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의 정상화를 생각하는 무책임한 단상 3 - 전임교수의 신분보장
대학교 ‘정교수’ 그러니까 공식명칭으로는 전임교원이 되면 웬만한 일이 없고서는 만 65세까지, 일반 공무원이나 회사 보다 더 길게 정년을 보장받는다. 공식적으로야 전임강사에서 조교수, 부교수를 거쳐 교수가 되어야만 정년보장을 받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실질적으로 전임교원이 재임용에 탈락하여 학교를 떠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분명 가치와 의미가 있는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가 대학교 교수로서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외부적인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학문탐구에 몰두하고 소신있는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넓고 깊은 공부를 장기간의 계획을 세워 꾸준히 밀고나갈 배경을 마련하고 있으며 학문적인 이상 실현에 꼭 필요한 제도라고도 할 수 있다. 대학교수를 직장인이란 측면에서 볼 때 고용안정이란점도 있다.
그런데 이런 긍정적인 면이 대학교수 정년보장의 제도에 얼마나 긍정적으로 작용할까? 참으로 의문이 앞선다.
다른 골치 아픈 이야기는 집어치우자. 많은 실력있는, 현재의 대학교수들 보다도 더욱 학문적으로 깊고, 교육적으로 훌륭한 많은 시간강사들은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고 견디다 못해 전업을 하여 학문의 세계를 등지는데 전임교수들이라는 사람들은 아무리 실력이 없어도, 실컷 놀아도, 그러한 강사들이 십여배에 달하는 월급을 받고 하는 일 없이 ‘해피’한 생활을 한다는 것을 나는 옳은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없다. 그래서 나는 이 대학교원 정년보장제도를 곱게만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일찍 종강을 해서 거의 3개월에 육박하는 방학기간동안 학교에 한번 나오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집에서 아님 다른 곳에서 학자로서, 교육자로서 혹은 최소한 한명의 직장인으로서 해야 할 일 없이 그저 잘 놀고 와서는 다음 학기에 몇십년된 강의 노트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강의를 하고, 그러다 좀 따분하면 술집에 가서 인생을 강의한다는 허울에 그럴듯한 말장난으로 수업을 때우고, 그도 좀 귀찮다 싶으면 이런 저런 핑계로 휴강을 한다. 물론 그런다고 누가 뭐라 하는 놈 없다. 학점 후하게 주고 학생관리(?) 좀 해주면 강의평가점수는 항상 평균을 상회한다. 수업 끝나면 집으로 바로 가는 건 기본이다. 이정도 되고 보면 대학교수라는 직업이 사이드 잡이요 메인은 가정주부 혹은 정치인 등이 되는 것도 다반사다.
조금 무안하거나 눈치가 보이면 전에 있던 책들에서 글자 몇자 바꾸어 책을 내서 연구실적이라고 표시를 할 수 있는데다가 학생들에게 책까지 팔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이미 쌓아놓은 ‘덕망’과 ‘명망’으로 가끔씩 엉터리 논문한편 학회지에 실으면 이제는 금상첨화에서 점입가경이 된다. 이로서 무능한 교수에 대하여 험담을 하는 나 같은 하찮은 인간의 비판을 막을 만한 훌륭한 방패가 된다. 역시 학문적인 면죄부는 한두개쯤 사둘 필요가 있다.
자! 문제는... 그러니까 대학교수 신분보장제도의 문제는... 이렇게 사이드잡 식으로 대학교수를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고 그런 사람들에 비하여 실력과 능력을 겸비한 사람들이 비정규직 강사로 형편없는 환경 속에서 학문을 포기하거나 더 발전적인 학문을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거의 잘릴 일이 없다는 점을 이미 말하였다. 그래서 철밥그릇이라 하지 않던가. 대학교 교수들은 정년보장이란 절대 깨지지 않는 철밥그릇 차고 학생들의 등록금과 나라의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마치 모든 대학교 교수들이 다 그런 것처럼 호도하는 언사라고 나무랄 것 같다. 맞다. 꾸짖음을 들을 만 하다. 그런데 말이다. 현재의 대학교수들 셋 중에 혹은 넷 중에 하나가 이렇다고 한다면 최소한 나의 무대뽀 항변이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아주 단순 무식한 발상으로 학문, 교육적으로 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학문적인 경중으로, 교육적인 효과로 줄을 세워놓고 앞에서부터 차례로 교수직을 부여한다면 현직 교수들 중에 얼마나 그 철밥그릇을 다시 꿰어 찰 수 있을까? 이런 엉터리 발상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도 많은 논리적인 장난으로 자신들의 무능력과 무의지를 방어하는 현실을 볼라치면 도무지 말 가지고는 이길 제간이 없기 때문이다.
휴강을 해도 학생들에게 사색을 시키는 것이요, 학생의 질문에 대답을 못해도 스스로 공부하게 하는 것이고, 엉터리 이야기를 해도 다 깊은 뜻이 있다는 데에야 나는 더 이상 그들과 대화를 해서 이길 자신이 없다. 좌우간 위에서 말한대로 학자들을 줄을 세워서 대학교수를 하게 한다면 그래도 다시 대학교수를 하게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 현직대학교수중에 몇 퍼센트나 되겠는가? 교수들은 교수들대로,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졸업생들은 졸업생들대로 한번 생각해 보시라. ---이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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