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내가 자란 곳은 작은 시골마을이고, 내가 다닌 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뿐인 작은 초등학교였다. 일제 때 지어진 검은 기와지붕의 학교는 꽤 낡아 있어서, 나무로 된 복도와 교실 바닥은 자주 삐걱대는 소리를 내곤 했다.
그런데 3학년 무렵,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보니 하얀 궁전 한 채가 우뚝 서 있었다. 방학 전부터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겠지만 완공된 건물을 처음 보게 된 것이었다. 벽과 지붕을 온통 새하얗게 칠한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의 서구식 건물은, 초가와 기와집밖에 본 적이 없던 시골아이에게 놀라움과 경이감을 주었다. 게다가 커다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빽빽한 책들이라니! 궁전은 바로 도서관이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책이 이끄는 세상으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먹는 것보다 동무들과 뛰노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게 좋았다. 수업이 끝나도 집으로 곧장 돌아가지 않았다. 정신없이 책을 읽다 문득 고개를 들면 창문 너머로 해가 지고 있을 때가 많았다. 문화적인 환경과는 아득히 거리가 먼 산골에서, 보고 들었던 거라곤 자연의 빛깔과 소리가 전부였던 유년기. 그때 만나게 된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고 대출하는 장소가 아니라 내 존재를 형성시킨 마법의 공간이었다.
동화를 쓰는 사람이 되고, 동화책을 몇 권 낸 후에야 나는 비로소 의문이 들었다. 70년대 초의 열악한 시절,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열악한 지역에 어떻게 그런 도서관이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인지? 사실을 알아보니 고향 출신의 성공한 실업가가 모교에 기증한 것이었다. 그 분의 베풂이 없었다면, 나는 책이라곤 구경도 못하고 자랐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랬으면 삶의 방향도 전혀 달라져 있을 지 모른다.
혹시 기증자가 생존하였으면 감사의 표현이라도 하고 싶어 수소문을 하였더니,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돌아가셨음을 알게 되었다. 낡고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있던 도서관마저 십여 년 전에 헐려버려, 이젠 내 기억 속에서나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유년의 도서관에서 얻은 마법은 여전히 유효하며, 그 힘으로 나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한 마법을 꿈꾼다.
사실 모든 도서관은 여전히 마법의 공간이다. 내 아이가 살아가면서 일생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마법 에너지를 원하는가? 그럼 가까운 도서관으로 보내라. 가능한 자주.
이 난은 온 가족이 함께 읽는 따뜻한 이야기 숲입니다. 동화작가 선안나 씨와 충남 천안중 박경이 선생님이 번갈아 감동넘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선안나/동화 작가 sun@iicl.or.kr
선안나/동화 작가 sun@iic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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