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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애초 부실 설계된 ‘시간강사법’…교원 지위 얻기전, 그냥 잘리네요

등록 2015-12-17 21:21수정 2015-12-18 08:48

이슈 포커스
‘시간강사법’ 세번째 유예되나
‘유예냐 시행이냐.’ 8만여명에 이르는 대학 시간강사의 교원 신분을 인정하는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이 내년 1월1일 시행을 코앞에 두고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시간강사들 사이에서마저 처지에 따라 의견이 나뉠 만큼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 교육부 뒤늦게 허둥…국회는 몸사리기

교육부는 뒤늦게 이달 들어 국회 쪽에 유예나 재개정 등 대책 마련을 요청했다. 여야 의원 누구도 나서지 않다가, 결국 지난 13일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이 ‘2년 유예’ 개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다른 의원들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여당 쪽 관계자는 “내용을 잘 모른다. 시간이 촉박해 임시국회 통과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야당 쪽 관계자 역시 “교육부가 제대로 된 대안을 가져오면 그걸 보고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한 교문위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섣불리 총대를 메지 못하고 몸을 사리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난 2011년 개정된 강사법은 고등교육법 제14조의 ‘교원’ 구분에 강사를 추가해 시간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주고 제14조 2항에 1년 이상의 계약으로 강사를 임용하고 4대 보험 등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처지를 비관한 시간강사들의 잇따른 자살로 여론이 들끓자 급히 마련된 개선안이다. 하지만 비용 부담 때문에 대학들이 ‘무더기 해고’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3년 동안 시행을 유예했다.

시행앞 무더기 해고 현실화
시간강사에 ‘교원’ 지위 주는 법
대학들, 비용증가 부담에 해고
국회는 “풀기 어려운 문제” 눈치만

강사들도 처지 따라 의견 갈려
“이 자리마저 잘려…시행 유예해야”
“이 법이라도 시행해야 지위 회복”
논란 길어지면 결국 학생들도 피해

시간강사 실태
시간강사 실태

■ “이 자리마저 잘릴라” “유보한다고 나아질까”

국회가 몸을 사리는 이유는 강사법 시행을 놓고 대학과 정부, 대학과 강사는 물론, 시간강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크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대학교육협의회 등으로 대표되는 대학들은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강사법 폐지·재유예를 요구하고 있다. 강사들을 대표하는 주요 단체 중 하나인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하 한교조)은 “‘대학판 비정규악법’인 강사법이 시행되면 대량해고가 현실화될 것”이라며 지난 7~16일 서울 여의도 새정치민주연합 당사에서 시행 유예를 요구하는 점거농성을 벌였다. 한교조는 근본적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의 전임교원 충원을, 그에 앞서 단기적으로는 비전임 교원들에게 2~3년 단위 재임용 계약을 보장하는 ‘연구강의교수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반면 또다른 강사단체인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전강노)은 “이 강사법이라도 시행해 강사의 교원 지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강노는 상대적으로 소수지만 더 강경하다. 2008년부터 여의도 거리농성을 8년간 이어왔을 뿐 아니라 최근엔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2년 유예를 반대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간강사법 관련 주요 사건
시간강사법 관련 주요 사건
현장의 강사들도 의견이 나뉜다. ㄱ(38)씨는 6년째 사립대 두 곳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틈틈이 강연이나 기고 등을 통해 돈을 벌어도 월 수입이 150만원 안팎이다. 강사법이 통과되면 교원인 시간강사는 법정 주간수업시수 9시간(3학점 3과목)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대학은 3명의 강사가 맡을 3개의 수업을 1명의 강사에게 몰아줄 가능성이 크다. ㄱ씨는 “법이 시행되면 학교는 시간강사를 줄일 텐데, 그러면 아직 신참인 내 자리가 먼저 잘려나갈 것 같다”고 말했다.

철학 강사인 ㄴ씨는 25년 일하던 사립대에서 2013년 전자우편으로 해촉 통보를 받았다.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학교는 교수를 비롯한 전임교원들에게 강의를 몰아줬다. 사실상 강사법 때문에 해고된 셈이지만 그는 법 시행을 지지하는 쪽이다. 오랜 싸움의 역사를 지켜봤기 때문이다. ㄴ씨는 “이번에 법이 유예·폐기되면 과연 다음에 국회와 정부가 더 좋은 법안으로 나서주겠나. 일단 시행한 뒤 보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 피해는 학생들 몫

한교조 관계자는 “정부도, 대학도 지난 3년 동안 소요비용을 검토조차 해보지 않았다. 재원 추계조차 없는 입법은 애초에 잘못된 것”이라며 “2016년 시행은 막되, 대체법안에 ‘강사법 특위’ 등 사회적 논의기구 설치를 명시해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사법을 둘러싼 논란이 길어지면 시간강사들의 불안정한 처지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강태경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은 “학교는 재정 부족을 이유로 강의를 통폐합하고 대형화하면서 강사들을 잘라낼 것이고, 이 과정에서 비주류 학문이나 새로운 관점을 소개해온 젊은 강사들이 설 자리는 좁아질 것이다. 다양한 학문을 접할 기회가 줄고 대형 강의로 인해 강의의 질이 떨어지는 등 학생들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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