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 성희롱’ 뒷짐진 교육부
성폭력 예방교육 시행 97%에도
강제성 없어 학생 이수율 33%뿐
“대학 손 놓지 않게 정부가 나서야”
성폭력 예방교육 시행 97%에도
강제성 없어 학생 이수율 33%뿐
“대학 손 놓지 않게 정부가 나서야”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ㄱ씨는 2년 전 동아리 신입생 환영 엠티(MT)에 참가했다가 큰 수치심을 느꼈다. 여장을 한 남자 신입생들이 남자 선배들을 상대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안무를 선보였다. 남녀가 팀을 이룬 게임에선 포옹 등 스킨십을 유도하는 벌칙도 주어졌다. “다들 신나게 웃고 어울리는데 저만 유별나게 구는 것처럼 보일까봐 아무 말도 못 했어요.” 나중에야 ㄱ씨는 남녀를 막론하고 다른 신입생들도 속으로 불쾌감을 삭인 것을 알게 됐다.
최근 건국대 생명환경과학대 신입생 오티(OT)에서 일부 학생들이 신입생을 상대로 성희롱·추행 수준의 행사를 진행한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해마다 신입생 행사에서의 성폭력 논란이 반복되는데도 이를 감독해야 할 교육부가 뒷짐만 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 내 성폭력 사건에서 ‘학생 간 성폭력’ 비율이 가장 높은 점을 고려하면, 학생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기보단 학생 대상 성폭력 예방교육을 강화하는 등 교육당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29일 여성가족부의 ‘성폭력 예방교육 실시 현황’을 보면 전국 2년제·4년제 대학의 96.9%는 2014년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했다. 하지만 실제 학생들의 성폭력 예방교육 이수율은 33.5%에 지나지 않았다.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초·중·고교와 대학, 정부, 공공기관 등은 매년 구성원들에게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실적을 제출하게 돼 있지만 초·중·고교생과 달리 대학생에겐 의무이수 규정이 없어서다.
대학 관계자들은 “예방교육 등 교내 성폭력 대책은 총장의 의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입을 모은다. 한 수도권 대학의 양성평등센터 업무 담당자는 “교수·교직원 예방교육을 위한 예산은 있지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예산은 없기 때문에 교육을 실시할 수가 없다. 의무 이수 교육이 아니어서 학교에 요구해봐야 소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화여대 등 일부 학교들은 온라인 성폭력 예방교육을 이수하고 이를 인증하면 기념품을 주는 등의 방식으로 학생들의 교육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은 “학생들이 예방교육 내용에 공감하고 배우는 게 중요하지만, 교육을 받기만 해도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때문에 참여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대학이 성폭력 예방에 적극 나서게 할 유인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성폭력 예방 주무부처는 여성가족부지만 대학 내 실태를 관리·감독할 주체는 교육부로 이원화돼 있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학생에 대한 성희롱을 교육법상 학습권을 침해하는 문제로 규정하는 등 고등교육기관의 중요 문제로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에도 관련 조항을 넣고 대학이 책임을 방기할 경우 정부가 예산 중단과 같은 불이익 조처를 내려야 한다”고 짚었다.
한편 이날 교육부는 건국대 오티 논란과 관련해 대학 쪽에 진상조사와 함께 해당자에 대한 징계 계획 등을 제출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행사는 되도록 하루 내에 끝내고 이틀 이상 진행할 때는 책임자를 지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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