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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동화책 속 어른들은 어디에 있을까

등록 2005-10-23 18:30수정 2005-10-23 18:30

아낌없이 주는 나무
“세상에, 뭐 그런 아줌마가 다 있지?”

중학생인 딸아이가 어이없어 하며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였다. 빈 자리가 하나 생겼는데, 오십대로 보이는 어떤 아주머니가 괴성까지 지르며 몇 미터 앞에서 몸을 던져 앉더란다. 딸아이는 그 ‘무식하고 뻔뻔한 아줌마’를 마음껏 흉보았지만, 나는 그 나이에 이르도록 좌석을 향해 맹렬히 돌진해야 하는 그녀의 삶이 가슴 아렸다.

어렸을 때 나 역시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데서나 큰 소리로 떠들고, 남의 집 방문을 아무 때나 불쑥 열고 들어오던 사람들. 툭하면 새치기를 하고, 심심찮게 머리채를 잡고 싸우고, 장날마다 버스에 먼저 타려고 그악스럽게 경쟁하던 사람들. 세상을 미처 알기 전에 책을 너무 많이 읽어버린 내 눈에, ‘그들’은 낯설고 이상하였다. 동화책 속 어른들은 진실하고 성숙하며 너그러웠지만 현실 어디에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

서른이 훨씬 넘어서야 깨달았다. 동화책 속 사람들을 바깥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어야 했다. 책 속의 성숙한 어른은, 어린이가 꾸준한 내면의 성장과정을 거쳐 도달하고 체현해야 할 내적 인격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사회학자 김동춘의 글에서 또 다른 답을 찾았다. “(전쟁경험으로) 우리 사회에는 염치와 도덕이 없으며, 이웃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메말랐다. 말 그대로 전쟁 상황, 피난 상황의 연속이다. 전투는 끝났으나 전쟁은 정치사회 질서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재생산 되었다.”

그랬다. 전투는 끝났지만 전쟁 상황, 피난 상황이 지속되던 때에 나는 자랐던 것이다. 그 때도 어떤 사람들은 이미 전쟁을 까마득히 잊었겠지만, 내가 만난 대부분의 이웃은 살기 위해 악착같이 기차에 매달려야 했던 피난민의 흔적을 갖고 있었다. 일상적 생존 전쟁을 치르느라, 교양은 커녕 염치와 예의를 차릴 틈조차 도무지 가질 수 없었던 삶들. 사실 그들은 ‘그들’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볼’ 줄만 알았지, 그 속에서 나고 자란 내가 바로 ‘그들’인 줄 오랫동안 몰랐다….

딸아이가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지하철의 그 아주머니도 그런 삶을 원한 적이 없을 거라는 내 말을. 누군가 욕심을 부리고 잘못을 저지르면, 그 대가를 다른 힘없는 이들이 치러야 한다는 말의 뜻을…. 어쨌든 딸아이에게는 그 애 몫의 자랄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선안나/동화 작가 sun@iic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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