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린(김해율하초 4)양은 가족포상제 도전 과제로 ‘아빠와 일본어 회화 배우기’를 진행했다. 지난 19일 부녀가 함께 배운 것을 복습하고 있다. 노일성씨 제공
■ 이 주의 교육노트
‘이번주에는 어떤 프로그램 듣게 할까?’
주말마다 아이 보며 이런 고민 하세요?
남 말고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은 어떨까요?
‘하루 한 장 책 읽기’, ‘일요일 10분 동네 산책’
유치해도 좋아요. ‘함께’, ‘꾸준히’ 하는 게 핵심.
이런 하루하루 쌓이면 그게 공부, 교육입니다.
맞벌이 부모는 주중 업무와 회식으로 지치고, 아이는 평소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누군가 짜놓은 일상에 찌든다. 서로 얼굴조차 보기 힘든 평일을 보낸 뒤 주말에 만나는 가족들. 최근 아이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부모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등 대화는커녕 ‘서로 싸우지나 않으면 다행이다’라는 말도 들린다.
주말이나 방학이 오면 부모들은 으레 ‘애들 데리고 바다라도 갈까’, ‘단과 학원이라도 보내야 할 텐데’ 등 아이들을 자꾸 어딘가로 보내려고 한다. 그렇게 학원이나 캠프 등 정교하게 짜인 교육 과정에 아이를 맡길 게 아니라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을 함께 짜보는 건 어떨까.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이하 진흥원)은 2011년부터 ‘청소년자기도전포상제’(이하 포상제)라는 이름의 활동을 진행해왔다. 봉사·자기개발 등을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기획해보게 하는 제도다. 진흥원은 올해 4월부터 이를 확대해 ‘가족형 청소년자기도전포상제’(이하 가족포상제)도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가족포상제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도전 활동을 기획·진행하며 유대감을 쌓는 등 가족 간 소통의 발판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한국형 자기 성장 프로그램 가운데 가족형으로는 유일하다. 활동 단계별로 진흥원이 발급하는 금·은·동장 등 인증서가 나와 성취감도 쏠쏠하다.
우리 가족만의 미션 만드는 활동
요리·외국어·달리기 등 다양한 주제
성취 목표 정하고 보고서 작성하며
‘우리 함께 잘하고 있나’ 살펴봐
아이들 관심 뭔지 알 수도 있어
금·은·동장 포상제로 성취감도
‘나눔셰프’ 되어 주변 이웃에 감사 전해
대천초등학교 4학년 황지훈군은 이제 요리 박사가 다 됐다. 케이준 샐러드, 수제 햄버거에 이어 김장까지 해본 실력자다. 황군과 엄마 한희선씨는 가족포상제에 참여하며 ‘나눔셰프-이웃에게 감사의 마음 전하기’를 공동 미션으로 정했다.
황군은 “미션을 정한 뒤 경비 아저씨부터 떠올랐다. 처음에는 요리가 서툴러 간단하게 떡꼬치를 만들었는데, 경비 아저씨께 드리며 감사함을 전하니 정말 좋아하셨다”고 했다.
평소 학교와 집을 오가기 바빴던 황군은, 미션을 시작한 뒤 ‘보는 눈’이 달라졌다. 소방서와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됐다. 황군은 “나는 주말에 학교에 안 가지만, 토·일요일에도 항상 우리를 위해 일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소방서, 보령도서관 사서 선생님께 직접 만든 간식과 편지를 드리면서 ‘언제나 감사합니다!’라고 마음을 전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쑥스러웠어요. 하지만 횟수가 늘어날수록 요리 실력도 좋아졌고, 지난 7월에는 보령 머드축제 자원봉사자분들에게 과일화채 간식도 전달했어요.”
한희선씨는 “가족포상제 동장 인증에 도전하며 아이가 목표의식을 갖게 됐다. 매주 아이와 메뉴를 고민하고 장도 같이 봤다. ‘이번주엔 누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볼까’, ‘그분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등을 주제로 대화하며 공통 관심사가 생겼다”고 했다.
아빠와 함께 흙공 만들고 자연 지키기
2011년부터 청소년자기도전포상제에 관심을 갖고 아이들을 지도해온 대전장대중학교 정상규 교사는, 이 제도가 가족형으로 확대됐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아이들과 의논했다. 정 교사의 딸인 세종시 한솔초등학교 4학년 정다은양은 아빠의 제안을 듣고 ‘우리 동네 하천 살리기’를 공동 미션으로 삼자고 했다. 정 교사는 “다은이와 이야기해 보니 자연보호에 관심을 갖고 있더라. 우리만의 첫 미션을 이엠(EM, Effective Microorganism) 흙공 만들어 동네 하천 살리기로 정했다”고 했다.
정양은 “황토 흙과 미생물을 섞어 공 모양으로 만든 뒤 일주일 발효시키면 뽀얗게 먼지 색으로 변한다. 눈에 안 보이는 미생물이 나타나 하천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게 신기했다”고 했다.
보통 자연보호라고 하면 서명운동 참여 등을 많이 하는데, 부녀가 함께 체험 활동을 해보니 환경의 소중함을 더 깊이 알게 됐다. 정 교사는 “아이가 흙공을 넣어주더니 주변 쓰레기도 정리해보자고 했다”며 “깨끗해진 천변을 산책하며 평소 눈에 들어오지 않던 풀, 오리 등 생태계를 가족들과 둘러봤다. 주말 시간이 무척 값지더라”고 했다.
활동보고서 함께 쓰며 목표 구체화
가족포상제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활동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단순히 ‘북한산에 다녀왔다. 힘들었다’ 등 일기 형식의 서술이 아닌, 아이와 부모가 활동 취지, 소감, 개선할 점 등을 체계적으로 적어 보며 색다른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서울동의초등학교 5학년 최재언군은 그동안 혼자 포상제에 참여해오다 올해는 가족과 함께하고 있다. 활동보고서도 부모님과 함께 쓰면서, 자신도 몰랐던 엄마의 생각을 자연스레 알게 됐다. 최군은 “내가 먼저 기획안을 몇 줄 써본 뒤 부모님과 상의한다. 누나도 조언을 해준다”며 “개선점을 적을 때도 무조건 단점만 찾는 게 아니라, 가족들 의견을 듣고 목록을 만들어 확인하니 보고서 쓰기가 수월해졌다”고 했다.
최군 가족은 지난달 23일 ‘한강 이색 달리기’에 참여했다. 여의나루역 부근에서 출발해 세 시간 동안 약 2.5㎞를 달리는 프로그램인데, 이 코스에는 한강 26개 다리가 특색 있게 재현돼 있었다. 최군 가족은 미션으로 ‘다양한 운동 경험해보기’를 정한 뒤, 이색 달리기 참가에 이어 최근엔 ‘엄마와 캐치볼 50번 주고받기’를 진행했다.
엄마 이은주씨는 “주말에 글러브와 공 등을 챙겨 아이들과 근처 운동장에서 캐치볼을 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함께 운동하며 유대감도 강해졌다”고 했다. 최군은 “주로 출퇴근하는 부모님 모습을 보다가, 다 같이 운동화를 신고 나가니까 너무 좋았다”고 했다. “지난주에 캐치볼 미션은 성공했고, 활동보고서에 기록했죠. 이제 또 무엇을 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벌써 기대돼요!”
한강 이색 달리기 등 활동을 마친 뒤 함께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은주씨 제공
작은 성취 경험하며 자신감도 쑥쑥
가족포상제는 만 9~13살 청소년과 가족들이 봉사·자기개발·신체단련 중 최소 1가지를 선택해 8회 이상 진행하면 된다. 이때 ‘가족 탐험활동’은 필수인데 성곽 탐험 등 당일치기 일정부터 캠핑, 국내외 여행 체험 등까지 자유롭게 기획해볼 수 있다. 활동 영역별로는 ‘마을 쓰레기 줍기’부터 ‘우리 가족 모두 중국어 시험 3급에 도전하기’ 등 다양하다.
김해율하초등학교 4학년 노혜린양은 요즘 주말이 즐겁다. 아빠와 함께 도서관을 찾아 일본어 회화를 공부하고 있는데, 기초 문장을 3~5개씩 통으로 외우면서 제법 실력도 늘고 있다. 아빠 노일성씨는 “평소 해외 출장이 잦아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었고, 그 점이 늘 아쉬웠다”며 “지난 5월 아이와 ‘일본어 생활회화 마스터하기’라는 공동의 목표를 정한 뒤 주 1회 도서관을 방문해 기초 회화를 함께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책을 사와 집에서 미션 수행을 할 수도 있었지만, 노씨는 딸과 함께 일부러 부산중앙도서관 등을 찾고 있다. 아이가 회화뿐 아니라 문화, 역사 등을 다룬 다양한 책을 접하며 시야를 넓히도록 돕는 것이다. “주중에는 저와 아내 모두 바빠 주말에는 집에서 조용히 쉬곤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릴 때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어서 가족을 설득했죠.”
노양은 “가족 탐험활동으로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아빠와 꾸준히 회화를 연습한 덕분인지, 일본 공항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내가 직접 주문했는데 성공했다”며 “동장에 이어 은장, 금장에도 도전할 것이다. 다시 일본 여행을 가게 되면 가이드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빠랑 목표를 정했어요. 일주일에 최대 다섯 문장을 외우고 활용해보는 것으로요. 도서관에서 공부한 뒤 아빠랑 배드민턴도 같이 하는데, 다음 활동 목표는 ‘배드민턴 50번 주고받기’입니다!”
가족포상제 참여 신청은 ‘이(e)청소년’ 누리집(www.youth.go.kr)을 방문하거나 진흥원 활동사업부(02-330-2877)로 문의하면 된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주 1회, 존댓말 쓰며 회의 시간 가져봐
가족회의, 어떻게 할까?
가족형 청소년자기도전포상제에 참가한 가족들은 하나같이 가정 내 민주적인 회의 절차를 강조했다. 도전 분야를 찾는 것부터 기획, 일정 짜는 것까지 부모가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다. 학부모 정상규씨는 “아이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꾸준히 회의하며 생각을 나눈 뒤 더욱 돈독해졌다. 마음 열기, 소감 나누기 등 간단한 이야기부터 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가족회의’라고 하면 특별한 것 없는 활동처럼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다 함께 회의하는 동안 유대감은 물론 근거를 들어 상대를 설득하는 힘, 논리적으로 말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비폭력대화센터 김도연 강사는 “가족회의는 부모와 자녀가 각자의 욕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리이자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창의적으로 토론하는 시간”이라며 “평소 대화가 부족해 가정 내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안전한 방식”이라고 했다.
김 강사는 “가족회의를 통해 짜증·투정 부리기 등이 아닌 건강한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부모와 자녀가 왜 이런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지 이해하는 법도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가족회의를 통해 부모나 형제자매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믿을 만한 존재라는 경험을 할 수 있죠.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존중받아본 아이들은 다른 사람 또한 소중하다는 걸 배우게 되죠. 자신의 말에 책임지는 법도 체득할 수 있고요.”
가족회의는 주 1회, 월 2회 등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회의라고 해서 지루하게 진행할 필요는 없다. 의장은 가족 구성원이 돌아가며 맡고, 각자의 별칭을 정한 뒤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면 보다 평등한 회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의사봉, 회의록 등 간단한 회의 도구를 준비하면 아이가 더욱 관심을 보인다.
의장을 맡은 사람은 개회 선언 뒤 ‘우리 가족 칭찬하기’, ‘마음 열기’ 등 부드러운 이야기로 회의를 시작한다. 기말고사 기간 생활 계획, 용돈 논의, 집안일 역할 분담, 컴퓨터 게임 시간, 건강 관리 등 다양한 안건이 나올 수 있다. 이때 의장은 발언권, 발언 시간 등을 분배하고 조정한다.
투표가 필요한 경우 1인 1표의 개념을 알려준다. 서기를 정해 회의 진행 과정과 결과 등을 기록해보면, 연말에 ‘1년 동안 우리 가족의 생활 기록’이 완성된다. 안건 논의가 끝나면 의장이 폐회 선언과 함께 다음 가족회의 일정과 후임 의장을 정하면 좋다.
임영주 부모교육연구소장은 “간혹 부모가 서로의 의견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 보고 배운다. 다독이는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의 중 말허리를 끊거나 말꼬리 잡는 것도 아주 안 좋은 습관입니다.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세요. 관심사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습관을 들이면 아이도 자연스레 자기주도적인 생활 태도를 갖게 됩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