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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성소수자라서…’ 벌점 받은 적 있습니다

등록 2017-09-04 21:35수정 2021-12-10 19:31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교육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월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교육 표준안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월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교육 표준안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혐오발언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반인권적으로 상대방의 존재를 비하하는 말을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교실에서 알려줘야 합니다.”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등학교 이윤승 교사의 말이다. 수학과 상업경제를 가르치는 이 교사의 수업은 특별하다.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교육이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이 교사는 평소 교실에서 조·종례, 재량 시간 등을 활용해 성소수자 인권 이야기, 교과서 속 성차별적인 묘사 장면 찾아보기 등의 활동을 아이들과 함께한다.

우리 사회 ‘소수자’에 방점 찍는 특별한 수업

이 교사는 10대 시절 사고로 하반신을 다쳐 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그 뒤로 소수자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는 “장애인으로 살아가기 시작하니 전에는 알지 못했던 ‘소수자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며 “학교 특유의 집단주의·군대문화로 성소수자 학생들은 움츠러들고 침묵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인권에도 반대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수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좋을까’ 등 인권 관련 주제를 꺼내면 학생들도 여러 의견을 내놓는다. 지난달에는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올해 이 축제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처음 참여한 것의 의미,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등 용어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이 학교 1학년 이지호양은 “교실에서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선생님들도 있지만, 이윤승 선생님의 수업을 통해 사회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했다. “성소수자도 우리 사회에서 세금 내고 함께 살아가는 시민이잖아요. 이런 수업을 통해 성소수자, 여성인권, 장애인 인권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아요.”

학교 안에서 상처받는 성소수자 많아

‘무지개 인권교육’과 인식개선 등 필요

“친구가 커밍아웃하면 어떨 것 같아?”

일상에서 ‘소수자성’ 질문하는 교실도

교사들 모임 꾸려 매뉴얼 제작 예정

‘혐오발언 들었을 때’ 법률상담도 시작

‘성소수자’ 이유로 교내 차별·배제 경험 많아

하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교실에서는 성소수자 혐오 분위기가 만연하다. 2015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청소년 성소수자 200명 가운데 98%가 교사나 또래 친구로부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학생에게 생활기록부 벌점을 주거나 강제 전학, 퇴학 등의 징계를 내리는 학교가 있는 사실도 실태조사에서 나타났다. 벌점·정학 등 징계를 부과하는 정책이 있다는 응답이 10명, 강제전학시키거나 퇴학시키는 교칙이 있다는 응답도 6명이었다. 학생들에게 동성애자로 추정되는 친구의 이름과 학년을 적어 내도록 하는 소위 ‘이반검열’이 있다는 응답도 4.5%를 차지했다.

경기도 소재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아무개양은 “수업 중 선생님들이 성소수자를 희화화하며 ‘게이와 레즈비언은 역겹다’, ‘트랜스젠더가 사람이냐’ 등 표현을 하는데,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에 큰 상처를 받는다”고 했다.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나 동성애 혐오로 인한 괴롭힘을 당해도 선생님에게는 말하지 않을 거라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에요. 부모님에게 ‘아우팅’(outing,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하거나 ‘그러다가 지옥 간다’는 말을 듣기 일쑤니까요.”

‘비하 발언 안 했나?’…인권 공부하는 교사들

이런 상황이지만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려는 움직임도 있다.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이하 샘)은 성소수자를 비롯해 학교 안팎의 인권 문제를 고민하며,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연대활동을 펼치고 있다.

샘에서 활동하고 있는 ‘달수’ 교사는 “초·중·고교 교사 10여명이 함께 교사 대상 인권연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스터디도 한다. 교실에서 만난 성소수자 학생 상담 사례와 경험, 고민 등을 나누고 있다”고 했다.

교사 대상 인권연수를 통해 ‘내 학생이 성소수자일 수도 있겠구나’라고 느끼면, 교사들의 관점이 순식간에 바뀌기도 한다. 달수 교사는 “‘내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 성소수자 학생은 없었을까, 내가 교실에서 그들을 비정상이라고 표현하며 비하하는 것이 교사로서 과연 교육적 신념에 맞는 건가’ 등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담을 요청하는 학생에게 여전히 ‘동성애는 치료할 수 있다’, ‘내가 같이 기도해주겠다’ 등 혐오를 기반으로 한 피드백을 주는 선생님들도 많죠. 성소수자 등 타인의 사랑을 찬성과 반대로 나눠 판단해주겠다는 건 너무 큰 오만 아닐까요.”

샘은 성소수자 학생 상담에 관한 교사용 가이드북도 제작할 계획이다. 오는 9일 오후 2시 서울시엔피오(NPO)지원센터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회 후원으로 ‘무지개를 만난 교사들, 특별한 초대의 자리’ 행사가 열린다. 샘과 함께 이 행사를 주최하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류은찬 사무국장은 “교실에서 성소수자 학생을 만났을 때 교사로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 등 교육 현장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자는 취지”라고 했다.

교육공동체 안에서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들었을 때 법률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도 생긴다. ‘띵동’에서 활동하는 송지은 변호사는 “혐오발언은 인권 침해의 범주에 들어간다. 성소수자 학생들이 어딘가에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어 가정·학교에서 고립되거나 심리적 우울감을 경험하기도 한다”며 “9월 말부터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법률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송 변호사는 “위클래스 상담센터 교사로부터 ‘동성애는 죄다’라는 식의 발언을 듣고 띵동에 제보하는 경우가 꽤 있다. 학교에서 차별·혐오발언을 들었을 때 ‘학생인권침해 구제신청’ 등 제도적인 절차를 이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띵동 차원에서 교육기관에 항의 공문이나 내용증명을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할 예정입니다. 법적인 다툼이라기보다는, 현재 있는 제도를 이용해 학교 문화 전반에 퍼져 있는 성소수자 혐오 인식을 조금씩 바꿔가보자는 취지입니다.”

외국에서는 법 통해 학교 내 혐오 대응

외국에서는 법과 제도를 통해 학교 내 성소수자 혐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영국 교육부는 ‘성소수자 혐오폭력’을 학교폭력의 한 종류로 규정하고 피해 학생을 위한 무료 전화상담실을 운영한다. 대만은 2003년 ‘젠더평등교육법’을 제정하고 학교 안에서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초등학교 성교육 교과서에 ‘동성 간에도 연인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의 성적 지향은 이성애·동성애·양성애 등 다양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교과서를 제작한 베이징사범대학 출판부는 ‘초중고교건강교육지도지침’과 ‘국제성교육기술지도강령’을 토대로 10년 가까운 모니터링 과정을 거쳐 개발한 교과서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도 정부 및 교육기관 차원에서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한다는 ‘선언적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혐오 발언은 '의견'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윤승 교사는 “미국의 경우 퀴어 퍼레이드에 뉴욕시 경찰청, 소방당국, 연방수사국(FBI) 등이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공무원도 자연스럽게 성소수자 시민과 함께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학교는 사회보다 느리게 바뀝니다. 인권 교육을 위한 교사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더욱 큰 틀에서 변화가 있어야 학교 분위기도 바뀌죠. 교실에서 오가는 메시지가 소수자에 대한 혐오여서는 안 됩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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