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을 어려워하는 딸을 위해 영어책 <아빠가 주는 영어공부>를 직접 쓴 하권석씨가 광주의 자택에서 딸 영건양과 함께 웃고 있다. 영건양이 들고 있는 것이 가제본한 하씨의 책이다. 하씨는 현재 이 책을 정식으로 출판하기 위한 절차를 밟는 중이다. 하권석씨 제공
딸 위해 영어책 쓴 하권석씨
‘관계대명사가 무슨 뜻이냐’
고교생 딸의 질문에 책으로 답했다
해외출장 실전영어 경험 토대로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쓴 영어교재
아빠표 구어체·품사설명·수능해설 등
읽다 보면 영어도 ‘말’임을 알게 돼
‘관계대명사가 무슨 뜻이냐’
고교생 딸의 질문에 책으로 답했다
해외출장 실전영어 경험 토대로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쓴 영어교재
아빠표 구어체·품사설명·수능해설 등
읽다 보면 영어도 ‘말’임을 알게 돼
“고교 3학년인 둘째 딸이 어느 날 ‘아빠 관계대명사가 뭐야? 한정사는?’ 이렇게 묻기 시작했어요. 문법 용어가 너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문법 몰라도 영어 할 수 있어’라고 말하니 딸아이가 ‘정말?’ 하고 놀라더라고요. 그게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죠.”
지난 3월24일, 많은 문화창작자들이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홍보하고 공개후원을 받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에 ‘아빠가 주는 영어공부’라는 제목의 프로젝트가 올라왔다. 평범한 회사원 아빠 하권석씨가 두 딸들을 위해 쓴 영어책을 정식 출판하고자 시작한 것이었다.
딸들을 위해 영어교재 <아빠가 주는 영어공부>를 썼지만 하씨는 영어 전문가가 아니다. 영어 교육 관련한 일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영어로 대화를 하고, 상황에 맞춰 영어 문서를 작성하는 일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하씨는 통신장비제조회사부터 시작해 여러 회사에서 해외영업과 경영을 담당했다. 자연스레 해외출장이 잦았고, 영어 계약서를 작성할 일도 많았다. 하씨도 처음에는 회화를 제대로 배워본 적 없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처음 회사 들어갔을 때는 고생도 많이 했어요. 첫 출장지가 미국의 로스앤젤레스(LA)였는데, 일이 생겨서 공항에 늦게 도착했어요. 첫 비행기를 놓쳤죠. 다음 비행기를 바로 타야 한다는 생각에 급히 엘에이 대한항공 프론트 데스크로 가서 도움을 청했는데, 급한 마음에 제 입에서 바로 튀어나온 말이 ‘May I help you?’에요. ‘help’가 들어가는 문장을 생각하니 반사작용처럼 가장 익숙한 문장을 떠올린 거죠.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요.”
‘이름씨’, ‘앞토씨’, ‘느낌씨’. 하씨가 출판을 준비하는 <아빠가 주는 영어공부>에서는 명사와 전치사, 감탄사를 각각 이렇게 설명한다. 한자어로 된 문법 용어로는 해당 품사가 문장 안에서 어떤 구실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씨는 한자어에 담긴 뜻과 실제 품사가 문장 안에서 갖는 의미에 주목하며 새로운 용어를 만들었다. 책을 접하는 사람들이 문법용어에 대한 공포를 없애고, 쉽게 영어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시도였다.
같은 이유로 책에 있는 해설 문장들은 아빠가 딸들에게 이야기하듯 모두 구어체로 되어 있다. ‘modify[마러퐈이]’ 등 영단어를 설명할 때에도 학생들이 잘 배우지 않는 발음기호 대신, 한글로 독음을 써 넣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문법을 설명할 때 사용한 예문도 직접 만들었다.
하씨는 “영어도 언어를 쓰는 사람의 문화·역사적 가치가 녹아 있는 ‘말’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이 가장 간과하는 부분이 영어도 하나의 언어라는 것입니다. ‘투(to) 부정사의 용법’을 모두 외우고, 영문장에 쓰인 용법이 그 가운데 어떤 것인지 분석하곤 하죠. 하지만 우리가 한국어를 쓸 때 단어의 위치나 문법에 크게 구애받지 않듯, 영어도 똑같이 공부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10년이 넘도록 영어공부를 해도 외국인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붙이지 못하는 까닭은 영어를 ‘말’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법보다는 어법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어요.”
281쪽에 달하는 영어 교재를 쓰면서 하씨가 참고한 책 목록에는 , 등 영어권 국가에서 영문법을 설명해 놓은 책들뿐 아니라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가 있다. 말하듯 쉽게 한국어를 써야 생생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누구나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구어체로 쓰다 보니 ‘입말’을 ‘글말’로 옮기는 공부가 꼭 필요했다.
<아빠가 주는 영어책> 맨 마지막에는 2014년 수능 영어 38번 문제에 대한 ‘아빠식 풀이’도 있다. 복잡한 문법 용어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빼고, 의미 전달에 중요한 시제만을 중심으로 쉽게 설명했다.
“30년 전에 내가 공부한 방식과 똑같이 공부하고 있는 딸을 보니 화가 났어요. 아이들은 모두 영어를 공부하는데, 학회지에나 나올 법한 어려운 문장에 있는 단어를 다 외우고 있거든요. 요즘 학교 현장에서 회화 교육을 많이 한다고는 하지만, 수능 영어 교재들을 보면 여전히 ‘문법 법칙 교육’ 일색이에요. 단어 뜻을 모른 채 시제만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어도 영어를 ‘말’로 공부하는 데는 무리가 없어요. 단어의 뜻은 문장 속 맥락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하씨의 둘째 딸 하영건(18)양은 이 책의 첫 독자이자, 훌륭한 조력자였다. 하씨가 첫 20쪽을 쓰고 원고를 하양에게 보여주자, 하양은 아빠의 책을 읽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빨리 더 써줘.”
하씨는 “딸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니까, 더 자신 있게 써내려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책을 다 읽고 지난 모의고사에서는 영어 만점을 받아와 저도 기뻤어요”라고 말했다. 하양은 지난 8일 어버이날 하씨의 프로젝트 후원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