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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어느날 시험을 보면서

등록 2005-10-09 13:43수정 2005-10-10 14:03

<글쓰기 교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주입식 위주 교육의 현실 대신에 수능부정이 터져 나오는 교육현실 대신에

모의고사 점수10점 더 떨어졌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출제위원들에게 분개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교육현실 개선 1인시위를 하던 학생을 위하여


학생이 배울 자유를 요구하고, 주입식 교육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시험을 코앞에 두고 수행평가 한 두 개 씩 내주는

선생님들만 미워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시험 직전 자습시간에 다른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을 때

어느 선생님은 책을 읽는 나를 보고 시험공부 안 한다고

그래서 대학가겠냐고 꾸짖어 책을 덮은 일이 있었다

친구들 앞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그 때 그 자습시간

선생님 말씀에 조용히 책을 덮은 것과 조금도 다름없다

우리 글자도 아닌 꼬불꼬불한 영어공부에 지고

종이 한 장에 불과한 성적표에 진다

새로 받은 교과서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하지만 편안한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힘내라고 격려해 주는 엄마에게 "내가 알아서 할꺼야 " 짜증내고

교육부장관에게는 못하고 엄마에게

교육감에게는 못하고 선생님들께도 못하고

10점 때문에 5점 때문에 1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김나래/전남대사대부고 2학년 (김수영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빌려)

학교현실 모순
진지하게 표현

시인 김수영은 참다운 ‘자유’를 간절히 바라는 시를 많이 썼다. 학생들이 그의 시를 제대로 느끼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날에도 학생 자신의 삶을 억누르는 부자유를 떠올려 보고, 그것에 대처하는 자신의 모습에 빗대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방학중 보충수업 때 김수영의 시를 살짝 맛보고 패러디해서 써 보는 시간을 가졌다. 비록 시 한편 공부하는데 3시간을 써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학생들은 여러 친구들이 쓴 시를 서로 감상하며 심각해지기도 하고, 박장대소도 하였다. 그러면서 김수영 시인의 정서를 자신의 처지에서 자연스럽게 느껴볼 수 있었나 보다. 이 작품은 고교생이 느끼는 학교현실의 모순과 괴로움을 진지한 자세로 표현해 읽는 이들에게 우리의 입시현실에 대해 각성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 함께 나누어 읽을만하다.

박안수/광주국어교사모임회장. 전남대사대부고 교사 ansu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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