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 1학기 수시 합격생들 중 31명의 이학계열 학생들이 교양학부 윤송아 교수의 글쓰기 강의를 듣고 있다.
<1318 리포트>
수능을 40여일 앞둔 고3 교실. 테니스 라켓 줄보다 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1점이라도 더 올리기 위한 수험생들의 눈동자는 강철이라도 뚫을 것처럼 강렬하다. 일부는 2학기 수시모집 면접과 논술 준비에 여념이 없다.
한데, 그 가운데 1~2명은 태연히 소설책을 보거나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공부를 포기한 학생이 아니라 1학기 수시합격생들이다. 친구들은 ‘얼마나 좋을까’라며 부러움과 시샘의 눈길을 보내지만, 이들의 마음 또한 편하진 않다. 대학 입학까지는 5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남아 있는데 막상 학교에 와서 시간만 죽이고 있어야 하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대학만 합격하면 여행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잠도 실컷 자고 뭐든지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현실에선 장애물이 많다.
서강대 화공생명공학기계공학부에 합격한 서울 ㅁ고 최아무개(18)군은 다른 학생들처럼 하루 6~7시간의 정규수업을 모두 듣고 있다. 학교에선 졸업 때까지 정규수업에 나와야 한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최 군은 “수업 시간에 교실에 앉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잠을 자거나 독서로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이 수능도 안보면서 왜 앉아 있느냐고 묻지만 어쩔 수 없다”며 불만을 나타낸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한 서울 동일여고 전혜원(18)양 역시 정규수업에 충실히 임하고 있다. 전 양은 보충수업을 하지 않는 저녁 시간을 이용해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는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학에서 수시합격생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번 마련하는 생활영어 강좌를 듣고 싶지만, 학교쪽은 최소한 오전 수업은 해야 한다고 말해 여의치 않다.
전 양은 “수시 합격생은 늘려 놓았지만,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거의 없죠. 교육부 차원에서 예비대학인으로서 소양을 갖출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한다.
다른 수시합격생들과 비교하면 경희대 지리학과에 합격한 송곡여고 이정민(18)양은 운이 좋은 편이다. 학교에 나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 양은 대신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대학에서 영어와 글쓰기 강의를 듣고 있다. 남는 시간에는 헬스 클럽에도 다닌다.
대학 강의에 대해 이양은 “주입식 교육만 받다가 조별 과제와 같은 참여 위주의 수업을 받아 보니 새롭다. 학교에 대한 애정도 생겨, 앞으로 대학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수시 합격생들은 분명 대학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선정된 우수한 학생들이다. 조금 일찍 합격의 기쁨을 누린 1학기 수시 합격생들에게도 대학 입학 전까지 남아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주위 사람들의 부러운 듯한 시선과 축하의 말로 대체하기에는 공백이 너무 길다.
이들을 위해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대학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고등학교에서도 교육부의 방침에 따라 출결관리만 할 뿐 배려하려는 노력은 소홀하다. 늦은 감이 있지만, 교육 당국은 이제라도 수시합격생들을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글·사진 김경희/1318리포터, 서울 송곡여고 3학년 shindykkh@hanmail.net
김경희/1318리포터, 서울 송곡여고 3학년 shindykk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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