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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필진]그들은 ‘왕따’를 이렇게 이겨냈다

등록 2005-11-24 11:32수정 2005-11-24 11:32

후루야 미노루의 만화 . 주인공 ‘오기노‘가 정말 정감이 가게 그려졌다. 전 6권. @북박스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후루야 미노루의 만화 . 주인공 ‘오기노‘가 정말 정감이 가게 그려졌다. 전 6권. @북박스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만화를 보는 주독자층은 연령대로 보자면, 확실히 10대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만큼 만화는 학교를 무대로 한 무협 만화나 성장기를 겪는 그들의 심리 변화 등 10대들의 정서와 구미에 맞는 소재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10대들이 처한 환경이나 저마다 다른 현실을 그린 만화도 자주 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학교는 요즘 '왕따'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그 시기의 청소년들은 한창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주목받으려고 노력하며, '힘'의 서열을 본격적으로 겪기 시작한다. 그런 그들의 심리로 보았을때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일부 아이들의 경우, 자신보다 다소 힘이 약해보이고 성격이 유약해보이는 아이를 보면, 그들을 괴롭히거나 교실 환경을 자신이 주도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일이 많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왕따'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그로부터 출발한다고 본다. 거기에 돈이나 권력 등, 물리적인 힘에 따라 좌우되는 어른들의 현실 역시 그들의 일부 잘못된 행동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었을 듯싶다. 결국 아이들의 현실은 어른들이 보여준 세상과 현실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혼란을 겪는다는 담장 안의 학교의 현실에 대해 반드시 아이들만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소개할 만화는 왕따의 피해를 당하던 아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왕따의 서글픔에서 벗어나며, 그들이 결국 어떤 변화를 통해 어른으로 자라나는지 잘 보여주는 만화이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하는 만화라고 생각한다. 왕따를 극복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노력이 제일 절대적이기 때문에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그들의 처신은 그만큼 우리에게 더 많은 공감을 얻어내며 깊게 와닿는다.<시가테라>-나는 사랑의 힘으로 왕따를 극복했다.


특별히 힘이 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시가테라>의 주인공 '오기노'는 너무 평범해서 탈인 아이다. 결국 그는 너무 평범하고,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왕따의 대상이 돼버렸다. 그는 학교에서 불량배로 통하는 '타니와키'의 마수에 걸려, 그의 온갖 심부름을 다 해가면서 '맞지 않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에게 유일한 취미가 있다면, 학교에서 금지하는 오토바이였는데, 이 오토바이가 그에게 큰 구원의 손길이 된다.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릴 정도로 예쁜 아이인데다가 '연상의 여인'인 '나구모'가 그의 여자친구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오기노'의 좌충우돌 일상은 또다른 변화를 맞이한다.

<시가테라>는 평범한 남자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여자에 대한 시선이 참 재미있다. 자신의 삶에는 예쁜 여자가 존재할 구석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기노'에게 있어 '나구모'의 진심은 때로는 의심스럽게 다가오며, 때로는 행복한 황홀함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기는 자신의 부끄러운 일부분을 어떻게든 감추고 싶어하는 '오기노'의 또다른 좌충우돌도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사춘기 시절 한두번은 겪어본 일이기 때문에 더욱 와닿는다. 성(性)에 대한 호기심과 서로 격이 맞는 대학에 입학해야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 등, 사춘기 시절 아이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고뇌가 아주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시가테라>는 청소년이 본다면 '오기노'의 현실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고, 어른이 본다면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된 학창 시절을 다시 한번 돌아볼 좋은 기회가 될 만화로 보인다. 다만 성에 대해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독자라면, 그들이 청소년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다소 적나라해 보이는 성적인 묘사에 약간의 거부감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 답답함의 상징이 된 현실적인 성교육을 생각해본다면, 그런 성교육을 뛰어넘은 아이들의 성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가테라>는 무엇보다 결말이 깔끔하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다.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거나, 사귄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라면, 한두번씩은 하게 되는 '특별한 말'을 토대로 꾸며진 이 결말은 그런 이들의 가슴에 약간의 뜨끔함을 느끼게 해줄 결말로 보인다. 하지만 '오기노'는 그렇게 어른이 돼가고 있었다. 결국 이것도 어른이 돼가는 과정인 것이다.<홀리랜드>-무슨 말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나는 폭력으로 해결한다.

모리 코우지의 만화 의 표지. 격투에 익숙해지면서 달라지는 ‘유우‘의 분위기도 놓치지 말자. 현재 10권까지 발간.  ⓒ 학산문화사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모리 코우지의 만화 의 표지. 격투에 익숙해지면서 달라지는 ‘유우‘의 분위기도 놓치지 말자. 현재 10권까지 발간. ⓒ 학산문화사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홀리랜드>의 주인공 '유우' 역시 연약해보이는 체구를 가진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그도 결국에는 왕따의 마수로부터 피하지 못하고, 매일같이 얻어맞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된 소년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는 누구의 관심을 받지 못하며, 외롭게 자라고 있었다. 그런 현실을 비관해 자살도 시도해봤지만, 죽는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이치를 잘 모르고,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을 다시 한번 비관하고 있을 때, '유우'는 책방에서 우연히 권투 교본을 사게 된다. 그런데 이 한 권의 책이 그에게 구원의 밧줄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알고보니 천부적인 펀치력을 가진 그는 권투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 '불량배 사냥꾼'이라는 거창한 별명까지 생기면서 말이다. 꿈에서나 그리던 '힘'을 갖게 된 그는 어디까지나 방어 차원의 공격일 뿐이지만, 자신을 괴롭혔던 길거리의 불량배들과 결투를 가지며, 하나하나 그들을 쓰러뜨린다. 하지만 무림의 세계가 그렇게 간단한 세계던가?

무림의 세계는 산 너머 산이다. 하나를 쓰러뜨리면, 또 하나의 고수가 존재하고 있고, 그 다음도 역시 마찬가지로 첩첩산중이다. '불량배 사냥꾼'의 가공할만한 위력이 발없는 말이 천리가듯 소문이 퍼지면서 평소에는 눈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던 온갖 격투기의 달인들이 그를 기다리게 된다.

<홀리랜드>는 '유우'가 그렇게 '불량배 사냥꾼'이 되는 과정을 조명하면서 일상 속에서 충분히 이용될 수 있는 각종 격투기와 호신술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림까지 첨부해서 설명하니, 이 이상 친절할 수가 없다. 말도 안되는 고교생 캐릭터들이 말도 안되는 위력의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 상식이 된 학원가의 무림 만화의 틀을 과감하게 깨면서 '현실'에 기반해 그리고 있다는 것이 <홀리랜드>의 포인트다.

아직 혈기가 죽지 않은 어른이라면, 이 만화를 보면서 모처럼 피가 끓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줄지도 모른다. 제목인 <홀리랜드(Holy-Land)>는 '성지'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뒷골목은 성지이며, 유일하게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인생의 장이다. 온갖 격투기와 주먹이 난무하는 가운데, 어른이라면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반성해야 할 것이 생기는 셈이다. 왜 그들은 학교가 아닌 밤의 뒷골목에서 자신을 확인하고, 인생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 왜 그들은 벌써부터 어른들 뺨치는 힘의 서열을 확인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어쨌든 '유우'는 그런 폭력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며, 타인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친구도 생긴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휘두르는 폭력을 일방적으로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각자의 다양한 개성을 드러낼 공간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공부만을 강요하는 어른들의 책임이 더 큰 것이다.

왜 그들은 뒷골목을 떠나지 못하는가? 그들은 학교보다 오히려 뒷골목에서 현실을 깨달아가며, 세상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보면, 어른이 보인다. 알고 보면, 어른들의 세상도 크고 작은 왕따가 비일비재하다. 직장에서도 그렇고, 그 외의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힘'의 위력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살고 싶어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힘'이 긍정적으로 이용되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이용되는 일이 많아지면, 그때부터 세상은 어지러워진다.

어른들의 세상은 그래서 어지러운 것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아이의 눈, 그리고 아이들의 세상은 결국 어른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사건이 벌어지면, 포털 사이트와 언론을 뒤흔들어놓는 것이 왕따 사건의 현실이지만, 누구 하나 근본적인 반성은 물론이고,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일회성으로 가해자만 비난하다가 언제 그랬냐는듯이 가라앉는 것이 흔한 패턴이 돼버렸다.

이래서야 왕따 현상이 해결될 리 없다. 왕따 현상이 우리에게 남기는 숙제는 뚜렷하다. 무엇보다 어른들이 먼저 긍정적인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을 단순히 공부하는 기계로 보기보다 조금 더 다양하게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 공부로만 살아지는게 세상인가? 어쩌면 끊임없는 세상의 어지러움은 다른 것을 가르쳐주지 않은 채, 공부만을 강요하는 어른들의 완고함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세상이 서로를 존중해줄 수 있는 다양한 세상이 된다면, 왕따도, 폭력도 분명히 줄게 될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먼저 윗물부터 맑아지게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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