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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집밖에서 방황하는 십대, 음식·마음 나누는 ‘거리의 학교들’

등록 2016-07-25 20:19수정 2016-07-25 20:27

청소년 위한 ‘맞춤 쉼터’

여름, 거리에서 방황하는 청소년 늘어
먹을거리·상담 등 제공하는 곳 있어

주먹밥·떡볶이 등 음식 나눠주고
진로·연애 등 마음속 고민상담 도와
파출소가 문화예술교육 공간으로 변신
안전교육 비롯해 심리치유 돕기도
지난 8일 서울 관악구 은천교 공터 ‘봉천지역청소년터’를 찾은 학생들이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8일 서울 관악구 은천교 공터 ‘봉천지역청소년터’를 찾은 학생들이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밤 9시. 해는 떨어졌지만 여전히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은천교 옆 바닥분수가 설치된 공터에 천막과 그늘막 텐트 하나가 세워졌다. 천막 안에는 중고생들이 왁자지껄 먹을거리를 입에 넣으며 한창 수다를 떨고 있다. 맞은편 벤치 앞 테이블에는 어른 몇몇이 땀을 뻘뻘 흘리며 수박과일화채·떡볶이·순대·주먹밥·샌드위치 등 갖가지 음식을 나눠줬다. 지난 8일 찾아간 봉천지역청소년터(이하 봉지터)의 모습이다.

지난 8일 서울 관악구 은천교 공터 ‘봉천지역청소년터’를 찾은 학생들이 미니당구 게임을 하고 있다.
지난 8일 서울 관악구 은천교 공터 ‘봉천지역청소년터’를 찾은 학생들이 미니당구 게임을 하고 있다.

■ 격주 금요일 열리는 관악 지역 ‘봉지터’

관악지역아동센터(이하 센터)는 지난달부터 격주 금요일 아이들을 위해 무료로 음식을 만들어주고 있다. 바로 옆 텐트는 타로카드로 상담을 하는 곳이다. 대기자 명단이 있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인기다. 진로나 연애 관련한 상담이 많다. 벤치 옆에는 미니농구대와 미니당구대, 축구게임판, 다트게임판 등 아이들이 즐길 거리도 갖췄다.

여름방학을 맞아 길거리를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가출 청소년 가운데 쉼터를 찾는 이들도 있지만 최근 조사를 보면 이 가운데 절반이 무단퇴소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쉼터 입소할 때 부모 동의를 받아야 하고 내부 규율이 엄격해 아이들이 꺼리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성매매나 절도 등 범죄와 연루되는 일도 늘고 있다.

격주 금요일 저녁 8시부터 11시까지 운영하는 봉지터는 월평균 100여명의 학생이 다녀간다. 친구들 손에 이끌려, 페이스북 등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아이들이다. 일단 처음 방문한 아이들은 이름과 연락처, 학교 등을 적는다. 방문자 수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일정을 공지해주기 위해서다. 센터의 정정일 팀장은 “야자나 학원 끝나고 온 아이들도 있고 길거리를 떠돌다 오기도 한다. 돈이 없는 아이들은 기껏해야 놀이터, 학교 운동장, 길거리를 싸돌아다닌다. 집보다 자유로울 순 있지만 얼마든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센터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고민 상담을 해주려고 이 사업을 시작했다. 쿠폰 카드를 만들어 올 때마다 도장을 찍어주고 여러 번 방문하면 선물도 준다. 아이들과 지속해서 관계를 맺고 직접 도움을 주려는 목적에서다.

처음엔 쭈뼛거리던 아이들도 정 팀장이 다가가 말을 걸자 이내 학교나 연애 등 고민거리를 털어놨다. 정 팀장은 “아이들은 처음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는다. 집 나왔다고 바로 청소년쉼터에 가라고 하면 ‘여기도 결국 이런 데야. 선입견으로 날 바라보고 가두려 하는구나’라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며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 ‘이렇게 지내기 힘들지 않니. 좀 더 나은 방향이 뭘까 함께 고민해보자’며 자연스럽게 다가간다”고 했다.

봉지터는 가끔 “주민들이 쉬는 공간에서 뭐 하는 거냐”는 항의도 받았다. 하지만 직접 도움을 주고자 발 벗고 나선 주민도 있었다. 길 맞은편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사오는데 사장님은 가격보다 많은 양을 줬다. 학교를 안 가는 아이들이 분식집에 오면 봉지터에 가보라고 부추기기도 했다. 공터 옆 인테리어 가게 사장님은 무료로 전기를 끌어다 쓰도록 해줬다.

이날 두 번째 방문한다는 고1 여학생은 “이번주 화요일 이후 학교에 안 갔다. 아프기도 했고 공부하기 싫었다. 부모님이 뭐라고 하지만 전에도 가끔 학교를 안 나갔다”고 했다. “이곳은 먹을 것을 주는 게 제일 좋다. 오늘 타로카드로 진로 상담도 했다. 간호사가 되고 싶은데 주변에서 힘들다고 말려서 고민이었다. 선생님이 가족과 친구 말에 흔들리지 말고 내 꿈에 집중해 노력하라고 하더라.”

직업전문학교에 다니고 있는 박정훈(고3)군은 “노래방, 피시방 등 갈 곳은 많지만 다 돈이 들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 여기는 그냥 몸만 와서 친구들이랑 먹고 이야기하니까 좋다. 잔소리도 안 하고 편해서 학교 친구랑 여자친구도 데려왔다”고 했다.

지난 15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문화파출소 강북’을 찾은 학생들이 임채현 치안센터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문화파출소 강북’을 찾은 학생들이 임채현 치안센터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 동네 사랑방으로 바뀐 ‘수유6치안센터’

마을 내 안 쓰던 공간을 휴식처로 탈바꿈한 곳도 있다. 지난달 문을 연 서울 강북구 수유동 소재 ‘문화파출소 강북’은 전국 최초로 치안센터를 리모델링해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문화체육관광부, 경찰서와 함께 운영 중이며 기존의 치안센터 구실을 유지한 채 의경 숙소로 쓰다 비워둔 공간 등을 지역 주민에게 개방했다.

수유6치안센터는 이전까지 주민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폐쇄적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동네 사랑방’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건물 전면의 벽을 통유리로 바꿔 사람들이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고 1층 한쪽에는 피아노도 들여놨다. 아이들이 등교 전후에 들러 자유롭게 피아노 연습을 하고 간다. 2층 공간은 다락방처럼 아늑하게 만들거나 바닥에 매트를 깔아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했다.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아이들이 책을 보거나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게 편한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곳에는 치안센터장과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주민들과 소통하는 구실을 하는 문화보안관 2명이 상주하고 있다. 학교전담경찰관을 3년 동안 했던 임채현 치안센터장은 사비로 컵라면도 사놨다. “전보다 업무량은 많아졌지만 접근성이 높아져 사람들이 드나드니 분위기가 밝아져 좋다. 초등학생이 찾아와 ‘친구를 때렸는데 학교폭력 맞냐’고 묻고, 고등학생은 ‘교내 흡연 문제 때문에 학교를 잘릴 거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털어놓기도 한다.”

그는 “지체장애 아동이 인지를 못 하고 친구에게 성적인 장난을 심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연결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문화파출소는 위기 청소년이 오면 상담 프로그램을 연계해 도움을 받게 하는 일도 한다. 범죄 피해자나 경찰관을 위한 심리치유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보늬 문화보안관은 “방학 중에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동네의 안전한 곳을 찾아보는 프로그램과, 경찰관과 강사가 오감자극 놀이극을 진행하며 실제 위험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유아 대상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소년뿐 아니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있다. 올해 강북을 포함해 문화파출소 10곳이 전국에 문을 열 예정이다.

지난 15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문화파출소 강북’을 찾은 학생들이 1층 휴게공간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문화파출소 강북’을 찾은 학생들이 1층 휴게공간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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