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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메가폰 든 십대들…“공부 말고 할 말 많아요”

등록 2017-10-30 20:23수정 2020-02-29 13:08

[함께하는 교육] 영화 찍는 청소년 감독들
지난달 2일 진건고등학교 1학년 이가영 학생과 친구들이 퇴계원고등학교 및 카페에서 첫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이가영 학생 제공
지난달 2일 진건고등학교 1학년 이가영 학생과 친구들이 퇴계원고등학교 및 카페에서 첫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이가영 학생 제공

세종시 성남고등학교 3학년 권나연양은 지난 24~28일 열린 제17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이하 영화제) 본선에 진출했다. 총 641편의 작품 가운데 본선에는 73편만 오를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권양은 단편 애니메이션 <불꽃>의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았다.

<불꽃>의 주인공인 여학생에겐 입이 없다. 감독을 맡은 권양의 기획 의도에 따라서다. 가정과 교실 안팎에서 다양한 언어폭력에 노출돼 있지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을 그려냈다.

권양은 “지난해 강남역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접한 뒤 여성혐오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됐다. 더불어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깨달았다”며 “주인공은 부모님과 선생님 등이 하는 혐오 표현에 둘러싸인 채 살아간다. 그 속에서 힘들어하는 캐릭터의 감정은 흔들리는 선과 깜빡이는 불빛으로 표현했다”고 했다.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이라는 책을 본 뒤 시나리오를 써보게 됐습니다. 원화를 그리고 채색하면서 영상을 통해 제 생각을 표현해내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어요. 사회문제를 3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으로 시각화하니 친구들도 더 관심 있게 보더라고요.”

‘행복의 조건 뭘까’, ‘언어폭력’ 등

일상 소재 생각들 영화·애니로 만들어

교육청 프로그램, 청소년 영화제 등

영상물 제작 교육창구 통해 공부하고

시나리오 쓰며 내 이름 건 작품 완성

촬영부·제작부 꾸리며 협업 배우기도

소비자 넘어 창작자로 변신하는 청소년들

요즘 청소년들은 유튜브, 페이스북 등에 영상을 올리고 함께 보는 문화에 익숙하다. 최근에는 청소년들이 영상물의 수요자에 머물지 않고 생산자가 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청소년 영상문화 연구자 오세섭 박사(영화학)는 “태어날 때부터 영상 미디어에 익숙한 요즘 10대들은, 영화관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직접 창작해보며 자기표현의 창구로 삼는 추세”라고 했다.

진건고등학교 1학년 이가영양은 일상의 고민을 영화로 풀어낸 청소년 감독이다. 이양은 부모님이 가끔 로또 사오는 걸 보고, 의심 없이 ‘인생은 역시 한 방’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로또 당첨자 사례를 찾아보며 나름 행복한 상상도 많이 해봤다. 어느 날 주변 친구들에게 “행운이란 뭘까?” 물었다. 십중팔구 “돈이 많은 것”이라고 답했다. 이양은 어른들, 친구들 할 것 없이 모두 같은 답변을 하는 걸 보고 문득 의아해졌다.

이양이 시나리오 및 연출을 맡은 <럭키>(Lucky)는, 하는 일마다 행운이 따라 노력 없이도 좋은 결과를 얻던 학생이 어느 날 갑자기 그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양은 “‘금수저’인 한 학생이 더는 운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된 내용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지난달 26일 경기도교육청 청소년방송 ‘미디어경청’에서 발간한 <영화 같은 내 인생>에 실렸다. 시나리오로만 존재하던 작품은 해당 교육청이 진행하는 청소년 영상제작 프로젝트 ‘꿈즈’를 통해 단편영화 <한 번 더>로 제작됐다. 지난 29일 의정부 씨지브이(CGV)에서 시사회도 마쳤다.

중학생 때 댄스 동아리 활동을 하며 공연 기획자를 꿈꿨던 이양은, “시나리오 쓰기와 영상 매체의 매력을 알게 돼 영화 연출 분야에도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로또 당첨만이 유일한 행운일까요? 사람 사이의 관계도 우연으로부터 시작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물질만능주의 사회라지만, 서로 노력하는 관계야말로 진정한 행운일 수 있다는 내용을 글과 영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어른들 눈에는 그냥 노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청소년들은 영상물 생산자 경험을 하며 배우는 게 많다고 입을 모은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생각하고 등장인물 성격의 일관성을 고려하며, 한 가지 주제를 끝까지 붙잡고 글 한 편을 완성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주제 정하기, 글감 다듬기, 논리적으로 표현하기 등 과정에서 사고력도 길러진다. 오 박사는 “영화 찍기는 인과관계가 선명한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것부터 자신이 선택한 주제를 카메라로 어떻게 표현해낼 것인지까지 생각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부모 세대는 아이들이 카메라만 갖고 있으면 ‘노는 것’이라 여기죠. 하지만 또래 친구들과 수없이 토론하고 관심사를 공유하며 글 쓰고 영상 찍는 과정을 통해 몰입의 즐거움과 협업에 대한 개념도 알게 됩니다.”

이양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촬영부, 제작부 등 뜻 맞는 친구 6명과 팀을 꾸리고, 학생 배우 및 보조출연자 오디션을 진행했다. 출연 지원자들의 자유연기, 지정 대본 연기 등을 거친 뒤 선발했다. 자신의 시나리오를 가장 잘 표현해줄 사람을 찾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오직 영화만 생각하는 시간을 통해 ‘나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구나’ 등을 알게 됐다고 했다.

‘입시’ 말고도 할 얘기 많습니다

초월고등학교 3학년 김예섬양의 시나리오 <달빛>도 꿈즈를 통해 단편영화로 만들어졌다. 김양은 “어른들은 고3 수험생을 대학 입시라는 렌즈 하나로만 본다. 하지만 우리도 공부, 꿈, 연애까지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영화 <달빛>에 담아봤다”고 했다.

김양은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미디어경청에서 진행한 시나리오 수업을 통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 4시간에 걸친 강의를 들으며 꾸준히 해보는 것의 힘을 알게 됐다.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김양에게, 부모님은 “보는 것도 좋지만 직접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라며 시나리오 수업을 권유했다.

김양은 “시나리오 내용의 틀을 잡는 과정만 두 달이 걸렸다. 완성한 뒤 친구들과 밤샘 촬영, 새벽 회의가 일상이었다. 피드백도 무수히 주고받았다”며 “내가 쓴 글자들을, 우리가 숨 쉬는 시공간에 재현해보는 특별한 경험을 해봤다”고 했다.

영화 촬영 장비는 꿈즈를 통해 지원받거나 휴대폰 등을 이용할 수 있어 큰돈이 들지 않았다. “사실 시나리오 작업에 관심이 없었어요. 경찰이 되고 싶거든요. 그런데 공들여 쓴 글이 당선되고, 영화 제작을 해보면서 이젠 독학으로 조명·카메라 공부도 하고 있어요. ‘영화 만드는 경찰관’, 멋지지 않나요? 나중에 시민 안전을 위한 영상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카메라로 일상 들여다보니 시야 넓어져

영화 <변호인>과 <박쥐>를 본 뒤 영화감독을 꿈꾸게 됐다는 대전만년고등학교 3학년 조민서양은 최근 영화도 만들고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영화제에 출품한 <초능력자>가 본선에 진출했고, 심사위원장으로 선발돼 또래 친구들이 만든 다양한 영상을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됐다.

조양은 평소 생각했던 것을 화면에 담아보고 싶었는데, 마침 시청자미디어재단이 학교를 ‘미디어 거점 학교’로 선정했다. 촬영 장비부터 방송 용어와 영상 콘텐츠 제작 교육 등을 받은 뒤 ‘연출의 매력’을 알게 됐다. 직접 영화를 만들어보니 흥미가 생겼고, 영화제 심사위원에 지원했다. “심사라고 해서 당락에 관심 두기보다는, 여러 친구의 연출 기법을 공부하는 시간으로 삼았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 들어요. 밥 먹는 모습, 등교하는 모습 등 단순한 장면 하나에도 스태프들의 노력과 수많은 고민이 담긴다는 걸 알았거든요.”

<불꽃>을 비롯해 영화제 본선 진출 작품은 유튜브에서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를 검색하면 쉽게 볼 수 있으며, 꿈즈에서 만든 영화는 경기도교육청 청소년방송 ‘미디어경청’ 누리집(www.goeonair.com)을 통해 볼 수 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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