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 특성화고권리연합회 추진위원장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제주 실습생 사망 사건과 관련해 현장실습 5대 쟁점과 대안을 밝히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노동이 아닌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이 뿌리를 내리려면, 초·중등교육법에 실습이 ‘교육과정’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적시하는 등 입법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기업이 학생한테 ‘임금’을 지급하도록 할 게 아니라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실습 기업에 적정 수준의 ‘실습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일부 전문가는 조언한다.
3일 이민호군 사망 사고 이후 꾸려진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중단과 청소년 노동인권실현대책회의’(대책회의)는 “현장실습은 교육과정인데, 이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여전히 미흡하다”고 짚었다. 대책회의는 이날 논평을 통해 “초·중등교육법에 현장실습이 교육과정임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정부가 발표한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 계획과 현실이 달라 혼란이 빚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은 직업계고 현장실습의 법적 근거를 현행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이 아니라 초·중등교육법에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현장실습은 노동이 아닌, 교육의 일부라는 점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정부가 아무리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을 강조해도 기업이 실습생한테 ‘실습지원비’ 등 돈을 주는 방식이 유지되면, 결국 실습생은 노동자처럼 일하면서 임금도 제대로 못 받는 ‘열정페이’를 강요당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기업이 실습생한테 노동력 제공에 따른 ‘임금’을 지급할 게 아니라, 되레 정부의 예산으로 학생이 기업에 ‘실습비’를 내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인식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교육학 박사)은 지난 9월 ‘직업계 고등학교 현장실습제도 개선을 위한 과제’ 보고서를 통해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에 관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대부분의 기업이 실습생을 노동자로 인식하는 이유는 임금 성격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현장실습 비용을 기업에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고 짚었다. 정부가 기업에 실습 교육비 명목으로 비용을 지불하면, 기업은 학생한테 교육을 해줘야 하는 책임이 생기기 때문에 학습 중심 현장실습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 촉구 기자회견'이 지난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려 특성화고 졸업생인 복성현씨(오른쪽 둘째)가 청소년 노동인권 보장을 촉구하며 발언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문제는 예산이다. 수만명의 직업계고 학생이 참여하는 현장실습 비용을 지급하기 위한 예산 마련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홍민식 교육부 평생직업교육국장은 “현장실습이 학습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며 “재정이 문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희생을 감수하면서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에 참여할 기업이 많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장실습 제도를 학습 중심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은 부실해진 기존 직업계고 교육과정의 정상화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다수 직업계고는 3학년 2학기 과정을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중심으로 꾸려온 것이 현실이다. 특성화고 학부모 황아무개(48)씨는 “현장실습을 없앤다는 정부 방침에는 찬성하지만, 현재 특성화고의 교육과정은 교과서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못할 만큼 부실해진 지 오래”라며 “조기 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이 폐지되면 많은 특성화고에서 어떻게 그 빈자리를 메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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