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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다

등록 2005-11-20 15:06수정 2005-11-20 15:06

경기도 고양시의 어느 고등학교. 제보자는 학부모.
경기도 고양시의 어느 고등학교. 제보자는 학부모.

토요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었다. 과음하지 않은 다음날이라면 오전 6시 15분에 알람을 듣고 일어난다. 6시 15분에 손석희 목소리를 들어서 좋기도 하지만, 알람을 꼭 정각이나 30분에 맞추는 그런 무의미한 기상 시간을 거부해보겠다는 뜻도 있고, 나름으로는 615남북정상회담의 의미와 정신을 되새기기 위한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기왕이면 일어나는 시간도 개인과 사회적 의미를 지니면 의욕도 강해진다.

여하튼 6시 15분. 세상 돌아가는 이런저런 내용을 알 수 있기도 하고, 우리 방송 매체에서 청취자들의 정신적 긴장을 유도할 수 있는 드문 진행자이기도 해서 교육방송의 영어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날마다 채널을 고정시킨다. 이 프로그램은 토요일엔 청취자들의 의견을 많이 들어 주는데, 오늘 우리 학교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얘기를 들었다.

시험 보고 성적을 매긴다. 도서관 좌석은 100석. 학생들의 경쟁을 유발하기 위해 100등까지만 도서관 전용석을 준다. 혹 빈자리가 있어도 101등은 앉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00등까지의 전용좌석 청소를 100등에 끼지 못하는 학생들이 해야 한다.

얼마나 기가 막히고 속이 뒤집했으면 이른 새벽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고발해야 했을까? 그러면서도 학교와 자녀를 정확하게 밝힐 수 없는 상황에 이르르면 분노와 좌절이 복합된 설명하기 힘든 낭패감을 느꼈을 것임을, 자식 새끼 키우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수용할 수 없는 현실이 도처에 수시로 일어나고 있는데,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왜 그냥 당하고만 있는 것일까? 학부모는 그런 만인공노할 반교육적 처사를 고발하고 학교를 징치하고 싶겠지만 그러지 않거나 못한다.

감히 그러지 못하는 것은 자녀가 당하게 될 불이익 때문이다. 어떤 수를 통해서라도 학교를 졸업해야 하고 졸업하면서 유리한 학력고지를 점해야 한국사회에서 생존하거나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당한 현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 부당한 현실에 편입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속으로만 썩히거나 일회적인 사건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학교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다. 최소한 교육 현장에서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넘을 수 없는 권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권력의 정점에는 교장이 있고, 교사들은 교장의 평가 대상이 되기 때문에 감히 학생들의 인권유린을 개선할 의욕을 낼 수 없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 학교의 교장들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정년을 보장 받는 성역이다. 교장 4년하다 정년이 많이 남아 있으면 다시 교육청에 들어가 몇 년 더 근무하고 나서 마지막 정년은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조직의 수장으로서 학교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지닌 교장은, 미안하지만 없다고 말해도 되는 수준이다. 어떻게 하면 더 큰 학교에 가서 정년을 끝낼까 하는 지극히 부정적인 처세만을 보여 줄 뿐이다. 이런 교장들이 교사들에게는 전제적 권력을 휘두른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교사는 보직을 주지 않으며, 승진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온갖 행사에 기관장 회의에 나다니면서 교육자로서의 존경은 혼자 다 받는다. 더욱 좌절감을 들게 하는 것은 그런 교장들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들은 희한하게 평정이 잘 나오고, 부당한 행정과 현실에 대해 비판의식을 발동하는 교사들에게는 승진의 기획을 완벽하게 박탈하고 만다. 교권은 교장에게만 있고 평교사에는 없다.

물론 이런 학교의 모순 구조를 혁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강한 교육적 열의와 신념, 그리고 아이들에 애정을 지닌 그 집단들이 전교조인 것이다. 그런데 전교조는 보수언론을 비롯해서 기득권 세력들에게 항상 불온한 집단으로 매도 당한다. 교장에게서 높은 점수를 포기하고 올바른 교육을 위해 현장의 모순을 제기하고 조직적으로 맞서지만 역부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100등 이내의 학생과 학부모들과 100등 밖의 학생 학부모들은 이해가 상반된다. 기왕의 유리한 지위를 점하기 위해 부당한 조치를 외면하거나 명분만 동조하고 개선하기 위한 실천의 대오에서는 한 발 빼고 만다.

학교는 사회의 반영이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학교 현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다. 혹 용 나도 그 용은 이미 개천을 떠나 개천 아닌 세력에 편입되고 마는 것이니, 개천에서 용 나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도 연대를 해야 개혁이 가능하다. 무능력하고 보신만 신경 쓰고 학생 인권에 관심 없는 교사들을 퇴출시키기 위해서라도, 지향점이 동일한 세력들이 연대해서 지향점 없거나 다른 세력들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드러난 표면적 현상과 쟁점만 보지 말고 학교에 대해 학교문화에 대해 정치한 분석이 필요한 것이다. 정밀한 학교 현실에 대한 분석 없이 싸잡아 교사를 매도하는 것은 오히려 의식 있는 교사들에게 좌절감을 줄 뿐이다. 그런 점에서 교원 평가 이대로 진행되면, 우리 교육 현장이 더욱 황폐화질 것임은, 불행하나 사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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