원기계공고와 협약을 맺고 학생들에게 현장 교육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이 학교는 산학일체형 도제학교(이하 도제학교)로 스위스·독일의 도제식 직업교육을 하고 있다. 도제식 직업교육은 학생이 학교와 기업을 오가며 배우는 현장 중심 직업교육 모델이다. 현재 전국 9개 학교가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로 지정돼 시범 운영 중이다. 창원기계공고는 인근 창원국가산업단지 기업들과 연계해 기계 가공 분야에서 58명의 학생이 도제교육을 받고 있다.
지난달 24일 오전. 동구기업 가공팀의 김규대 부장과 이 학교 2학년 김인범군이 공장 내 고속가공기 앞에 서 있다. 김 부장은 김군에게 드럼세탁기나 냉장고에 들어갈 제품을 찍어내는 프레스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했다. 김 부장은 기업현장 교사로 나서 2년간 학생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실무를 가르친다. 그는 “예전에 직업전문학교 교사 경력을 살려 학생을 가르치게 됐다”며 “이제 두 달이 채 안 됐다. 지금은 현장 적응 기간이다. 위험요소가 많아서 자칫하면 사고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학생이 조심할 사항을 숙지하게 하고 기업 문화도 알려주는 중”이라고 말했다.
도제학교가 기존 특성화고에서 이뤄지는 현장실습과 다른 점은 학교와 기업을 일주일씩 번갈아 오간다는 점이다. 이전의 현장실습은 3~6개월 정도 업체에 머물며 인턴 형식으로 근무했다. 이에 반해 도제학교는 한 주는 학교에서 이론과 보통교과 수업을 하고, 그다음 주는 현장에서 실무를 배우는 식으로 진행한다. 학생들이 교과 수업과 현장실습을 균형 있게 접하면서 자연스레 산업현장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김군은 “남들보다 더 빨리 기술을 배우고 싶었고, 실제 현장이 어떤지 궁금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기계가 일단 눈앞에 있으니 실감이 났다”며 “학교에서 고속가공기나 프레스 관련 이론을 숙지하고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니까 기술을 빨리 습득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김 부장도 “학교는 최소 단위 장비만 갖추고 있지만 기업은 산업체이다 보니 장비 규모부터 다르다. 가령, 학교에서는 핸드폰만한 제품을 깎다가 실제 현장에서는 자동차만한 걸 깎고, 공구도 손가락만한 걸 쓰다가 팔뚝만한 걸 쓰니까 학생들이 보기에는 신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제교육은 기존 현장실습보다 체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학생의 현장 이해도를 높이고 직업관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실무를 미리 경험해보면서 졸업 후 이 일을 정말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다. 이충기 경영기획부장은 “학생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학습태도나 업무능력을 평가해서 학생과 의견이 맞으면 졸업 후에 채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고교 졸업 뒤 대학진학, 이제는 옛날 등식”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취업 정책
최근 교육부가 졸업생을 대상으로 했던 일학습병행제를 특성화고·마이스터고와 전문대 학생을 대상으로 확대하는 ‘고교-전문대 통합교육 육성사업’(Uni-Tech)을 발표했다. 이 사업은 특성화고와 전문대를 연계한 현장 중심의 맞춤형 교육으로 학생들이 5년 동안 학교와 기업을 오가며 공부하는 식으로 진행하며 올해 하반기부터 도입된다. ‘2014 특성화고·마이스터고 글로벌 현장학습 성과발표회’ 자료를 보면 21개 학교, 371명이 독일·스위스·오스트레일리아 등 12개국에 파견돼 해외 현장학습을 수행했다. 이후 참가자의 70%인 262명이 국내외 기업에 취업했고 이 중 66명은 해외 일자리를 갖게 됐다.
여기에는 현 정부가 ‘능력 중심의 사회’를 강조하며 관련 정책을 늘린 것도 한몫을 했다. 학력거품이 상당한 우리 사회에서 학생들이 효율과 경제성을 따지는 경향이 커진 측면도 있다. 이들 학교의 학비는 일반적으로 일반고나 특수목적고·자사고 등에 비해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실제 모든 마이스터고의 경우 학비와 기숙사비가 없다. 또 대부분 취업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므로 안정된 일자리를 상대적으로 빨리 찾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학교를 선택했을 때 너무 일찍 특정 분야로 진로가 한정된다거나 진학보다 취업만을 강조한다는 일부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공업계 특성화고에서 20년 넘게 근무해온 한 교사는 “학교마다 나름의 특성에 맞게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일률적으로 대학을 가라는 건 안 맞는다. 고교 졸업 후 무조건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건 이제 옛날 등식”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도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는 고급기술 인력을 양성해 졸업 후 취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라며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학생을 선발하지만 중간에 본인의 의사가 바뀌면 얼마든지 진로 변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정희 요리명장은 “질 높은 인재를 키워서 현장에 효율적으로 투입하는 것은 인력난 해소는 물론 학생이 대학에 꼭 가지 않아도 진로를 구체적으로 경험한 뒤 사회적응력을 키울 수 있다는 면에서 ‘윈윈전략’”이라며 “다만, 남학생의 경우 졸업 후 군입대 때문에 애써 배운 기술이 단절된다. 국가에서 요리나 다른 분야도 산업기능요원으로 선발하는 것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화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