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종로구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 사무실에서 (왼쪽부터) 최서현 사무국장, 강건 회원, 강재현 운영위원을 만났다.
“지금 학교에 대통령 하야하라고 난리가 났다.”
지난달 25일 회원 130명 규모의 청소년단체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은 11월3일 ‘학생의 날’ 행사 준비를 위해 서울 종로구에 있는 단체 사무실에 모였다. 하지만 모임의 화두는 자연스레 ‘최순실 게이트’로 집중됐다. 서로 학교 현장에서 비판 목소리가 얼마나 뜨거운지를 공유했고, 이런 의견을 거리에서 행동으로 표출하기로 했다. 이 단체 청소년 50여명은 지난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차 범국민행동’ 집회에 앞서 따로 집회를 열었다.
집회 중간에 광화문 일대를 돌며 작은 종이상자 15개로 즉석모금을 했다. 집회에 나오고 싶어하는 지방의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 차비 마련 모금’ 운동이었다. 7시간 만에 총 4857만6987원이 걷혔다. 누가 얼마를 냈는지 적을 새도 없이 모금함이 꽉 찼다. 부모님, 선생님 또래의 분들이 “좋은 데 쓰라”며 5만원짜리 지폐를 마구 넣어준 것이다. 외국 돈도 있었다.
지난 8일 단체 사무실에서 만난 회원 강건(18)군, 운영위원 강재현(19)씨, 사무국장 최서현(26)씨는 “사회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거리로 나온 청소년들을 시민들이 이렇게 지지해준 것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수능을 일주일 앞둔 고3인 강건군은 “며칠 전 학교 급식실 계단에 시국선언 대자보를 붙였는데, 학생들이 이런 목소리 내는 일을 안 좋아하시던 선생님도 어깨를 툭치며 ‘너가 썼더라?’하고 웃어주셨다”며 “평소 집회에 나가는 저에게 ‘그런 건 대학생 가서 하지’라고 말하던 친구도 ‘수능 끝나면 나도 (집회에) 갈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강재현씨는 “고3인 동생의 학교에선 급식을 먹을 때 뉴스를 틀어놓고 먹는다고 한다. 누가 ‘배고파요, 급식 더 주세요’ 하면 ‘정유라야? 더 받게?’ 이렇게 되받아치는 게 유행어라고 한다”며 “정치적 농담이 유행어가 되는 것은 평범한 학생들도 분노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두발 자유화, 선거연령 인하 등 각종 청소년 의제와 더불어 국정 교과서 반대, 일본 ‘위안부’ 피해자 관련 한일협약 반대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은 기존의 것과 다르다고 한다.
최서현 사무국장은 “특정 정책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체계가 무너졌다고 인식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청소년들 입에서 ‘나라가 망한 것 같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위기감을 느낀다’는 말들이 나온다”고 전했다. 강건군은 “열심히 노력해서 대학에 잘 가고,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을 해도 무슨 의미일까.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하는 나라에서 열심히 살면 뭐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우리의 목소리를 내서 더 좋은 나라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 강재현씨는 “고3 수험생들은 특히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입학과 학점 특혜 의혹에 대해 분노하다가 점차 최순실 게이트 전반과 현 국가사회 체계의 부조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더라”며 “청소년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정의와 상식으로 판단하는 집단인데, 이들이 보기에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20여개 청소년 단체와 함께 12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청소년시국대회’를 열 예정이다. 5일 거리에서 모금한 돈으로 이 집회에 참가하고 싶은 지방 청소년들의 상경 비용을 보태준다. 40명 이상이 1인당 참가비 9천원을 내고 신청하면 나머지 버스 대절비를 대주는 방식이다. 10일 현재 전국 각 학교 학생회, 동아리, 학급 등 단위로 700여명이 신청한 상태다.
글·사진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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