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학셔너리] 더욱더 격렬하게 철학하라!

등록 2016-03-14 16:32수정 2016-03-14 16:47

더욱더 격렬하게 철학하라!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모든 학문은 철학으로 통한다. 다른 학문들이 세계의 특정 부분을 고들어 연구한다면, 철학은 ‘세계의 모든 것’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핥기식 설명에 지쳤다면 철학과에 재학 중인 선배들을 통해 철학과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글 전정아·사진 허정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철학, 대체 어떤 학문인가요?

박한얼(이하 한얼) 간단히 설명하면 인간의 문화 전체를 주제로 삼고 있는 학문이에요. 인간은 무엇일까, 신은 무엇일까, 사물이나 세계, 행위, 존재 등은 또 어떤 것일까 같은 다양한 질문을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을 찾는 학문이죠.

박지현(이하 지현) 수업 중심으로 얘기하자면 동서양의 철학사와 철학 이론을 배우는 학과이고요.

김선교(이하 선교) 우리 학교 철학과는 예술과 문화, 미디어 영역등 다양한 학문과 철학의 연관성을 함께 공부하고 있어요. 2013년에 신설된 학과라 가능한 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죠.

하고많은 전공 중에 철학과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한얼 저는 학과가 아닌 학부로 입학했어요. 1학년 때는 학부에 속한 전반적인 학문을 교양으로 배우고 2학년에 특정 학과를 선택하는 시스템이었거든요. 기왕 인문학부에 들어온 거, 인문학의 정수인 철학을 제대로 공부해보자는 마음에 철학과로 정했어요.

지현 솔직히 말하면 수능 성적에 맞춰 선택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철학과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됐거든요.

선교 전 원래 경영학과였어요. 취업할 때 유리할 거라는 생각에 경영학과를 지원했죠. 그런데 우연한 기회로 ‘서양 철학사’라는 철학과 수업을 듣고서 철학을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자유로운 토론 수업 속에서 서양철학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이 정말 재밌었거든요. 그래서 바로 전과를 결심했죠

철학과를 선택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한얼 친구들은 신기해했어요. 괜히 있어 보인다며 우러러보는 친구들도 있고.(웃음) 물론 진지하게 뭐 먹고살 거냐는 식으로 묻는 분들도 많았어요.

선교 자기 연애할 수 있겠냐고 손바닥을 들이대며 손금 봐달라는친구들도 있어요. 철학원 낼 거냐고 묻기도 하고.(웃음) ‘철학’ 하면 철학관이나 작명소가 먼저 떠오르나 봐요.

그럼 철학과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걸 배우나요?

지현 1학년을 위한 수업은 보통 마음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수업들이에요. 철학 입문, 생활과 철학, 논리철학과 동양 철학사 등 교양처럼가볍게 배워요.

선교 그리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철학을 파고들기 시작해요. 인식론, 도가와 불가, 형이상학, 희랍철학 등등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어려운 수업을 수강해야 하죠. 그래도 고학년이 되면 미디어와 철학, 환경철학, 대중문화와 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철학에 연계시켜 함께 연구하는 ‘융합철학’을 배울 수 있어요. 많은 친구들이 융합철학 과목을 좋아해요. 자신이 관심 가진 분야와 철학을 함께 연구할 수 있으니까요.

한얼 오, 신기하네요. 고려대에는 학년별 교육과정이 없거든요. 동양 철학사, 서양 철학사, 논리와 이론철학, 윤리와 실천철학 총 네가지 분야로 나뉜 영역에서 자유롭게 세부 과목을 들어 학점을 채우면 전공을 수료한 것으로 인정되는 식이에요.

같은 전공인데도 두 학교 수업 방식의 차이가 커 보여요.

한얼 그러게요. 잠깐 얘기를 나눴을 뿐인데도 차이가 크게 느껴지네요. 일단 우리 학교 수업은 강의 위주예요. 교수님들의 논문과 전공서적을 바탕으로 수업이 진행되죠. 토론 수업은 딱 한 과목뿐이에요. 그래서인지 친구들 중에는 혼자서 탐구하는 고독한 철학자가 많죠.

선교 우리 학교는 토론 수업이 많아요. 학생들도 발표와 토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죠. 서로 질문하고 반대 의견을 내면, 또 그 의견에서 허점을 찾아내 지적하면서 수업이 진행돼요. 토론이 열기를 띨때는 교수님에게까지 태클을 걸죠.(웃음) 욕만 안 했지 전쟁터처럼 의견이 난무해요. 이제는 그런 방식에 익숙해졌지만 처음엔 좀 충격이었어요. 외국 영화에 나오는 자유로운 대학 수업과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아요.

지현 교수님은 질문만 던지고 답은 학생들이 알아서 구해야 하는 수업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 진도를 다 못 나가고 수업이 끝나는 경우도 있죠. 결국 공부도 수업도 모두 학생 몫으로 돌아오니 자연스레 스터디 그룹이 활발해져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도 말해주세요.

지현 ‘예술작품과 철학’이라는 과목이 정말 재밌었어요. 예술을 보는 저만의 관점을 기를 수 있었거든요.

선교 딱 하나를 꼽기는 어렵네요. 생각해보면 가장 힘들었던 수업이 가장 재밌는 수업인 것 같아요. 철학과 학생들은 고통을 즐기는 타입이 많거든요. 그렇다고 변태라는 소리는 아니고….(웃음) 그날 수업 내용이 이해가 안 되면 동기들끼리 서로 불평하면서도 자진해서 그 이론을 파고들어 공부해요. 학문을 파고드는 고통 속에서 겨우진리를 발견하면 그 희열이 엄청나서 끊을 수가 없어요. 일종의 마약 같은 거죠.

한얼 공감되네요. 저는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말이 와 닿았던 불교철학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인생의 전환점이 된 말이에요. 삶은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 고통 속에서 인간의 진정한 본성을 찾을수 있다는 말은 힘든 시기의 저를 다잡아줬거든요. ‘앓느니 죽지’ 싶었던 수업도 있긴 했지만 과목명을 딱 짚지는 않을래요. 우리 학과 교수님이 이 글을 읽으실 수도 있으니까.(웃음)

어느 학과든 그 학과생만의 특징이 있잖아요. 철학과 학생들의 특징도 궁금해요.

한얼 어문학을 배우는 학생이라면 그 나라의 기질이 스며들어 있을거고, 물리학과라면 인과관계가 명확한 걸 좋아하는 이성적인 친구들이 대다수겠죠. 그런데 철학과 학생들은 그 ‘특징’이 없어요. 다들 가지각색으로 개성이 아주 뚜렷하죠.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유행에 휩쓸리는 친구들이 거의 없다는 거? 어떤 친구들은 정말 학점에 초연해요. 강의 시간에는 완전 집중해서 듣고, 그 강의를 녹음해서평상시에 다시 듣기까지 하는데 학점은 항상 밑바닥을 찍어요. 시험을 잘 볼 의지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그런데 그 친구는 지금 영국으로 유학을 갔네요. 그것도 디자인 전공으로.

지현 저희 학과의 한 친구는 부채를 들고 다닌다니까요. 그 친구의 냉소적인 성격과 노란색 부 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어우러져요. 그래서 별명도 ‘사이비 도사’예요. 각각 개성이 다른 철학과 친구들을 보면 ‘10인 10색’이란 말이 떠올라요.

그래도 철학과에 어울리는 특징이나 적성이 있을 것 같아요.

지현 물론이죠. 일단 생각이 없을 것.

선교 그리고 멍을 잘 때릴 것.

한얼 고통을 즐길 줄 알 것도 추가요.

생각이 없는 게 오히려 좋다니, 이해가 잘 안 돼요. 철학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기본인 학문 아닌가요?

선교 생각이랑 철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예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생각이 없는 친구들이 더 나아요. 엄청나게 많고 서로 대립하는 철학 이론을 차근차근 그려 넣으려면 어설프게 낙서된 종이보다는 백지장이 낫죠. 그리고 그 방대한 이론을 토대로 자기의 관점과 생각을 쌓아나가야 해요.

지현 그래서 목표나 꿈이 없는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학과예요. 일단 철학과에 들어오면 애인은 안 생겨도 자기만의 생각은 생기거든요.

철학과만의 학과 활동도 소개해주세요.

지현 우리 학과에서 가장 오래된 학과 활동은 ‘아무거나 철학 광장’이라는 세미나예요. 소논문을 준비해서 발표하는 세미나인데, 주제는 말 그대로 아무거나 선택해도 상관없어요. 철학적이고 논리정연 하게 풀어내기만 한다면요. 저는 ‘패션의 재해석’이라는 주제로 발표했고, 선교는 ‘밀당’을 주제로 심도 있는 연애관을 펼쳤죠. 아, 이‘아무거나 철학 광장’은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요.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6시, 단국대 대강당에서 열리니 관심 있는 친구들은 놀러 오세요!

선교 작년 10월에는 ‘융합철학 워크숍’을 열기도 했어요. 커뮤니케이션 학과와 디자인학과, 그리고 철학과가 함께 철학 관련 주제로 광고를 제작하고, 그 광고로 상금이 걸린 콘테스트를 여는 컬래버레이션 활동이었죠. 제1회 주제는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이었는데, 저희 팀이 2등을 했어요. 백혈병 환우들을 위한 모발 기증에 대한 광고를 제작했거든요. ‘쓸모’와 ‘털 모(毛)’자를 이용한 언어유희가 통했나 봐요.

지현 대학생이 됐으니 어려운 책도 읽어보자는 취지로 만든 ‘강독반’도 있답니다. <순수 이성 비판>이라는 너무 어려운 책을 골라서 많은 친구들이 ‘강제로 독서하라는 의미로 강독반이냐’고 되묻기도 했지만요.

한얼 와, 학과 활동이 그렇게 다양하다니 정말 부러워요. 그에 비하면 우리 학교는 좀 더 학술적으로 파고드는 활동이 많아요. 철학연구소에서 여는 세미나에 참가하거나 국내외 유명한 철학 박사님들의 특별 강연회를 듣는 식이죠. 또 독일 브레멘 대학교와 학술 교류도 활발하게 하는 편이고요.

그것이 알고 싶다! 선배들의 ‘최애철(최고로 애정하는 철학자)’은 누구?

선교 양파남, 르네 데카르트요. 까도 까도 매력이 나와서 양파남이냐고요? 아니요, 그냥 까고 싶어서.(웃음) 농담이고요, 데카르트는 굉장히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에요. 인류 문명에 엄청난 철학적 발전을 이룩한 학자인데도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죠. 그의 철학 이론은 물론 인간적, 성격적인 면으로도 무척배울 점이 많다고 봐요.

한얼 전 프리드리히 니체를 좋아해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말했다>는 니체의 대표 저서죠. 니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을 통해 예술과 철학을 설명했어요. 간단히 말하면 둘은 빛과 그림자 같은 사이예요. 디오니소스는비극과 음악, 아폴론은 서사문학과 그림이라고나 할까요. 예술 이론을 설명하는 니체의 문체 자체도 무척 예술적이어서 자연스레 니체에 빠지게 됐어요.

지현 20세기 프랑스 비평가이자 철학자 롤랑 바르트를 좋아해요. ‘아무거나 철학 광장’의 소논문을 준비하면서 만나게 된 철학자인데, 기호학과 구조학에 대해 연구한 학자예요. 사르트르 이후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죠. 저한테는 패션과 철학의 융합에 대해 연구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철학자라 가장 애정이 가요.

이쯤 되면 안 물어볼 수 없는 질문. 다들 졸업 후에는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한얼 막판에 이런 당황스러운 질문을.(웃음) 혹시 ‘인구론’이라는 말들어보셨나요? ‘인문계 졸업생의 90퍼센트는 논다’의 줄임말이래요. 취업이 어려운 인문계의 실상을 반영한 신조어죠. 그런데 제 생각은 달라요. 인문학, 특히 철학은 모든 학문의 뿌리잖아요. 철학을 공부한다는 건 다른 어떤 학과생들보다 단단한 뿌리를 쥐고 있는거나 마찬가지예요. 멋지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은 월급을 많이 받을수 있는 대기업에 입사하고 싶어요. 철학이라는 학문을 직업적인 면에서 그대로 살리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지현 맞아요. 작년 12월에 한 회사의 인적자원개발부 실장님이 오셔서 철학과 기획 특강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그분도 철학 그 자체만으로 직업을 가지기는 힘들 거라고 인정하셨죠. 하지만 철학과에서 배운 논리적 사고방식은 그 어떤 분야에든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설명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좋아하는 패션 분야에 진지한 철학을 녹여내고 싶어요. 비주얼 머천다이저나 패션잡지 에디터가 목표예요.

선교 저는 철학 공부를 좀 더 깊게 하고 싶어요. 철학과로 대학원도 진학할 생각이고 제가 생각하는 철학 세계의 아이돌, 데카르트의 나라 프랑스로 유학도 갈 계획이에요. 프랑스어도 차근차근 배우고 있고요. 가능하다면 철학 교수가 되고 싶네요.

한얼 단국대 철학과는 신설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졸업생이 없지만 우리 학교는 많은 선배들이 정·재계에서 활약하고 있어요. 로스쿨에 들어가 법조인이 된 선배도 있고요. 연출가나 언론인이 되는 경우도 많아요. 특히 요즘은 고등학교에 철학이나 논리학을 배우는 교육과정이 많이 생겨서 교직 이수한 친구들이 교사의 길을 걷기도 한답니다.

마지막으로 철학과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한마디씩 부탁드려요.

한얼 고려대 철학과가 올해로 70년을 맞았어요. 앞으로 철학과 100년의 역사를 함께하고픈 후배님들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환영해요.

선교 몸만 오세요. 나머지는 철학과가 다 만들어줄 거예요.

지현 우리들의 뜨거운 철학 사랑이 친구들에게도 느껴졌나요? 느꼈다면 응답하라, 후배님들!

주목! THE 특별한 철학과

철학과 선배들이 추천해요! 믿고 볼만한 영화와 도서

캠퍼스씨네21 MODU 뉴스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