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20일 경희대학교 네오르네상스관에서 진행된 ‘경희 미래대학리포트’ 출범식에서 조인원 총장(뒷줄 왼쪽 넷째)과 교수 및 학생들이 함께 정치, 경제, 사회·문화, 교육, 인물, 우주·에스에프 등 다양한 주제로 ‘소셜픽션’ 형식의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경희대 제공
[한겨레 대학특집] 경희대학교
경희대 ‘미래대학리포트’ 발표
경희대 ‘미래대학리포트’ 발표
“국가와 시장의 편협한 명령에 항복하도록 내버려두기에 대학은 너무도 중요한 공적 기관이다.”
<대학주식회사>(후마니타스)의 저자이자 <워싱턴 포스트> 등에 기사와 사설을 쓰고 있는 미국 저널리스트 제니퍼 워시번의 말이다. 최근 대학가를 달구고 있는 높은 등록금·학과통폐합 이슈 등은 대학이 점차 공공성을 잃고 상업화되면서 생긴 문제들이다. 워시번의 말뜻이 더욱 다가오는 이유다.
대학의 기업화에 반대하며 그 공공성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도 매년 활발해지고 있다. 소수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명문대학 강의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게 만든 무크(MOOC)나, 4000여개의 교육동영상을 무료로 제공하는 칸 아카데미, 미래형 엘리트 대학을 지향하는 미네르바스쿨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4월, 경희대가 발간한 <미래대학리포트 2015>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미래대학리포트>는 지난해 9월부터 경희대 학생·교수 등 구성원들이 모여 집단지성을 바탕으로 대학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더 나은 대학을 만들기 위한 필요조건을 찾을 수 있도록 한 프로젝트다.
공공성 잃고 기업화되는 대학
‘미래 대학이 추구할 가치 뭘까’
재학생 1만여명 참여 리포트 나와
참된 인격 형성 도와주는 교수에
교육철학·비전 내놓는 총장 원해
‘가치’ 방점 찍은 대답 등 나와
‘세계대학총장회’ 50주년 때 공표 <미래대학리포트> 발간을 공식화한 것은 지난해 9월이지만, 더 나은 고등교육기관을 만들고자 한 경희대 구성원들의 움직임은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4년, 경희대 개교 15주년이던 해, 당시 학교 구성원들은 50년 뒤 미래를 예측해보는 내부 앙케트 조사 결과와 50년 뒤 후배들에게 보내는 ‘미래메시지’를 남겼다. 이 메시지는 마치 선배들로부터 온 타임캡슐처럼 지난해 공개됐고, <미래대학리포트>의 초석이 되었다. 이 리포트에 붙어 있는 ‘미래메시지 50주년 기념’이라는 부제는 이런 배경을 담고 있다. <미래대학리포트>는 ‘대학의 미래와 핵심가치’, ‘미래리포트’ 등 두 번의 대형 설문조사 프로젝트 결과를 종합한 것이다. ‘대학의 미래와 핵심가치’는 다른 대학과의 이미지 비교를 통해 경희대가 추구해야 할 핵심가치를 뽑은 것이다. 대학의 정체성을 구체적 이미지로 형상화해 의인화한 이 조사에서 경희대 구성원들은 경희대생의 이미지를 ‘20대 초반의 여성 문화예술가’로 그렸다. 또 다른 프로젝트인 ‘미래리포트’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비롯해 대학과 한국 사회, 인류 문명 등 5개 주제에 대한 생각들과 50년 뒤 미래 전망을 담아냈다.
<미래대학리포트>에는 경희대 재학생 약 2만5000명 가운데 약 1만4000명이 참여했다. 학부생 3명, 대학원생 1명도 집행위원으로 참가해 교수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학생집행위원으로 교수들과 함께 프로젝트의 전 과정에 참가한 행정학과 4학년 윤성훈씨는 “학교 구성원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 토론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무엇을 질문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단계부터 공을 많이 들였다. 단순한 통계자료처럼 보이지만 문항 구성에서도 신경을 많이 썼다. 언론대학 등에 소속된 연구진들까지 모여 한 달이 넘도록 토론했다.”
경희대 <미래대학리포트> 진행팀이 구성한 65개의 질문들은 ‘현재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2세다. 50년 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몇 세일 것으로 예상하는가?’, ‘지속가능한 미래의 인류사회를 위해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할 핵심가치는 무엇인가?’ 등 현재와 미래에 대한 가치관을 동시에 담을 수 있는 문항들로 구성됐다.
미래리포트에는 미래를 예측해보는 설문조사뿐 아니라 한 주제를 놓고 자신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치며 이상적인 미래를 그려보는 ‘소셜픽션’ 결과도 포함돼 있었다. 윤씨는 “수업시간에는 발표를 시켜도 말을 잘 하지 않던 학생들이 막상 소셜픽션을 하는 자리에서 기대보다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인상깊게 본 교수님들이 많았던 것 같다”며 “이참에 ‘강의형 수업’을 ‘참여형 수업’으로 바꿔보겠다고 적극적으로 말씀하신 교수님도 계셨다”고 했다.
미래리포트 집행위원으로 참여한 철학과 우기동 교수는 “교수를 비롯해 어른들은 요즘 대학생들이 스펙쌓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 꿈도 열정도 없다고 말하지만 미래리포트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며 “이 리포트를 보다 보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대한 학생들의 절규가 들린다”고 설명했다.
“‘어떤 교수가 가장 바람직한 교수냐?’는 질문에 가장 많은 학생들이 선택한 모델은 ‘인격형성에 도움을 주는 정신적 스승’이었다. 학생들은 취직시켜 주는 교수보다 진실한 자극을 주는 스승을 원하고 있었다. 대학을 운영하는 총장도 마찬가지였다. ‘총장의 자질로 가장 필요한 것을 꼽아보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학생들이 ‘교육철학’을 꼽았다. 그다음이 ‘미래비전’이었다. 사회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학생들이 ‘행복’, ‘공공선’ 등에 대한 고민을 훨씬 많이 하고 있었다. 현실적인 여건들 때문에 이 고민들이 잘 안 보이는 것뿐이다. 이런 괴리에 주목하는 것이 바로 <미래리포트>라고 생각한다.”
<미래대학리포트>는 지난 5월23일부터 이틀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개최된 ‘세계대학총장회’(IAUP:International Association of University Presidents) 50주년 기념식에서 공표되기도 했다. 기념식은 전세계 100여명의 전·현직 대학총장들이 참여한 가운데 ‘2065년의 고등교육’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조인원 경희대 총장은 기념식에서 <미래대학리포트> 결과를 소개하며 ‘1965, 그 회상의 미래’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조 총장은 연설 말미에 “사회의 고등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오늘날의 대학과 총장들에게는 중요한 과업이 있다. 인간과 문명의 궁극적 실재 그리고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나서는 일에 필요한 열정과 의지를 다음세대에게 이어주는 일이 그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세계 여러 대학에서 미래리포트를 보고 싶다고 경희대에 요청하는 바람에 시작한 영문판 제작은 현재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경희대는 ‘대학이 바뀌어야 세계가 바뀐다’는 문제의식 아래 <미래대학리포트>를 통해 국내외 대학사회에 세 가지의 화두를 던진다. ‘21세기 대학이 존재해야 하는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대학이 지구적 공공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더 나은 인류문명 건설을 위해 대학이 추구해야 할 핵심가치는 무엇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면서 대학이 갈 길을 함께 찾아보자는 제안이다.
경희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외 대학 및 유관기관과 함께 세계 대학 평가지표를 개발하는 것을 비롯해, 세계대학총장회, 유엔 산하 학문협력기구인 UNAI(United Nations Academic Impact) 등과 함께 전지구적 대학 혁신 운동을 펼쳐갈 계획이다.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
‘미래 대학이 추구할 가치 뭘까’
재학생 1만여명 참여 리포트 나와
참된 인격 형성 도와주는 교수에
교육철학·비전 내놓는 총장 원해
‘가치’ 방점 찍은 대답 등 나와
‘세계대학총장회’ 50주년 때 공표 <미래대학리포트> 발간을 공식화한 것은 지난해 9월이지만, 더 나은 고등교육기관을 만들고자 한 경희대 구성원들의 움직임은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4년, 경희대 개교 15주년이던 해, 당시 학교 구성원들은 50년 뒤 미래를 예측해보는 내부 앙케트 조사 결과와 50년 뒤 후배들에게 보내는 ‘미래메시지’를 남겼다. 이 메시지는 마치 선배들로부터 온 타임캡슐처럼 지난해 공개됐고, <미래대학리포트>의 초석이 되었다. 이 리포트에 붙어 있는 ‘미래메시지 50주년 기념’이라는 부제는 이런 배경을 담고 있다. <미래대학리포트>는 ‘대학의 미래와 핵심가치’, ‘미래리포트’ 등 두 번의 대형 설문조사 프로젝트 결과를 종합한 것이다. ‘대학의 미래와 핵심가치’는 다른 대학과의 이미지 비교를 통해 경희대가 추구해야 할 핵심가치를 뽑은 것이다. 대학의 정체성을 구체적 이미지로 형상화해 의인화한 이 조사에서 경희대 구성원들은 경희대생의 이미지를 ‘20대 초반의 여성 문화예술가’로 그렸다. 또 다른 프로젝트인 ‘미래리포트’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비롯해 대학과 한국 사회, 인류 문명 등 5개 주제에 대한 생각들과 50년 뒤 미래 전망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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