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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상고사 강화, 민족주의 자극하려 검증 안된 내용 서술 우려

등록 2015-11-09 21:12수정 2015-11-10 09:19

국정교과서 위험한 질주
②상고사 확대
정부가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확정고시한 지난 3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일성으로 “상고사와 고대사를 보강하겠다”고 말했다. “동북아 역사 왜곡을 바로잡겠다”는 취지지만 전문가들은 “민족의 기원에 집중하는 상고사와 고대사의 강화가 자칫 국수주의나 배타적 민족주의로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황 장관이 국정화의 명분으로 줄곧 주장해온 ‘근현대사 편향’ 문제보다 ‘상고사 강화’를 앞세운 것은 왜일까?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1980년대에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 극우 정치인의 코치를 받아서 한 일이 ‘88올림픽’과 ‘국풍81’(전두환 정부가 민족문화 계승을 구호로 개최한 문화축제)이다. 민족주의 고취는 권위주의 정부의 공통 관심사다”라고 말했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역시 “국정화에 별다른 명분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니 상고사를 앞세운 것으로 보인다. 국수주의적 역사 기술로 국가의 이름으로 대중을 하나로 묶는 방식이다”라고 짚었다. 정부가 ‘친일·독재 미화 논란’이 많은 근현대사 대신 민족주의 정서에 편승하기 쉬운 상고사 비중 강화로 부정적 여론을 돌파하려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상고사 강화에 일관된 관심을 보여왔다. 2013년 4월 박 대통령은 직접 “상고사 정립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이듬해인 2014년 정부는 상고사 연구 지원을 크게 확대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한국연구재단 등 교육부 산하 연구기관들에 수십억원의 고조선 등 상고사 연구비가 지원됐다. 지난해 3월엔 서남수 당시 교육부 장관이 직접 한국상고사학회 등 상고사 전공 교수들을 만나기도 했다. 2013년 국회에 여야 합의로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가 구성된데다 동북공정(중국)이나 임나일본부설(일본) 등으로 고대사 이전 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진 탓도 있지만, 박 대통령의 관심이 반영됐다는 시각이 많다.

전문가 “전두환 때도 민족주의 고취
권위주의 정부의 공통 관심사”
국수주의 서술로 흐를 여지 커져
사료 없는 상고사 서술 강화땐
동북아 역사갈등 커질 수도

박 대통령은 2013년 취임 뒤 맞은 첫 광복절 축사에서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는 <환단고기>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한국 상고시대의 정치·종교를 서술한 <환단고기>는 한민족이 고대에 아시아 전역을 지배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원전이 남아 있지 않고 그 내용도 유적이나 다른 사료 등으로 확인된 고대사 서술과 맞지 않아 주류 역사학계에선 근대에 만들어진 위서로 평가받지만, 일부 비주류 학자들에겐 중시되는 책이다. 박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과학분야 전문위원, 교육부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성삼제 교원소청심사위원장 등이 현 정부에서 이런 입장을 대내외적으로 적극 지지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까닭에 국정 교과서에 사료로 검증되지 않는 이설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현재 주류 사학계 대부분이 국정 교과서 집필 거부를 선언한 터라, 일부 소수의 의견이 주장이 틈입할 여지가 더 생길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한 군현의 위치나 고조선의 세력 범위 등에 있어 주류 사학계는 사료에 기반한 ‘실증주의’를 고수해왔다. 역사학계에서 주류와 비주류 학자가 논박을 주고받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교과서는 객관적 검증을 거친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역사교사는 “현재는 고조선에서 3세기 정도까지의 역사가 거의 ‘블랭크’(빈칸)로 남겨져 있다. 상고사 사료가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더 자세히 기술하면 역사를 왜곡하지 않을 수 없고, 역사 갈등이 격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북공정 등에 대응하기 위해선 논란 많은 상고사와 고대사 서술 강화 같은 방식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중현 잠일고 교사는 “과거의 역사에 매달려 상대를 비판하기보단 이와 같은 역사 왜곡 문제가 빚어진 배경이 무엇인지,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역사를 해석하고 대응해야 할지 학생들로 하여금 직접 고민하게 하는 게 역사교육의 근본적인 취지”라고 말했다. 동북아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은 모두 근현대 시기 국가주의적 팽창에 따른 결과물인 만큼 근현대사의 맥락에서 교육해야 한다는 뜻이다. 박 교사는 “같은 사안을 한·중·일이 각각 어떤 관점에서 다루는지 배우면 역사적 사실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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