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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빈 교실, 누구에게나 열린 특별한 수업으로 채워요

등록 2016-09-12 20:21수정 2016-09-12 21:06

유휴공간 활용하는 학교들
학령기 인구 줄어듦에 따라
학교마다 유휴교실도 늘어나

쓸모없는 공간 전용교실로 바꿔
평생교육 프로그램 운영하기도
학부모 자녀 학교서 도예수업 듣고
지역주민 자전거·바이크 정비 등 배워
지난 6일 서울 명일중에서 열린 도예교실에서 참가자들이 작품을 빚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명일중에서 열린 도예교실에서 참가자들이 작품을 빚고 있다.

“사춘기 아들과는 학교에서 마주쳐도 모른 척하기로 했어요.(웃음) 초등학생 때였다면 먼저 찾아와 반겼을 텐데. 그래도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의 위안이 되고 좋아요.”

‘중2 아들’을 둔 김영은(42)씨는 요즘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이 자신도 자기를 몰라 길을 찾아가는 시기인 거 같아요. 순간순간 별거 아닌 거에 울고 웃으며 기복이 심해져서 저도 그런 아이에게 맞추기가 힘드네요.”

그런 김씨에게 학교에서 진행하는 도예교실은 힐링이 된다. 그는 “흙을 만지면서 잡념을 떨치고 이곳에서 같은 반 학부모를 만나 아들에게 전혀 들을 수 없는 학교 소식도 알게 돼 막힌 귀가 뚫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서울 명일중은 지난해부터 도예교실을 열고 있다. 버려진 창고와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 쓰는 미술실을 ‘전용교실’로 만들었다. 싱크대와 전시할 공간도 마련하고 물레와 가마 시설까지 갖췄다. 학부모들은 도자기를 굽기 위해 온종일 돌리는 가마의 전기료가 비싼 탓에 가마소성비만 내고 참여하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성수공업고에서 열린 바이크정비교실에서 정차영 교사가 오토바이 엔진을 떼서 원리와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성수공업고에서 열린 바이크정비교실에서 정차영 교사가 오토바이 엔진을 떼서 원리와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이색 공간으로 변신시켜 주민에게 개방

학령기 인구가 감소하면서 학교 내 유휴교실이 늘고 있다. 학생 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일부 학교들은 학교 자체를 통폐합하거나 인구가 유입되는 신도시로 아예 이전하기도 한다. 이 상황에서 버려진 빈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하반기부터 산하 11개 교육지원청 소속 학교 한곳에 ‘평생교육 전용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곳인 명일중은 한때 60학급까지 운영했지만 현재는 특수학급 2학급을 포함해 26학급으로 줄었다. 빈 교실은 교과별 다목적실과 동아리실로 활용 중이다.

평생교육 전용교실로 운영하는 도예교실은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하지만 참가자 대부분이 학부모다. 강사인 유승현씨도 이 학교 학부모다. “작년에 재능기부로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참가자가 세 명뿐이었어요. 하지만 입소문을 타고 올해는 대기자가 있을 정도가 됐어요.”

유씨는 “나를 포함해 사춘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라 자녀와 소통이 안돼 답답해했다. 학교 공간에 편하게 찾아와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고 졸업한 선배 엄마들에게 조언을 들으며 마음이 풀릴 때가 있다”고 했다.

1년 과정의 도예교실에서 한 사람당 보통 20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일부 학부모는 지자체에서 하는 전시회에 작품을 내거나 하남미술대전 등에서 입선하기도 했다. 경력이 단절됐던 한 학부모는 관련 분야로 창업까지 했다. 점토 자체가 공격성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서 한창 감정을 분출하고 표현하는 시기의 아이들에게 좋지만 학부모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잊고 있었던 감성을 깨우고 작품을 만들면서 자신감을 키우는 계기가 된 셈이다.

명일중은 도예교실과 함께 유휴교실에 스크린 사격장도 만들었다. 클레이를 정조준해 차분하게 총을 쏘는 활동이 아이들 집중력을 높이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교사들이 직접 스크린 사격장에 가본 뒤 결정했다. 김명숙 교장은 “비가 오거나 날이 너무 더운 날 그곳을 실내 체육 활동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학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격대회도 열었다. 특히 아빠들이 아이들과 친해지는 기회가 됐다며 만족해했다”고 했다. 올해 대회는 교직원, 부모와 자녀, 일반 주민으로 참가 대상을 넓혔다.

같은 날 성수공업고에서 열린 자전거정비교실에서 한영욱 교사가 참가자들에게 자전거 부품을 교체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같은 날 성수공업고에서 열린 자전거정비교실에서 한영욱 교사가 참가자들에게 자전거 부품을 교체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특성화고만의 전문화된 교육 진행해 인기

보통 학부모 대상 교육은 자녀와의 소통을 강조하는 대화법이나 인문학 위주가 많다. 취미 과정도 운영하지만 대부분 초급 수준이거나 단기간에 끝난다. 이에 반해 전용교실은 학부모뿐 아니라 일반 주민까지 대상을 확대했고 특성화고의 경우 학생들이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 전문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오토바이의 각 부분이 어떤 구실을 하는지, 엔진 오일과 브레이크 오일을 갈고 배터리 교환하는 법 등 직접 정비할 수 있는 부분 위주로 알려드릴게요.” 지난 3일 서울 성동구 성수공업고에서 열린 바이크정비교실. 에코바이크과 정차영 교사가 오토바이 엔진을 떼서 원리와 구조를 설명했다. 바로 옆 책상 위에는 크루저, 투어러, 레플리카 등 오토바이의 종류와 배기량, 압축비, 노킹 등 생소한 용어를 정리한 자료가 놓여 있었다.

참가자들은 20~5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오토바이와 관련한 생업에 있는 사람들이 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모두 취미로 오토바이를 타는 이들이었다. 정 교사의 시범이 끝난 뒤 모둠을 나눠 직접 엔진을 분해하고 조립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스무살 때부터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해 현재 세 대를 보유하고 있는 오토바이 마니아 김효찬(33)씨는 “실제 현업에서 정비하는 분이 와서 알려주는 시간도 있다고 한다. 샵에 가면 공임이 많이 드는데 배터리나 냉각수, 스페어타이어 교체 등 혼자 정비할 수 있는 부분을 배울 수 있다”며 “평생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해봤자 컴퓨터 워드 이런 것만 알려주는 줄 알았는데 전문화된 내용을 알게 돼 좋다”고 말했다.

실제 이 학교의 에코바이크과는 전국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통틀어 유일한 학과다. 바로 옆 공간에서 자전거 정비교실을 운영하는 한영욱 교사는 “특성화고이다 보니 실습기자재가 잘 갖춰져 있다. 방학이나 주말, 방과 후 등에 유휴공간인 이 시설을 주민들에게 개방해 교육장소로 활용하고 직업교육까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며 “6개월에서 1년 과정을 제대로 배우면 재취업이나 창업까지 가능한 교육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교육 프로그램은 올해 기초교실을 시작으로 전기·전자 분야까지 다루며 3년 과정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성동구민이 우선 대상이지만 20명 정원이 다 차지 않을 경우 다른 지역 거주자도 참여할 수 있다. 한 교사는 “참가자 모집을 위해 자전거, 바이크 동호회 카페에 글을 올렸는데 일주일은커녕 하루 만에 마감이 됐다. 이런 특수 분야 교육을 배우는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교사는 실제 사설학원에 가서 비슷한 과정을 배울 경우 50만원에서 단계별 코스 전체는 200만원 가까이 든다고 했다.

서대문구에서 온 박대용씨는 평소 자전거에 관심이 많아 자원봉사로 지역 청소년들 대상으로 자전거 교실을 운영했다. 박씨는 “학생들에게 안전법규나 자전거도로 이용방법 등을 알려주고 한 달에 한 번 한강변에 나가 함께 쓰레기를 주웠다. 내가 자전거 정비까지 체계적으로 배워서 학생뿐 아니라 주민들을 대상으로 알려주고 싶어 신청했다. 이 학교처럼 문턱을 낮춰 주민들에게 유익한 교육을 하는 곳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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