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문화연대와 전교조 등 53개 단체로 이뤄진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한글이 목숨이다’라고 적힌 펼침막을 든 채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자병기 반대’ 광화문서 노제
서울 광화문광장에 만장이 휘날린다. 세종대왕 동상이 굽어보는 가운데 영정을 든 상제들이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한다. 영정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교과서의 겉표지다. 추모를 하려고 몰려든 ‘문상객’들이 외친다. “한글 교과서를 살려내라.” 교육부의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 추진 방침에 반대하며 13일 한글단체와 교육단체들이 연 ‘한글 교과서 장례식’ 풍경이다.
“1945년 8월15일 우리나라는 일본에 빼앗긴 땅과 주권만 도로 찾은 것이 아니라 우리말과 글도 되찾았습니다. 해방 뒤 함흥형무소에서 풀려난 조선어학회 선열들은 ‘한글 만세’를 외치며 기쁜 눈물을 흘렸습니다.” 신문로 한글회관과 광화문광장을 거쳐 노제를 진행한 뒤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 이르러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국민운동본부)의 이대로 상임대표가 운을 뗐다. 2015교육과정 개정안에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를 포함하는 것은 ‘광복 70돌의 역사를 퇴행시키는 시대착오적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개정안은 9월에 확정된다.
한글단체 등 상제돼 ‘교과서 영정’ 들고
“한글교과서 살려내라” 외쳐
“한자병기는 한글 지킨 선열들께 큰 죄” 해방 이후 우리 정부의 방침은 줄곧 ‘한글전용’에 무게를 둬왔다. 1945년 9월 조선어학회가 국어 교과서를 지어 미군정청 학무국에 줬고, 학무국은 이를 바탕으로 그해 12월 교과서에서 ‘한자는 없애고 모든 글은 가로쓰기’하기로 결정했다. 3년 뒤인 1948년엔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이 공포됐고 오랜 갑론을박 끝에 박정희 정부 때인 1970년 ‘한글전용’의 원칙이 바로잡혔다. 초등 교과서가 한글로만 편찬된 것은 이때부터다. 한글학자들이 “광복 70년 동안 가장 성공한 정책”이라 높이 평가하는 박 전 대통령의 성과를 박근혜 대통령이 뒤집으려 하는 셈이다. 1975년 국한문혼용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압박으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병기가 재개됐지만 이내 힘을 잃었다. 1980년대부터 일간신문에서 한자 표기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중고교 교과서에서도 2000년대부터는 한자가 거의 사라졌다. 지금은 대학교재에서도 한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운동본부는 기자회견문에서 “오늘날은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처럼 한자를 많이 쓰는 시대도 아니다”며 “한자병기 방침을 그대로 두면 한글을 목숨처럼 생각하고 지킨 선열들께 큰 죄를 짓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글이 목숨”. 장례는 서예가 강병인씨가 일제강점기 한글학자인 외솔 최현배의 금언을 쓰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기자회견의 한 참석자는 외솔의 스승인 한힌샘(순우리말로 ‘하얀 샘’) 주시경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전했다.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 한글(의 가치)이 내려가면 당연히 우리나라(의 가치)도 내려가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교육개혁을 원한다면 황우여 교육부장관의 엉터리 언어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한글교과서 살려내라” 외쳐
“한자병기는 한글 지킨 선열들께 큰 죄” 해방 이후 우리 정부의 방침은 줄곧 ‘한글전용’에 무게를 둬왔다. 1945년 9월 조선어학회가 국어 교과서를 지어 미군정청 학무국에 줬고, 학무국은 이를 바탕으로 그해 12월 교과서에서 ‘한자는 없애고 모든 글은 가로쓰기’하기로 결정했다. 3년 뒤인 1948년엔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이 공포됐고 오랜 갑론을박 끝에 박정희 정부 때인 1970년 ‘한글전용’의 원칙이 바로잡혔다. 초등 교과서가 한글로만 편찬된 것은 이때부터다. 한글학자들이 “광복 70년 동안 가장 성공한 정책”이라 높이 평가하는 박 전 대통령의 성과를 박근혜 대통령이 뒤집으려 하는 셈이다. 1975년 국한문혼용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압박으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병기가 재개됐지만 이내 힘을 잃었다. 1980년대부터 일간신문에서 한자 표기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중고교 교과서에서도 2000년대부터는 한자가 거의 사라졌다. 지금은 대학교재에서도 한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운동본부는 기자회견문에서 “오늘날은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처럼 한자를 많이 쓰는 시대도 아니다”며 “한자병기 방침을 그대로 두면 한글을 목숨처럼 생각하고 지킨 선열들께 큰 죄를 짓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글이 목숨”. 장례는 서예가 강병인씨가 일제강점기 한글학자인 외솔 최현배의 금언을 쓰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기자회견의 한 참석자는 외솔의 스승인 한힌샘(순우리말로 ‘하얀 샘’) 주시경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전했다.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 한글(의 가치)이 내려가면 당연히 우리나라(의 가치)도 내려가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교육개혁을 원한다면 황우여 교육부장관의 엉터리 언어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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