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경기도 성남시 가천대학교 예음홀에서 ‘2018학년도 수시 적성고사 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설명회에는 수험생 및 학부모 1300여명이 몰렸다. 가천대 제공
“솔직히 고등학교 들어와서 많이 놀았어요. 친구들이 동아리 만들고 활동하면서 학생부에 한 줄씩 채워갈 때도 아무 관심이 없었죠. 이제야 대학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 ‘학종’으로는 힘들고 수능은 어렵고…. 진짜 막막해요.”
내신 5등급이라는 경기 ㅎ고등학교 3학년 정아무개군의 이야기다. 정군은 지난 1일 ‘6월 모의평가’(이하 모평)를 치른 뒤 고민이 많다. 대학 입시의 대세는 내신 성적과 진로에 맞는 다양한 비교과 활동 등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이라는데 정군의 학교생활기록부는 몇 장 되지 않는다. 정시를 준비하기에도 공부량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의욕이 떨어졌다. 학교 선생님들 역시 내신 4~6등급인 정군의 입시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입시 정보를 얻고자 설명회를 찾아봤지만 대부분 1~2등급 학생을 위한 상위권 설명회뿐이었다.
중하위권 학생 ‘취향 저격’하는 ‘쉬운 수능’
최근 내신 중하위권 수험생 대상의 ‘적성고사 전형’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6일 경기도 성남에 있는 가천대학교에서 열린 ‘2018학년도 수시 적성고사 설명회’에는 학생 및 학부모 1300여명이 몰렸다. 사전신청 접수를 10분 만에 마감할 정도였다. 전국 수험생 60만명 가운데 20만명이 넘는 중하위권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입시 설명회가 그만큼 적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보통 일반고 4~6등급 학생들은 교과·비교과 등 관리가 부족해 수시 ‘학종’ 전형에서 소외되기 쉽다. 진학 지도 교사들도 이들에게 전문대학 지원 및 수능 정시를 권하는 편이다. 적성고사는 수능과 유사하지만 응용 문제가 적어 ‘쉬운 수능’으로 불리는 시험이다. 국어·영어·수학 과목으로 이루어져 있고 세 과목 통틀어 40~60개 문제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평균 70점을 기록하면 합격 가능성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이비에스(EBS) 수능완성·수능특강’ 등과 연계 출제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도 적다. 교과별 기본 공식 및 개념만 숙지하면 합격할 수 있어, 중하위권 학생들한테는 ‘역전의 기회’라고 불리기도 한다.
2018학년도에는 가천대, 을지대, 고려대(세종) 등 12개 대학에서 적성고사 전형으로 4882명을 선발한다. 소명여고 오수석 교사는 “국어, 영어, 수학 등 세 과목의 교과 기본 개념을 충실히 다지면 중하위권 학생들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전형”이라고 추천했다.
가천대, 고려대(세종) 등에서 대규모 모집
2018학년도 수시모집에서 적성고사를 실시하는 대학은 가천대, 고려대(세종), 삼육대, 서경대, 성결대, 수원대, 을지대(성남·대전), 한국산업기술대, 한신대, 홍익대(세종), 한성대, 평택대 등 총 12개 대학이다. 이 가운데 가천대는 적성고사 전형으로만 1010명을 선발하고, 수원대 575명, 고려대(세종)가 473명을 뽑는다. 한성대와 평택대는 올해 적성고사 전형을 신설해 각각 363명, 86명을 뽑는다. 고려대(세종), 홍익대(세종)를 제외하고는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없다. 대학별 적성고사 반영 비율은 학생부 60%, 적성고사 40%로 12개 대학이 모두 동일하다.
가천대 김일태 입학팀장은 “국어 20문항, 수학 20문항, 영어 10문항 등 총 50문항을 60분에 풀어야 하는 만큼 시간이 빠듯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만큼 교과 기본 개념을 숙지했는지, 상황 판단력이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며 “문제 유형은 ‘수능형’이고 기출문제가 공개되어 있다. 적성고사에서 당락이 갈리는 만큼 꾸준한 반복 학습이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학생부 실질반영비율은 대학마다 10% 안팎으로 낮기 때문에, 적성고사에서 한 문항만 더 맞혀도 부족한 내신 등급을 극복하는 효과가 있다. 인문계열의 경우 한 문항당 국어 4점, 수학 3점, 영어 3점이고 자연계는 보통 수학이 4점이다. 입시 전문가들은 “‘50문항 가운데 37문항 이상 맞히기’ 등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 뒤 학습하길 권한다”고 했다.
중기전략·목표 세우고 곧바로 준비해야
적성고사는 11월16일인 수능시험 전과 시험 후에 실시하는 대학 두 유형으로 나뉜다. 서경대, 가천대, 삼육대, 을지대, 한성대, 성결대는 수능시험 전인 9월 중순부터 10월 말에 걸쳐 전형을 한다. 한신대, 홍익대(세종), 평택대, 고려대(세종), 한국산업기술대는 11월19~26일에 적성고사를 본다. 비상교육 이치우 입시평가실장은 “6월 모평 등 지금까지 치른 모의고사 결과 등을 토대로 자신의 위치를 냉철하게 분석해, 9월부터 시작하는 적성고사 전형을 준비할 것인지 빨리 판단해야 한다”며 “3~5개월가량 남은 현시점에서 중기 전략을 세우고, 희망 대학 누리집에서 기출문제를 내려받아 풀어보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적성고사의 장점은 수능 정시라는 ‘큰 그림’까지 그려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수능과 준비 영역이 겹치기 때문에 적성고사를 준비하면서 ‘수능의 끈’도 놓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적성고사를 준비하고 있는 오남고등학교 3학년 임지섭군은 “부족한 내신 등급을 만회할 수 있다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두 달 전부터 매일 국어, 영어, 수학을 1시간씩 공부하는 등 기본기를 쌓고 있다”며 “‘노력하면 붙는 전형’이라는 생각이 들어 입시를 포기하지 않고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비교과 활동이 다양하지 않아서 ‘학종’은 저한테 조금 먼 얘기였거든요. 적성고사는 과목 수, 시험 범위도 수능보다 적어서 기본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어요. 공부하다 보니 수능 정시도 대비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생각합니다.”
적성고사 난이도는 수능의 60~80%인데, 수학에서 4~5문항을 어렵게 출제해 변별력을 갖춘다. 하지만 교과서 속 기본 예제와 이비에스 수능완성, 수능특강 등 교재를 반복해서 풀면 충분히 만점도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오수석 교사는 “수학이 적성고사 전형의 당락을 좌우한다”며 “적성고사 대비 1단계는 교과 핵심개념·예제 숙지, 2단계는 수능특강 등 연계교재 활용”이라고 강조했다. “을지대와 홍익대(세종)는 영어 과목에 변별력을 두기 때문에 인문계열 학생들이 참고할 만합니다. 가천대와 을지대 보건계열은 내신 2.5~3.5등급 학생도 지원하는 만큼 더욱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겠죠.”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