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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태극 마크’ 그리며 “으랏차차”…다문화 소년들의 꿈

등록 2015-07-22 19:41수정 2020-07-09 17:30

중국에서 출생한 중2 황금룡
역도 입문 1년반만에 동메달 3개
한국서 났지만 몽골인 신분 벨군
‘미등록 아동’ 불구 국가대표 희망
“사재혁 같은 선수 되고 싶어요”
서울시교육청, 47명에 장학금 지원
역도는 정직하다. 4m 사방의 연기대 위에 타고난 장사는 없다. 노력한 만큼만 바벨을 들어올릴 수 있다는 걸 ‘역사’라면 누구나 안다. 여름방학 첫날을 맞은 22일 아침, 여느 중학생이라면 늦잠을 잘 시간이지만 서울 송파구 방이동 서울체육중학교(서울체중)의 역도부 체력단련실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전국학생역도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14명의 서울체중 역도부원은 모두 제각각이다. 한쪽에선 4명의 소녀 역사가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몸을 푼다. 체급도 다 다르다. 중학생이라고 믿기 어려운 거구의 선수도, 역도부원같지 않은 호리호리한 선수도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2학년 황금룡(14)과 1학년 벨군(13)은 그 가운데서도 특별하다. 두 학생 모두 용모도, 말씨도 한국인이지만 ‘다문화가정 학생’으로 불린다.

금룡은 9살 무렵에 한국에 왔다. 아빠는 중국인, 엄마는 한국인이지만 줄곧 중국에서 자라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처음 한국에 와선 말을 못해서 애들이랑 어울리기 어려웠어요.” 금룡이 말했다. 낯선 ‘엄마의 나라’가 마음에 들었을 리 없다. 운동에서 재능을 발견한 건 다행한 일이다.

금룡은 올해 한국중고역도연맹회장배 대회에서 동메달을 세 개나 거머쥐었다. 선생님의 권유로 역도를 시작한 지 1년6개월여 만이다. 용상(역기를 가슴 위까지 올린 뒤 다음 동작으로 머리 위로 올리는 방식)과 인상(역기를 한 번에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방식)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받았다. 놀이터에서 또래들한테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해 쩔쩔맸을 소년은 5년 만에 69㎏ 체급에 100㎏이 넘는 바벨을 훌쩍 들어올리는 장사가 됐다. 단단해진 몸만큼 마음도 단단해졌다. “힘이 들지만 시합 기록을 볼 때마다 재미있어요. 제 한계를 계속 넘을 수가 있으니까요.” 역도의 매력을 물으니 금룡이 답했다.

올해 입학한 병아리 역도선수 벨군도 곧 금룡처럼 대회에 나가 바벨을 들어올리는 걸 꿈꾼다. 45㎏급으로, 체구는 작지만 가슴 속에 품은 꿈은 크다. “국가대표가 될 거에요.” 벨군은 망설임 없이 장래 희망을 이야기한다. 어느 나라를 대표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벨군은 몽골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몽골말을 할 줄 모르고 몽골에 가본 적도 없지만 엄마·아빠가 몽골인이어서 벨군도 몽골인이다. ‘미등록 아동’ 신분인 벨군은 외국인 번호가 없어 선수 등록조차 할 수 없다. 현재대로라면 대회에도 나갈 수 없지만 가슴에 태극마크를 다는 것을 상상한다. “기록을 세울 때 뿌듯해요. 장미란, 사재혁 같은 선수가 돼야죠.” 자신이 들어올려야 할 게 바벨뿐만이 아님을 아직 잘 모르는 벨군의 웃음이 맑았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황금룡, 벨군과 같은 서울시내 초·중·고교 운동부의 다문화가정 선수 47명한테 장학금과 여름방학 특별훈련비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다문화가정의 범주를 폭넓게 잡아 다양한 학생이 도움을 받도록 했다. 이런 지원이 어려운 환경에서 운동을 하는 선수들한테 힘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설명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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