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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교는 상시적 갈등상황…‘사건’ 아닌 ‘교육’으로 푸는 움직임

등록 2016-11-22 05:01수정 2016-11-22 10:45

학폭위 전후 ‘회복적 대화모임’ 여는 학교들
가해자-피해자 넘어 화해와 관계회복이 목표
교사들 “교육적 해결 재량권 더 있었으면…”
경기 고양시 덕양중학교 학생들과 김영식 선생님(가운데)이 지난 8일 오후 학교 상담실에서 학생들끼리 갈등, 분쟁이 일어났다는 가정하에 역할놀이 ‘회복적 대화모임’을 하고 있다. (사진에 나오는 학생들은 학교폭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고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경기 고양시 덕양중학교 학생들과 김영식 선생님(가운데)이 지난 8일 오후 학교 상담실에서 학생들끼리 갈등, 분쟁이 일어났다는 가정하에 역할놀이 ‘회복적 대화모임’을 하고 있다. (사진에 나오는 학생들은 학교폭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고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8일 오후 경기 고양 덕양중학교 안에 있는 ‘청개구리방’에서는 김영식 안전생활인권부장(옛 학생부) 교사와 1학년 지용이(가명)와 경선이(가명)가 함께 둘러앉았다. 3일 전 지용이네 반에 놀러 간 경선이가 쉬는 시간을 마치는 종소리를 듣고도 가지 않자, 지용이가 경선이에게 “종 쳤잖아, 나가”라며 큰소리를 쳤다. 결국 말싸움으로 번졌다.

사실 경선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이 동네에 이사 온 뒤 ‘왕따’를 당한 적이 있어 다른 학생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일부러 말을 거칠게 하는 편이다. 중학생이 된 뒤 한 차례 학교폭력 사건도 있어 경선이에 대한 안 좋은 평판이 전 학년에 퍼진 상황이다. 경선이 스스로 이 평판을 잘 알기에, 지용이로부터 들은 큰소리가 유독 서러웠던 것이다.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요?”(김영식 교사)

“왜 저한테만 소리를 질렀는지 억울하고,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창피하고 쫓겨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경선)

“지용이는 무엇을 들었나요?”(김영식 교사)

“경선이는 억울하고 쫓겨나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지용)

“지용이가 말한 것이 맞나요?”(김영식 교사)

“네, 맞습니다.”(경선)

이들은 1시간 동안 대화하며 당시 한 말들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당시 자신의 감정이 왜 상했으며, 앞으로 서로에게 부탁받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털어놨다. 또 자신이 상대방에게 지킬 행동을 약속했다. 대화 중간마다 상대가 말한 내용과 자신이 들은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서로의 말을 서로 다르게 인식해 오해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다. 김 교사는 “드러난 사건은 말다툼이지만 이때 개입하지 않으면 학생들 사이에 경선이에 대한 ‘뒷담화’가 돌고, 이어서 ‘카톡왕따’, ‘페북 저격글’ 단계로 간 뒤 실제 따돌림과 폭행이 오가는 심각한 ‘학교폭력’ 상황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날 대화는 김 교사가 평소 진행하는 ‘회복적 대화모임’ 중 갈등 상황을 가정한 역할놀이다. 회복적 대화모임은 교사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을 중심으로 일부 교사들이 2012년 이후 시도하고 있는 교육운동이다. 학교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갈등 상황을 ‘가해자’, ‘피해자’라는 명칭 대신 ‘행위당사자’로 칭하고 교우 간 진정한 관계 회복을 위해 교육적으로 풀자는 것이다. 행위당사자는 물론 목격자, 학부모도 대화모임에 참여한다. 학생들끼리 ‘또래 중재’로도 활용한다. 실제 벌어진 일을 놓고 이루어지기도 하고, 상황을 설정해 역할놀이를 하기도 한다. 인천 신흥중은 2013년부터 매주 화요일을 ‘회복적 대화모임의 날’로 정했다. 올해부터 3명의 교사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구성 전과 후는 물론, 일상의 작은 다툼 상황에서도 이를 진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학교폭력법이 교육적 취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형사법적 방식과 구별되는 조정법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한다. 회복적 대화모임도 사법부의 조정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점차 교육 현장에 적용됐다. 학교폭력 화해분쟁갈등조정센터를 운영 중인 학교폭력예방재단 푸른나무청예단의 ‘전국 학교폭력실태조사 연구보고서’(2014)를 보면, ‘학교폭력 발생 시 조정·화해가 필요하다’는 항목에 전국의 초4~고2 5958명의 85.6%가 ‘필요하다’고 답하고 있다.

안보경 신흥중 회복생활안전부장(옛 학생부)은 “사춘기 남학생들이 모인 중·고등학교에서 친구끼리의 장난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학생 간의 관계 회복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해 지속성·고의성·심각성이 없는 경우 당사자와 학부모의 동의하에 학교가 학폭위가 아닌 교육적 방식으로 풀 수 있도록 현행법이 보장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 관련 기사 : ‘화해’ 없는 처벌, ‘교육’ 없는 학교…학교폭력예방법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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