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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아픈 아이 앞, 부모의 불안을 보이지 말자

등록 2016-02-01 20:29수정 2016-02-02 10:37

윤다옥 교사의 사춘기 성장통 보듬기
부모 경력자들끼리 모이다 보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미리 알았다면 정말 생각 많이 했을 거다”, “부모가 되면서 내 인간성의 바닥을 봤다” 등의 얘기를 종종 한다. 내 몸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대한다고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내 욕구와 이기심이 앞서는 일이 드물지 않다. 때로는 짜증과 화, 한편으로는 죄책감과 자괴감에 몸서리를 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아이가 약하고 아플 때 ‘내가 뭘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걸까?’ 싶어 자책하게 된다. ‘아기 때 모유수유를 하지 못해서 그런가. 몸에 좋다는 음식이나 건강보조식품들을 잘 챙겨주지 못해서 그런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줘서 그런가. 사랑을 충분히 주지 못해서 그런가. 또 뭘 제대로 못해준 것 때문에 그런가’ 등의 생각들이 절로 든다. 엄마인 나 자신한테서 아이의 상태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찾게 된다. 아이가 아플 때 그것도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 갖고 살아가야 하는 병이 있거나 그 병이 점차 진행되는 경우일 때 특히 더 그런 마음이 든다.

사춘기 아이들도 병이나 장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소아당뇨나 척추측만증, 갑상선질환, 기립성저혈압, 여드름, 탈모 등의 증상으로 사춘기를 더 어렵게 보내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종종 만난다. 몸에서 나타나는 이상징후를 겪으면서 마음까지 위축되고 우울해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의 증상을 소홀히 여기거나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제때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받도록 해주는 부모들이 많지만 아이의 심리상태까지 잘 알고 대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중학교 2학년 때 갑상선 기능 항진증 진단을 받은 한 아이도 감정적인 혼란을 많이 겪었다. 처음에는 금방 괜찮아질 줄 알았다고 했다. 심각성을 잘 몰라서 ‘금방 괜찮아지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부모님의 설명과 자기 나름의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심각성을 느끼게 됐다고 했다. 병에 대한 부모의 설명과 희망을 주는 격려가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안 된 것은 아니지만, 증상이 하나씩 나타나면서부터 아이의 걱정은 점점 커져만 갔다. 관련 증상들 가운데 가장 걱정됐던 게 뭐냐고 물었을 때 아이는 “눈 튀어나오는 거”라고 바로 말했다. 다른 증상들은 겉으로 덜 드러나지만 외모의 변화는 사춘기 아이에게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런 불안을 안고 있으면서도 아이는 항상 밝게 행동했다. 부모님이 아픈 자기 때문에 힘들어할까봐 미안해했고, 친구들에게는 분위기를 무겁게 할까봐 불편해했던 거였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아픈 자기를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대할 때는 “신경 써주진 않는 것 같다”며 서운해했다. 이렇게 모순되는 감정에 아이 자신도 굉장히 혼란스러워했다. 또래에게 그냥 ‘아픈 사람’, ‘약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비치는 게 싫다고도 했다. 한번은 반 아이들이 체육활동 중 힘쓰는 일에서 자기한테 빠지라고 말한 일을 얘기하면서 아이는 “쫓겨났다”고 표현했다. 자신이 “기운 없고 아픈 애로 여겨지는 것 같다”며 울었다. ‘아프다는 이유로 활동에서 알아서 배제당하거나 소외당하고 싶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은데, 그걸 물어봐주고 들어주는 사람들이 없다.’ 상담에서 아이가 바란 것도 자기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이가 아플 경우, 부모도 괴롭지만 당사자인 아이가 겪는 고통과 혼란도 엄청나다. 따라서 부모들은 아이에게 힘이 되어주면서 자신의 마음도 잘 다스릴 필요가 있다. 특히 단기간, 한두 번의 개입이나 치료로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 때 어려움이 많다. 이때 부모로서 아이를 제대로 돌보고 있는 건지, 더 적절한 치료나 개입방법을 못 찾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고 자책하기 쉽다. 이런 생각들은 불안과 우울을 가져온다.

사춘기는 아이가 마음속에 자신만의 멋진 새 집을 짓느라 성장통을 겪는 시기다. 부모는 몸과 마음으로 아이들 통증을 감싸줘야 한다. 부모와 사춘기 자녀가 몸과 마음으로 교감하는 ‘사춘기 파티’에 참여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춘기는 아이가 마음속에 자신만의 멋진 새 집을 짓느라 성장통을 겪는 시기다. 부모는 몸과 마음으로 아이들 통증을 감싸줘야 한다. 부모와 사춘기 자녀가 몸과 마음으로 교감하는 ‘사춘기 파티’에 참여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아이가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그래야 더 적절히 개입할 수 있다. “조심하자, 잘하자”라며 상황을 더 심각하게 얘기해서 아이를 겁먹게 하거나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대하며 부모 혼자서 감당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아이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하고 얘기해줄 필요가 있다. 큰 틀은 여전히 부모의 책임영역이지만, 그 안에서 아이 자신도 맡아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치료나 교정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아파 계속 진행하도록 독려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어떤 경우는 부모가 그것을 감당해낼 힘이 없어서 아이의 중단 요구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개입 과정이라면 힘들어하는 아이를 든든히 받쳐줄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불안과 우울감에 휩싸여 있으면 아이는 눈치를 보게 된다.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 부모로 먼저 인식하게 되면 아이는 도움을 요청할 수 없게 된다. 부모 자신의 마음과 건강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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