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교사 강아무개(35)씨는 이달 초 교직원 회의 때 교무실에서 보험상품 설명회를 들었다. 교사가 업무 중 법적 분쟁에 휘말렸을 때 변호사 선임료 등 소송 비용을 보장해주는 보험상품에 관한 내용이었다. 홍보 책자에는 “학교폭력으로 자살한 학생의 학부모가 교사에게 관리소홀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을 때 손해배상액 최대 3000만원까지 보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보험사 직원은 “학부모들이 작은 학교폭력 사건도 법적으로 처리하려고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법적 분쟁에 선생님들도 대비하셔야 한다”며 “한 달에 1만원이면 된다”고 가입을 권유했다. 강씨는 “학교폭력을 어떻게 교육적으로 해결할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법적 분쟁이 잦은 시대가 왔으니 자비를 들여 자신을 보호하라는 설명을 교무실에서 들어야 한다니 교사로서 사기와 자존심이 꺾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고교 교사 조아무개(44)씨도 얼마 전 인터넷 서핑을 하다 이 보험상품의 홍보 웹페이지를 접했다. 조씨는 “학교폭력 사건이 났을 때 ‘쉽게 합의하지 말고 법적으로 사건화하면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학교 전문 브로커가 있다고 들었다. 교사 입장에서는 이런 보험상품까지 나온 게 씁쓸하면서도, 이게 요즘 현실이니까 ‘나도 가입해야 하나’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교원공제회의 자회사 더케이손해보험은 지난 7월 말 교직원이 업무 중 사고, 학교폭력 사건, 교권침해 사건 등으로 인해 민사·행정·형사 소송에 휘말릴 경우, 관련 비용과 형사상 벌금을 지원하는 교직원 법률비용 보험상품을 출시했다. 출시 뒤 두달간 500여명의 교사가 가입했다고 보험사 쪽은 밝혔다. 보험사 관계자는 “원래 다른 상품에 법률비용 보장만 특약으로 운영했었는데, 이를 찾는 교사분들이 많아 독립된 상품으로 만들었다”며 “초중고 교장협의회 행사에서 상품 안내를 원하시는 교장 선생님들에게 학교 방문 설명회 신청서를 받았는데, 참가한 500명 중 400명 이상이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학교폭력 신고로 열리는 초·중·고교의 학교폭력자치위원회 조처에 불복해서 시도교육청의 징계조정위원회나 시도지역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한 건수는 764건(2013년)-901건(2014년)-979건(2015년)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소송 전 단계인 재심 청구 건수가 늘고 있어, 재심 이후 진행되는 소송도 함께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석진 교총 교권국장은 “피해자가 학교를 상대로 학교폭력에 제대로 대처했는지 소송하는 경우가 많아, 피고가 된 학교장이 교총에 법률비용 상담을 문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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