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에 간 마르셀은 5백원짜리 왕관을 발견하고 냉큼 머리에 쓴다. “나는 왕이다!” 큰 소리로 외치자마자, 그는 정말 왕이 된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복종을 강요하고, 직장 동료들에게 충성을 다짐 받는다. 사실 ‘왕 노릇’이란 별 게 아니다.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거드름을 피우면 그만이다.
마르셀 아저씨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모를 리 없다. 며칠 안 가 세상은 450원, 400원을 주고 왕관을 샀다는 ‘왕’들로 넘쳐난다. 권위적인 가부장과 노동 착취에만 관심있는 자본가, 절대 권력을 좇는 정치인들만 들끓는 세상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첫째, ‘생산적’이라고 할 만한 모든 활동이 중지된다. 둘째, 남아있는 소수의 생산물을 소유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
살까? <오백원짜리 왕관>은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는 상황을 통해 현실을 날카롭고 유쾌하게 풍자한다. 어른이 읽어도 통쾌하기 짝이 없는 이 그림책을 아이들이 본다면, 늘 무언가 가르치고 꾸짖으려 드는 어른들의 이중성을 눈치채고 두 배로 재미있어 할 것이다. 냉소적이고 담담한 어조로 일관하는 작가의 글과 우스꽝스럽게 과장된 화가의 그림은 또 얼마나 절묘한가!
말까? 현명한 마르셀의 결론은 이렇다. “누구나 왕 노릇하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길은 스스로 왕 노릇을 그만두는 것이다.” 현실에서 왕관은 오백원보다 훨∼씬 비싸다. 왕관 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마르셀처럼 낙관적인 세계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오늘도 부단히 왕관을 위해 봉사할 지어다, 할렐루야. 뱅상 말론느 글, 앙드레 부샤르 그림-파란하늘/9천원.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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