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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거리의 청소년들’에 마음 속 단단한 디딤돌 만들어줘요

등록 2015-05-18 20:03수정 2015-05-19 15:17

청소년들의 직업훈련 공간인 ‘커피동물원’에서 청소년들이 커피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직업훈련 공간인 ‘커피동물원’에서 청소년들이 커피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함께하는 교육] 위기청소년 자립 돕는 프로그램
‘가정의 달’로 불리는 5월. 학교 안팎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각종 위기 상황에 처해 거리로 나온 청소년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심 밖에 있다.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이사장 조순실)은 올해 초, 이런 청소년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사업인 ‘자몽’(自夢)(스스로 자립을 꿈꾸다)을 시작했다. 탈가정·사회 속의 다양한 위험 등 위기에 처한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자는 뜻에서 시작한 사업으로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년을 지원하는 7개 기관을 선정해, 자립을 주제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각각 최대 15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 기관들을 통해 청소년들의 자립 사례를 만나봤다.

가출 등 방황하는 시간 겪으며
위기 상황 놓였던 청소년들
바리스타 등 직업훈련 통해
사회 안착 원활하게 준비
문화예술체험으로 자기 표현하며
내면 들여다보는 경험도

커피동물원 한쪽 벽에 적힌 글귀. 직업훈련을 경험한 청소년들이 이 공간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적은 것이다.
커피동물원 한쪽 벽에 적힌 글귀. 직업훈련을 경험한 청소년들이 이 공간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적은 것이다.
사회와 만나는 징검다리, 커피동물원

“‘고양이’에게는 1년 동안 일한 첫 번째 직장. ‘펭귄’에게는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

경기도 부천시 소재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기슨관 2층. ‘커피동물원’(이하 커동)이라는 커피숍에 가면 한쪽 벽에 적혀 있는 이런 글귀를 볼 수 있다. 누런색 재활용 종이 위에 쓴 이 글귀는 커동에서 직업훈련을 경험한 청소년들이 이 공간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적은 것이다. (재)성심수도회 사업단에서 운영하는 커동은 청소년들이 사회를 경험할 수 있게 만든 창구다.

“아메리카노 두 잔. 4000원입니다!”

지난 12일 오후 12시쯤.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하려는 이들이 커동에 모여들자 토끼(19·닉네임)양의 마음도 덩달아 바빠지기 시작했다.

3년 전. 토끼는 방황하고 있었다. 중학생이던 당시,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 학교도, 집도 고민을 제대로 들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고1 초반에 학교를 나왔다. 거리에서 방황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부천 북부역 부근에서 움직이는 청소년센터인 ‘엑시트’(EXIT) 버스를 만났고, 그곳을 통해 커동 대표 김정미 수녀와의 인연도 시작됐다.

열일곱 청소년이 ‘존중받으면서 일할 만한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백화점 주차요원 등으로 알바를 했지만 함부로 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 토끼에게 커동은 사회로의 안착을 돕는 징검다리 구실을 하고 있다. 돌아보면 그전에는 학교를 나오고 방황하면서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돼 있었다. 일하던 곳에서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오르면 그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화를 내곤 했다. 커동에 와서는 마음속 화를 추스르는 법을 알아갔다. 커피 등 음료를 만드는 것만이 직업훈련이 아니었다. 음료를 주문하는 이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 법, 성실하게 출퇴근하는 법 등을 배워가는 것이 바로 직업훈련이었다. 이젠 매달 들어오는 100만원 안쪽의 월급을 놓고 살림도 꾸려가고 있다. 일부는 생활비와 휴대전화 요금 지출로 쓰고, 일부 금액은 매달 꼬박꼬박 적금을 붓는다. 대학생들을 보며 ‘공부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검정고시도 준비 중이다.

커피동물원의 아메리카노는 공정무역 유기농 원두를 쓰지만 2000원으로 매우 싼 편이다. 사회의 도움을 받아 시작했으니 청소년들도 사회에 기여하자는 ‘호혜적 관점’에서 좋은 재료를 쓴다.
커피동물원의 아메리카노는 공정무역 유기농 원두를 쓰지만 2000원으로 매우 싼 편이다. 사회의 도움을 받아 시작했으니 청소년들도 사회에 기여하자는 ‘호혜적 관점’에서 좋은 재료를 쓴다.
커동은 2009년에 문을 열었다. (재)성심수도회는 부천에 단기 쉼터인 ‘모퉁이 청소년 쉼터’, 중장기 쉼터인 ‘성심 디딤돌 쉼터’ 등을 운영하고 있었다. 청소년들은 쉼터에 머물며 공부도 하고, 일도 해보려 했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다. 학력을 쌓을 기회나 직장생활에 필요한 사회기술 습득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에 주어지는 일자리는 단기·임시직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와이엠시에이(YMCA)에서 성심 디딤돌 쉼터 쪽으로 바리스타 과정을 열어주겠다는 안내문을 보내왔다. 한 친구가 이 과정에 참여한 뒤 쉼터가 술렁거렸다.

“이 친구가 저녁에 쉼터로 오면 커피 관련 실습을 했거든요.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더군요. 입을 모아 ‘커피라는 게 무척 매력있는 거 같아요!’라고 하더라고요. 신기했죠. 쉼터 친구들이 아무래도 실패의 경험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용기있게 말하는 경우가 흔치 않거든요.”

김 수녀는 가톨릭대학교 쪽에 커피숍을 운영할 만한 약 3평의 공간을 내줄 수 있는지 알아봤다. 학교 쪽은 임대료 없이 약 5평의 공간을 내줬다. 이 공간 주변에 있는 통로를 활용해 의자와 탁자를 놓았다. 그렇게 약 25평의 커피숍이 완성됐다.

커피숍 창업과 운영 준비는 모두 청소년들이 했다. ‘커피동물원’이라는 이름도, 로고도 다 청소년들이 만들었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청소년들은 ‘내 꿈을 찾아서’라는 이름으로 역할모델이 될 만한 인물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수요와 공급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경제교육도 받았다. 준비 과정에서 연습 삼아 만든 커피 맛을 보고, 마음에 안 들면 버리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이런 과정만 2년. 드디어 커동이 문을 열었다.

커동의 아메리카노는 2000원으로 일반 카페와 견줘 매우 싼 편이지만 원재료는 비싼 공정무역 유기농 원두를 쓴다. 사회의 도움을 받아 시작했으니 우리도 사회에 기여하자는 ‘호혜적 관점’에서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 대학과의 교류도 활발하다. ‘농사짓는 즐거움’이라는 뜻의 가톨릭대 동아리 ‘농락’(農樂)은 교정 안에서 텃밭을 일구고 여기서 수확한 유기농 채소를 커동에서 판매해 수익금을 기부하는 일도 했다.

김 수녀는 “위기청소년 직업훈련기관, 취업준비기관, 직업체험센터 등 다양한 명칭으로 운영하는 자립훈련 기관들은 구직기술 등 기초적이고 단편적인 내용만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며 “커동은 훗날 아이들이 어떤 분야로 나아가건 간에 노동시장에서 직업적인 기술뿐 아니라 사회인으로서의 태도 전반 등을 잘 갖출 수 있게 돕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했다.

커동은 자몽에서 받은 지원금 등으로 그동안 이곳에서 직업훈련을 받은 아이들의 사례조사 등을 해서 ‘위기 청소년들을 위한 기초 직업훈련 매뉴얼’을 만들고 다른 기관에서도 이런 사례가 나올 수 있게 도움을 줄 계획이다. 또 곧 2호점 개점도 준비 중이다.

“자립이란 경제적인 홀로서기뿐 자기 나름의 사회망을 구성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갖는 것을 말하죠. 여기 오는 청소년들은 외로움을 많이 느낍니다.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고, ‘나는 존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라는 자존감을 회복하지 않으면 자립은 어려워요. ‘위기청소년’이라고 하면 편견들이 있죠. 그런데 어느 누가 ‘나는 위기를 안 겪고 산다’고 할 수 있겠어요.”

 늘푸른자립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이 청소년의 자립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 ‘I Dream’ 일환으로 만화 그리기 수업, 기타 수업 등을 듣고 있다. 늘푸른자립학교 제공
늘푸른자립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이 청소년의 자립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 ‘I Dream’ 일환으로 만화 그리기 수업, 기타 수업 등을 듣고 있다. 늘푸른자립학교 제공
음악·미술 등 체험하며 성취감 얻기

“클라리넷 연주도 재미있고요. 오카리나, 캘리그래피 등 좋아하는 걸 자기 수준에 맞춰서 천천히 배우니 좋아요.”

지난 12일. 서울시 마포 소재 늘푸른자립학교 1층에서 만난 19살 정아무개양의 이야기다. 1년 반 전만 해도 정양은 청주의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소개를 통해 서울에 있는 늘푸른자립학교로 온 뒤에는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18살 최아무개양은 “요즘 클래식 기타 치는 데 재미를 붙이고 있다”고 했다. 최양은 지난해 학교를 나왔다. 늘푸른자립학교를 알기 전까지는 밤낮이 바뀐 채 길에서 친구들과 놀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하고 싶은 것이 무척 많은데 그 속에서 내 길을 어떻게 찾아갈지를 생각해보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와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이 학교는 위기청소녀를 위한 대안학교로 2009년에 개교했다. 김선옥 대표는 “학교에 오는 청소년들의 공통된 특징이 자존감이 낮다는 점”이라며 “이런 친구들에게 한번쯤 다니고 싶은 재미있는 학교를 만들자는 뜻으로 문을 열었다. 우리 학교는 학습과 일, 치유가 있는 학교”라고 소개했다.

“청소년들은 건강하게 일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에 길에서 먹고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어졌을 때 성매매나 절도 등을 선택하기 쉬워요. 제대로 된 일을 경험하게 해주는 게 중요하죠. 우리 학교에서는 음악, 미술, 연극 등 청소녀들이 예술 분야를 경험하면서 내면의 에너지를 찾을 수 있게 하는 교육과정들을 많이 운영합니다. 여성학, 인문학 등의 수업도 진행하고요. 이를 통해 청소녀들이 자존감을 기르고 훗날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게 목표죠.”

이 학교에는 학교에 안 다니는 청소녀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으며 별도의 학비는 없다. 학생도 수시로 받는다.

 늘푸른자립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이 청소년의 자립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 ‘I Dream’ 일환으로 만화 그리기 수업, 기타 수업 등을 듣고 있다. 늘푸른자립학교 제공
늘푸른자립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이 청소년의 자립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 ‘I Dream’ 일환으로 만화 그리기 수업, 기타 수업 등을 듣고 있다. 늘푸른자립학교 제공
현재 늘푸른자립학교는 자몽 일환으로 ‘아이드림’(I Dream)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청소녀들이 연극, 오카리나, 클라리넷, 애니메이션, 캘리그래피 등 10종의 문화예술체험을 접하고, 그 가운데 자신에게 잘 맞는 2종을 선택해 전문적인 훈련을 해보는 과정이다. 학교 쪽이 이런 프로그램을 준비한 이유는 청소녀들이 ‘나도 해봤다’고 할 만한 성취감을 얻고, 이후 다음 길을 갈 때 그 성취감을 단단한 디딤돌로 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윤애경 교사는 “가능성이 무척 많은 친구임에도 그것을 발현하게 해주는 지지 자원을 못 만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며 “문화예술체험 중 자발적으로 선택한 한두 가지 분야에 집중하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설 힘을 얻게 하면 좋겠다는 뜻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소녀들은 자기 이해를 할 수 있는 글쓰기 수업인 ‘자서전 수업’ 등에도 참여하고, 연말에는 ‘나 박람회’를 통해 각자 선택한 문화예술 프로젝트 수업에서 배운 것을 발표하는 시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 이 기사에서 ‘위기청소년’은 ‘다양한 위기 상황에 처한 청소년’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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