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 오전 ‘6개국 수학 교육과정 국제 비교 콘퍼런스’가 열린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 행사장 입구에 마련된 ‘수학 통곡의 벽’에 참가자들이 적어 놓은 메모지가 붙어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수학 고통 줄이자 ④
요즘 서울 서초구의 사설 ㅋ영재학원에서 ‘영재판별 검사’를 받으려면, 검사비(11만~19만8000원)를 먼저 입금한 뒤 6~7개월가량을 기다려야 한다. ‘강남에선 아이가 바보만 아니면 다 데려가본다’고 소문난 이곳에 영재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물론, 자녀가 영재이기를 바라는 이들까지 문전성시를 이루는 탓이다. 영재판별 검사는 보통 생후 36개월 무렵 시작되는데, 상위 3% 안에 들어야 사고력·수학·과학·언어·사회 영재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수강료는 주 1회 3시간씩 3개월에 84만원이다. 보호자가 수업 시간 내내 대기하며 화장실과 간식을 챙겨줘야 하지만 학부모들은 이마저도 네트워킹의 기회로 삼는다.
이곳에서 영재교육의 첫걸음을 뗀 아이들 상당수는 6살 무렵부터 대치동 등 교육특구의 수학 전문 학원도 다닌다. 시·도교육청 및 대학, 영재(고등)학교 부설 영재교육원(영재원) 입시를 따로 준비해주는 학원들이다. 서울의 대학 부설 영재원에 다니는 ㅈ군(14)의 어머니는 6일 “2014학년도부터 서울시교육청 산하 영재원들의 선발 시기가 3학년 말에서 2학년 말로 당겨지면서, 이전까지 1학년부터 운영되던 수학 학원들도 6살로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초등생에 고교수학 수준 요구해
사교육 없인 ‘진짜 영재’조차 탈락
고교 땐 대학수학을 교과에 포함
내신 높이려면 학원의 힘 빌려야
학생 38% 사교육비 월 100만원 ↑ 2002년 4월 영재교육진흥법 시행령이 공포된 지 13년이 흘렀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사교육걱정)이 교육부 영재교육연감을 분석해보니, 2003년 400곳에 불과하던 영재 교육기관(영재원·영재학교·영재학급)이 2014년 3172곳으로 8배나 급증했지만, 오히려 수학 교육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재기관 입시가 과열된데다 ‘진짜 영재’조차 선행학습 경험 없이는 풀기 어려운 문제가 출제돼 수학 사교육을 부채질하는 탓이다. ㅈ군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도 꽤 소문난 영재인데 영재원 시험에서 계속 떨어지다가 수학 전문 프랜차이즈 학원에 다니고서야 붙었다. 합격생 비율을 봐도 유명 학원 출신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엔 영재학교 합격용 ‘스펙’(경력)을 쌓으려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 준비를 시작하는 시기가 초등 4학년까지 내려왔다. 수학올림피아드를 보려면 고교 수학Ⅰ·Ⅱ 정도는 마쳐야 한다. 초등 4학년 때 고교 수학을 대충이라도 훑는다는 얘기다. ㅇ씨는 대치동 수학 학원 최상위반에 다니는 초등 2학년생 영재 딸을 뒀다. ㅇ씨는 “중3 때 최고 성적을 거두게 되는 한국수학올림피아드를 준비하려고 아이들이 초등 4학년 때부터 방학 때 ‘텐 투 텐’(오전 10시~밤 10시) 케이엠오 준비반에 다닌다”고 말했다.
영재 교육기관의 최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영재학교는 서울과학고 등 전국에 8곳뿐이다. 2015학년도 영재학교 모집정원은 789명으로, 평균 경쟁률이 19.4 대 1이었다. 여기에 영재원·영재학급 학생까지 합하면 영재교육 대상자는 초·중·고 학생 650만명 가운데 약 3%(19만5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여기에 영재원 입학을 준비하는 유·초·중학생까지 가세하면 영재 교육기관을 바라고 수학 선행 쳇바퀴를 돌고 있는 학생이 최소 수십만명 이상으로 치솟는다.
학부모들이 쏟아붓는 수학 사교육비도 상상을 초월한다. 사교육걱정이 2013년 9월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과 함께 중학생 22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영재학교·과학고를 지망하는 학생의 38.2%가 월평균 100만원 이상의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었다. 50만~100만원을 지출하는 비율도 26.5%였다. ㅇ씨는 “영재학교를 준비하는 아이의 엄마가 수학 학원에서 1분기 수강료 410만원을 결제하는 걸 봤다. 또 메인 학원에서 뒤처지는 걸 보완해주는 과외나 학원을 ‘메이크업’이라고 하는데, 수학 메이크업에만 월 1000만원까지 쓴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수학올림피아드에 응시하려면 기하·정수·조합·대수 네 분야를 준비해야 한다. 대치동에서는 한 분야당 200만원짜리 올림피아드 과외가 인기다.
영재원·영재학교 입학에 성공해도 수학 선행이 끝나는 게 아니다. 제 학년보다 몇년씩 앞당긴 선행 커리큘럼 탓에 자기주도학습으로 버티는 학생이 별로 없다. 예컨대 서울과학고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대신 자체 제작한 수Ⅰ~수Ⅳ 교과서를 사용한다. 사교육걱정은 “일반고 1~3학년 6과목 수학 내용을 모두 포괄하면서 더욱 심화된 교재다. 게다가 심화필수 및 선택 과목들은 대학 수학과 1~3학년 전공과목”이라고 지적했다. ㅈ군의 어머니는 “영재원은 학년이 올라갈 때 기존 학생의 절반 정도를 떨어뜨린다. 영재학교도 영재들끼리 경쟁에서 내신을 따서 ‘스카이’(서울·연세·고려대)나 카이스트에 입학하려면 선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치동의 유명 수학 학원은 아예 비수도권 영재학교 근처의 작은 학원을 빌려 주말 특강을 한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영재학교 학생들을 위한 서비스다.
사교육걱정은 “영재 교육기관의 수학·과학 지필고사 문제는 어려서부터 사교육 훈련을 받은 아이들한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며 “영재원 선발 시기를 초등 5~6학년으로 올리고, 교과 지식을 묻는 지필고사를 폐지해 자기주도학습 전형을 전격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짚었다. 아울러 “영재 교육기관 커리큘럼도 지나친 전공 선행을 자제하고, 폭넓은 경험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영재들의 잠재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교육 없인 ‘진짜 영재’조차 탈락
고교 땐 대학수학을 교과에 포함
내신 높이려면 학원의 힘 빌려야
학생 38% 사교육비 월 100만원 ↑ 2002년 4월 영재교육진흥법 시행령이 공포된 지 13년이 흘렀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사교육걱정)이 교육부 영재교육연감을 분석해보니, 2003년 400곳에 불과하던 영재 교육기관(영재원·영재학교·영재학급)이 2014년 3172곳으로 8배나 급증했지만, 오히려 수학 교육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재기관 입시가 과열된데다 ‘진짜 영재’조차 선행학습 경험 없이는 풀기 어려운 문제가 출제돼 수학 사교육을 부채질하는 탓이다. ㅈ군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도 꽤 소문난 영재인데 영재원 시험에서 계속 떨어지다가 수학 전문 프랜차이즈 학원에 다니고서야 붙었다. 합격생 비율을 봐도 유명 학원 출신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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