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고 전경. 충암고 누리집 갈무리
현장에서
“그 선생님,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분 같았어요. 민원 하러 와서 대화를 녹취하더라고요.” 지난 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서울시교육청의 학교법인 업무 담당자가 하는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서울 충암고의 급식 비리 의혹을 시교육청에 알린 ㄱ교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ㄱ교사는 지난해부터 학교급식 전반에 문제의식을 갖고 학교 이사회 회의록 등 자료를 구하다 올해 5월 시교육청의 문을 두드렸다. 학교는 어떤 자료도 내주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ㄱ교사와 시교육청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당시 시교육청 학교법인 업무 담당자들은 ㄱ교사가 서로의 대화를 녹취한다는 이유로 민원 상담을 거부했다. 학교의 비리 의혹을 알리려고 시교육청을 찾은 공익제보자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며 내친 것이다. 많은 공익제보자가 조직 안에서 탄압받기 때문에 증거자료를 남기는 데 철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당시 ㄱ교사는 급식 운영을 문제 삼았다가 학교로부터 징계 압박 등을 받고 있었다.
시교육청이 사립학교를 관리·감독해야 할 의무를 방기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사립학교법상 학교법인은 3개월마다 이사회 회의록을 공개하게 돼 있지만 당시 충암고는 2003년 12월 이후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와 관련한 ㄱ교사의 문제 제기에 “충암고만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일축했던 시교육청은 지난 8일 <한겨레>가 문의하자 그제야 “서둘러 조처하겠다”고 답했다. 이미 지난 4일 시교육청의 감사 결과 발표로 ㄱ교사가 제기한 의혹의 상당 부분이 사실로 드러난 뒤였는데도, 정작 사학법인을 관리하는 부서는 언론 취재 전까지 ‘모르쇠’로 일관한 셈이다.
한국에서 사립학교는 성역이다. 정부의 지원은 받지만, 통제는 받지 않는다. ‘사학 비리’를 없애기 위해 법이라도 개정하려 하면 종교단체와 보수정당이 결집해 거리에서 촛불시위를 벌인다. 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들은 부정을 목격하고도 불이익을 우려해 입을 닫는다.
그 비리의 한 귀퉁이가 가끔 모습을 드러낼 때도 있다. 교사들이 불이익을 감수하고 내부고발자로 나설 때다. 입학 전형에서 학생들의 성적을 조작한 의혹을 받고 있는 하나고, 급식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충암고. 최근 공분을 자아낸 두 사안 모두 현직 교사가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성역의 그늘에 묻혔을 일이다. 공익제보자의 고발을 귀담아듣는 것이 사학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인 이유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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