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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우리 학교엔 ‘학생 사장님’이 있습니다

등록 2015-11-23 20:26

학교 구성원들의 학교 안 사업장 ‘태봉 작업장학교’에서 박경화 교사(앞줄 맨 왼쪽)와 아이들이 포즈를 취했다.
학교 구성원들의 학교 안 사업장 ‘태봉 작업장학교’에서 박경화 교사(앞줄 맨 왼쪽)와 아이들이 포즈를 취했다.
청소년 작업장학교
학교 복도를 따라 걸으며 본 교실 풍경은 각기 달랐다. 어떤 교실은 그림으로 가득 꾸며져 있었고, 어떤 교실엔 책상이 하나도 없었다. 복도를 지나 뒷문 밖으로 나오니, 나무조각이나 헌 옷, 화분으로 가득한 마당이 있는 아담한 가게가 있었다. 경남 창원의 공립형 대안학교 태봉고에서 운영하는 작업장학교 ‘나비의 꿈’(이하 작업장학교)이다.

커피·초콜릿·공예품 등
내 손으로 만든 제품 모아
학교 공간서 창업한 학생들
수익금 15% 운영비로 내기도

지금 재미있고 좋아하는 일 해보며
‘내 일 맞나’ 판단해볼 기회 열어

작업장학교는 학생들이 직접 꾸려가는 사업장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학생들은 모두 사장이다.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는 학생은 카페를 운영하고, 조주사 자격증이 있는 학생은 무알코올 칵테일을 판다. 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사업의 경우 선반장의 한 칸이 한 사업장의 진열대다. 학생뿐 아니라 재학생·졸업생의 학부모, 교사도 작업장학교의 일원이 될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다. 하지만 ‘일단 해보면서 알아보자’며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학생들은 작업장학교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기회를 얻는다.

2학년 손재성군은 12년 해왔던 택견 선수 생활을 다리 부상으로 그만뒀다. 그 뒤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색소폰, 미술 상담치료 등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초콜릿에 푹 ‘꽂혔다’. 손군은 쇼콜라티에 과정을 수료한 뒤 작업장학교에서 초콜릿 브랜드 ‘까만약’을 운영하고 있다.

“사람들이 상처가 생겼을 때 ‘빨간약’(포비돈 요오드액)을 바르잖아요, 제 초콜릿을 먹고 사람들이 마음을 치유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까만약’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손군은 일주일 동안 작업장학교에서 팔 초콜릿 제품을 만들기 위해 매주 일요일 학교에 와 6시간이 넘도록 초콜릿을 만든다. 그에게는 제자도 있다. 1학년 정민상군은 매주 화요일 손군에게 초콜릿을 배운다. 정군은 “잘하고 싶은 일이 생기니 학교생활이 조금은 더 즐거워졌다”고 말했다.

“학교에 오면 매번 그냥 잤어요. 기타도 쳐보고, 커피도 배워봤는데 잘 안 맞았어요. 한 초콜릿 공방에서 재성이 형이 초콜릿을 만드는 걸 보니 저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의 저처럼 좋아하는 게 뭔지 잘 모르는 애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이 생기니까 학교도 조금씩 좋아졌어요.”

작업장학교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12명의 운영위원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방과 후 시간을 활용해 물건을 만들어 팔고, 수익금의 15%를 운영비로 낸다. 나머지 돈은 다시 원자재구입비 등 사업운영자금으로 쓴다. 주 고객은 작업장학교를 찾는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이다. 이 학교의 박경화 교사도 작업장학교에서 헌 청바지로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과 실 팔찌 등을 만들어 파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과 작업장학교를 꾸려가고 있는 박 교사는 “작업장학교는 학교와 가족 등 사회구성원들을 잇는 공동체이자 아이들이 스스로 본인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배움터”라고 말했다.

작업장학교 안의 상품 진열대. 작업장학교에서는 한 사업체당 한 칸의 진열대를 사용한다.
작업장학교 안의 상품 진열대. 작업장학교에서는 한 사업체당 한 칸의 진열대를 사용한다.
“작업장학교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학생들은 많은 사업가들과 똑같이 여러 위기를 만납니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잘 팔리지 않는 이유를 고민하지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죠. ‘내가 하겠다’고 결심한 일을 스스로 해내는 경험을 하면서 성장합니다. 학교 밖에서는 마음껏 할 수 없는 ‘패자부활’이 가능한 곳이라는 장점도 있죠.”

작업장학교의 모토는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치고, 판매하는 배움터’다. 사업을 운영하는 작업장학교의 운영위원들은 학교를 방문한 인근 학교의 또래들에게 다양한 기술이나 사업을 소개하기도 하고, 강의도 한다. 때로는 학부모들도 학생들에게 기술을 배우러 온다. 작업장학교 카페팀의 일원인 2학년 김문석군은 아버지에게 커피를 가르친다. 손재성군의 어머니도 작업장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커피를 배운다. 김군은 “나중에는 아빠랑 같이 카페를 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라며 “커피를 만드는 데 몰두하다 보면 자연스레 잡생각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지죠” 하고 웃었다.

박 교사와 작업장학교의 아이들은 작업장학교 모델을 학교 밖으로 확대하는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 학교사회적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할 계획도 세웠다. 이들은 직업별 전문작업장학교가 주변 학교나 마을에 퍼져 청소년과 지역주민 모두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학교 자유학기제 체험 공간, 청소년 경제 자립 공간 등 작업장학교의 가능성에 주목한 교육 사업 아이디어로 고용노동부가 지난 10월2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연 2015 소셜 벤처 경연대회 청소년 아이디어 부문 대상을 받았다. 박 교사는 “작업장학교는 학교 안 빈 교실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도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학교에도 빈 교실들이 생깁니다. 그런 빈 교실들을 작업장학교로 만들어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알아볼 수 있는 기회도 갖고, 목표를 달성하는 힘도 얻었으면 합니다.”

작업장학교는 태봉고 바깥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 노원구에서도 혁신교육지구 사업의 일환으로 ‘창창한 작업장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노원교육복지센터와 노원청소년자활지원관이 함께 운영하는 창창한 작업장학교에서는 청년·청소년들이 교육지원센터 ‘나란히’로부터 창업교육을 받을 수 있다. 카페뿐 아니라 아이티(IT) 등 다양한 사업 분야의 모의창업반이 열려 있어 학생들이 관심 있는 분야와 관련된 사업을 미리 구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창원/글·사진 정유미 '함께하는 교육'기자 ymi.j@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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