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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아이의 몸을 살피면 마음이 보인다

등록 2015-05-18 19:54

윤다옥 교사의 사춘기 성장통 보듬기
며칠 전 스승의 날 인사차 학교에 찾아온 졸업생이 있었다. “쌤~ 저 장학금 탔어요. 학교 장학금은 아니지만요”라며 밝은 목소리로 소식을 전하는데 정말 기쁘고 반가웠다. “너 중학교 때 학교 그만뒀으면 엄청 아까울 뻔했다”라고 말하니 저도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중2 초기부터 학교 다니기 싫다며 지각·조퇴·결석을 반복했고, 학교에 와서도 교실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복도에서 버티기 시작하면 아무도 말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교실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아이를 담임선생님이 겨우 달래서 상담실에 데리고 왔을 때 아이는 “친한 애도 없고, 수업 들어봤자 아는 것도 아니고, 학교 가기 싫다”고 했다. 새학년에 올라와 아이들과 관계에서 적응이 어려워지면서 오래전부터 내재해 있던 아이의 취약점들이 더 확연하게 드러나게 된 경우였다. 부모의 불화 속에서 다쳐왔던 여린 속마음을 감추고 더 툴툴거리며 함부로 말하거나 대들었다. 퉁퉁한 외모는 아이의 민감함을 은폐하고 아이를 더 고집스럽고 느리게 비춰지게 해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학교생활이 의미 없다고 여러 가지 이유를 대지만 결국 아이는 그 반에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편안한 애들이 없다는 점을 힘들어했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아이는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몇 번의 병원 상담 경험도 있었던 터라 상담에 대한 기대가 그리 크지 않았다. ‘세 보이는’ 피어싱을 빼 보이면서 “피어싱 가지고도 뭐라 해요. 비꼬아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그 엄청난 피어싱에 대해 아프진 않은지, 어떻게 끼우는지 등을 관심 있게 물어봤다. 그날의 상담 뒤 일주일 만에 아이는 먼저 상담실을 찾아왔다. “솔직히 여기 와도 되나 생각 많이 했어요. 다른 상담샘이랑 비슷하게 말할 것 같기도 해서 그러다 왔는데 샘은 다르게 말하는 것 같아요”, “제가 잘못한 걸 알고 말하는 건데, 그냥 위로해달라는 차원이었는데, 그걸 알 만한 사람이 지적을 하니까 짜증이 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적어도 그 당시에 자신을 이해할 만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내가 테스트에 통과됐던 거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외모로 인한 불만과 자존심 상하는 것에 대해 드러내놓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거의 1년이 지나고서야 자신이 얼마나 살을 빼고 싶은지,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이며 식욕억제제며 여러 가지를 시도해봤고 매번 중간에 포기했었음을 털어놨다. 외모에 대한 것이 이 아이가 가진 가장 중요한 고민거리는 아니지만, 사랑받고 수용받지 못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하는 대표 증상이긴 했다. 부모님들이 자신들의 문제로 인해 아이가 필요로 할 때 곁에서 적절한 돌봄을 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생긴 불안한 마음과 사랑·이해받지 못한 스트레스가 아이들의 몸에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많이 봐왔다. 자해에서부터 비만, 공격적인 외모 꾸미기, 약물 중독 등 다양한 버전으로 나타난다.

아이의 마음을 돌본다는 것은 마음 자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들은 자기 몸도 관심을 가지고 잘 돌본다. 먼저 부모가 아이의 몸을 돌볼 줄 알아야 한다. 그중에 한 가지는 절대 아이에게 욕하지 않기다. 비난과 욕은 아이의 몸을 흉하게 살찌우고 자해의 자국을 남기게 된다. 건강한 음식을 제때 잘 챙겨 먹을 수 있도록 해주고, 아이가 아플 때 충분히 보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 같지만 소홀해지기 쉬운 것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적절한 스킨십도 필요하다. 포근한 품에서 사랑과 위로받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만큼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방황하는 아이와 함께하다 보면 모든 개입이 적절하고 훌륭한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 잘못이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관심과 끈기로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누구 한 사람이 이 일을 다 해낼 수는 없기 때문에 여럿이 함께 관여하고 마음을 써줘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어느 시점에 아이가 돌아올 곳이 되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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