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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필진]도토리묵과 선생님의 긴치마

등록 2005-11-08 14:55수정 2005-11-08 15:14

그때만 해도 추호의 의심이나 주저함 없이 당연히‘선생님’은 그저 평범한 중생들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임을 인정하고 싶었고 또한 그랬어야 했지요. 게다가 자식의 선생님이면 곧 부모의 선생님이기도 했던 시절을 살지 않았습니까? 멍청한듯 순수하게 하늘보고 고맙게 땅을 밟으며 감사할 줄 알았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아이들이야 고등교육의 혜택을 당당하게 받은 부모 밑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라는 데다가 온갖 대중 매체들의 영향으로 영악해져 아직은 신비(?)스럽게 남아 있었으면 하는 영역들마저 다 알아버리고 만 듯합니다.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붙잡고 싶어도 역부족을 인정하면서 시류에 그냥 휩쓸려 내려가고 있는 모습들이.

세월이 깨끗했고 천진무구 그 자체였던 오래 전 초등학교 1학년 시절, 학교가 아닌 댁에서 우연히 뵐 수 있었던 선생님 모습 때문에 고이 간직해왔던 환상이 신비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던 충격에 가까운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존경심이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먹고살기 바쁜 엄마껜 언감생심 바랄 수조차 없었기에 언제나 단아하고 단정한 양장차림의 특히 무릎을 덮을락 말락하던 스커트가 어울리셨던 선생님은 무조건 선망의 대상이었고 딴 세상 사람이었음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선생님 모습이셨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이랍니까? 할머니가 정성껏 쑤어주신 도토리묵을, 근처에 사시던 큰아들 녀석의 담임 선생님 몫이라며 감사히 챙기신 후 이 집 저 집 정겹게 나누시던 엄마께서 “이거 선생님 댁에 좀 갖다드리거라” 하셨어요. 진정 감사한 마음의 멋진 촌지(寸志)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조심스레 선생님 댁 현관에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선생님! 선생님!”을 불렀고 문을 여시며 반갑게 맞아 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그런데 내 앞에 서 계신 선생님의 모습이라니. 엄마가 늘 입으셨던, 선생님은 전혀 입어선 알 될 것 같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긴치마를 입고 계신 게 아닌가. 이런 모습에 너무 놀라 손에 들었던 도토리묵을 도대체 어떻게 선생님께 드리고 집에 왔는 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문제를 머리 속에 담고서 해결하지 못해 정신없어 했던 순수한 충격이라니.

“어! 선생님도 우리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만 입는 줄 알았던 긴치마를 입으시네!!!”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과 전혀 똑같으셨던 선생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는 어안이 벙벙했던,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그 수수께끼를 수 십 년 흐른 후에야 비로소 깨달으며 빙그레 혼자 웃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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