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쪼잔해서 참 행복해

등록 2005-11-20 17:49수정 2005-11-21 13:52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리 삐딱하게 차를 대놓고도 맘이 편하단 말이야? 오른쪽으로 10㎝만 더 가거나 똑바로 대었어도 바쁜 아침에 차 빼느라 짜증나지 않을 텐데. 이 차는 또 전면주차를 안 했군, 그렇게 관리실에서 당부를 하는데도. 에그, 난 화가 난다. 고작 10㎝에, 겨우 20˚쯤에.

시동을 걸고 아파트 진입로로 나간다. 큰 길과 닿는 부분에 횡단보도가 있다. 아침에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무수히 건너므로 일단 서야 한다. 아이들은 이쪽을 살펴가며 천천히 잘도 지나간다. 얌전히 기다리는 내 차도, 조심스레 지나는 아이들도 아주 기특하다. 내게 목례하는 녀석까지 있다. 천방지축 아이들이 저렇게 하기까지 그 학교 선생님들이 얼마나 당부 말씀을 하셨을 것인가. 금방 마음이 흐뭇해진다.

아니, 담배꽁초를 저렇게 던지다니!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앞차의 창문으로부터 떨어지는 담배꽁초에서 연기가 폴폴 난다. 나쁜 사람 같으니! 스르르 또 속이 상한다. 꽁초 하나를 버렸을 뿐인데….

쉬는 시간에 동료 선생님께서 중학생 딸아이가 흥분했던 사연을 들려주셨다. 딸애가 엄마한테 옮겼다는 내용인즉, 어떤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의 머리가 길다고 기계로 밀었다는 것. 자율화는 못할망정, 애들이 머리에 얼마나 민감한데 야만적으로 기계를 대느냐고 흥분하더란다. 속이 답답해졌다. 또 왜 그리 화가 나는 걸까? 밀어봤자 고작 2~3센티미터일 텐데. 아이들의 머릿속 고민을 함께 하지는 못 할지언정, 머리털만이라도 ‘단정하게 보이도록’ 해주고 싶은 그 선생님의 열정을 나는 왜 이해하지 못 한단 말인가? 난 아무래도 통이 작은 사람인가 보다.

점심시간, 두 아이가 싱글벙글 오더니 한 녀석이 내게 짱구 한 봉지를 내민다. “영훈이가 주는 거야? 으와, 좋아라.” “저도 선생님께 짱구 드리는 게 좋아요.” 뭐? 나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평소에 부끄럼을 잘 타서 말할 때 고개도 못 드는 아이가! 수업시간에 가끔 상으로 아이들에게 짱구를 주었지만, 내가 받긴 처음이었다. 갑자기 몸이 가벼워진다. 고작 짱구 한 봉지에! 난 정말 왜 이리 통이 작단 말인가? 왜 사소한 일에 분노하고, 별 것 아닌 일로 이렇게 즐거워하는가!

동네잔치, 굿판에서나 통은 클 일이다. 쪼잔해서 나는 참 행복하다.

박경이/충남 천안중 교사 iee5808@hanmail.net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